2017,October 19,Thursday

한가위 한국행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며칠 지나면 곧 일 년 중 달(月)이 가장 밝다는 한가위다. 옛부터 우리 민족은 이때가 가장 풍요로울 때였다. ‘오월농부 팔월신선’이란 말처럼 8월은 오곡백과 풍성하여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한가위가 생겨난 이유부터 살펴보면 우리 민족의 나라, 국민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일 년 동안 땀 흘려 지은 곡식을 추수하고 이제 올 한해 힘든 일은 다 마치고 겨울 준비까지 해 놓았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인가? 이런 국민들의 마음을 읽은 나라에서도 국민들의 수고를 덜어주느라고 잔치를 베풀었다. 그것이 한가위 명절이다. 한국의 한가위는 국민 사랑의 징표다.

우리에게는 두개의 큰 명절이 있다. 추석 한가위와 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설보다 추석이 좋다. 설은 새해를 맞이한다는 설램이 있지만 대신 새해에 어떤 삶을 살 것이지 준비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서 그저 편안하지 만은 않다.
즉, 설에는 그저 즐기는 단순함이 부족한 반면 추석은 일을 정리하고 한숨을 돌리고 즐기는 시간이라 부담없이 가족관계를 즐길 수 있다. 그러니 한가위는 걱정이 없는 시기다.
그런데 요즘 한국은 아니다.
지금 한국은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갈 길을 헤매고 있다. 전세계의 거의 모든 화기가 모조리 모여 있는 동북아 한반도에서 어렵게 살아온 한민족이 이제는 진짜 진검 승부를 앞두고 있는 셈이다. 만약 세간의 우려대로 우환이 터진다면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할려고? 우리 늙은이보고 다시 하라고? 아니면 헬조선이나 외치면서 불평만 늘어놓는 젊은이들에게 그 일을 맡기라고? 나는 못한다. 할 수도 없지만, 가능하다고 해도 안 한다. 지난 5- 60여년 간의 치열했던 삶을 어떻게 다시 되돌려 살라는 말인가?
일단은 내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우환이니 뭐니 하는 생각은 잊고 한가위를 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집중하고 싶다.
한가위를 살펴보면 우리 문화가 제대로 녹아 있다. 우리 민족의 가족 사랑을 볼 수 있는 관습도 있다. 한가위 날은 날씨가 좋아서 추운 설날보다 이동이 자유롭다. 그래서 한가위에는 도회로 나간 모든 가족이 다 집으로 돌아와 함께 가족사랑을 즐기는 것이다.
옛날엔 시집간 딸의 친정나들이가 쉽지 않았으므로, 한가위 명절 끝 한가한 날을 잡아 시집과 친정의 중간에 있는 일정한 곳에서 양쪽 집안이 만나 서로 장만해 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도중에서 서로 만난다는 뜻으로 ‘중로상봉(中路相逢)’ 또는 ‘반보기’라고 하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속도 이제는 먼 전설처럼 되어 버렸지만, 지금도 우리 집안에서는 한식, 추석, 설 때만 되면 가족이 모두 모여 성묘를 간다. 조상에 대한 공경심을 찾는 것은 조상은 바로 우리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단지 아쉬운 것은 이럴 때도 젊은이들의 참석율은 저조하다. 노모가 아직 계시니 그나마 이렇게 라도 모이지 노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이 아이들을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을 지 참 걱정이다. 이런 푸념에 70이 넘은 누님이 하는 말, 냅둬라. 지금 아무리 얘기해도 뭔 말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도 나이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니 그냥 두고 기다려 보자며 티비로 눈을 돌린다. 그랴, 걱정하지 말자 그 나이가 되면 다 그 나이대로 살아가는 법이지.
그래도 한마디 아들 애와 조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Out of sight, Out of mind.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라도 오래 안보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일이 바빠서, 아이가 문제라, 이런 저런 이유로 가족 행사에 참석을 못하고 20년 만 지나면 그건 가족이 아니다. 그런 가족보다 항상 내 옆에서 야옹거리는 우리 고양이가 더 좋다. 안 만나는 가족은 가족이 아니고 타족이다. 우리 가족이 되자.
그러고 보니 9월도 끝자락이다.
이달이 지나면 이제는 한해마저 다 가버려 달력도 가벼워지는 시기다 보니 한가위 고국 행은 한해를 정리하는 행사가 되기도 한다. 올해는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 힘든 만큼 정말 편안하게 쉬고 싶다. 그런데 과연 맘놓고 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 1년간 거의 죽도록 일만 했다. 그런데 이제 막바지다. 체력은 고갈되고 몸은 여기저기 고장으로 신임소리를 내며 경고음을 끊임없이 내보내는 데 이 인간은 정말 해가는 줄 모르고 아직도 일에 매달려 있다. 언제나 이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느낄 날이 올런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실 그건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잡지사를 운영하다 보면 여러가지 사업 제의가 끝없이 들어온다. 지금까지는 그저 “우리는 못해요 책만 만들어요” 하고 발뺌을 했지만 사실 귀가 솔깃해 지는 제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최근 들어온 사업제의가 솔깃해보여 지난 수개월 동안 일에 끌려 다니면서도 새로운 사업에 관한 연구를 해봤는데 가능성을 둘째 치고 손이 없어 일을 더 벌일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동업을 하기도 마땅치 않고, 또 동업까지 해가면서 새로운 사업을 해서 얼마나 잘 먹고 살려고. 이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들면서 글이 제멋대로 갈지자 행보를 한다.
점심식사 후 찾아온 손님,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고국 얘기가 나오자 모두 얼굴색이 어둡게 변한다. 풍전등화와 같은 고국의 앞날이 염려스럽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가족 친지들 생각이 미치자 말이 끊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하는 소리가 한국이 점점 가기 싫어 진다는 것이다.
항상 고국 생각에 묻혀 살지만 이젠 가기 싫은 고국.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젠장, 이런 한가위를 두 번만 맞이 한다면, 휴우~ 대책없는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래도 가족이 있는 한국에서 한가위를 보내긴 해야지.
그래, 세상이 아수라장이 되어도 여전히 우리 금수강산을 비추고 있을 밝은 보름달 생각을 위로로 삼고 무거운 발걸음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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