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y 11,Saturday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박지훈 성균관대학교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축가이자 ‘몽선생의 서공잡기’, 크룩스크리스티’의 저자이며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했다.
현재 설계, CM전문회사인 정림건축의 베트남 법인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생활한 햇수가 십년을 넘다 보면 여러 관계나 모임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호찌민에 들어온 다음 해부터 시작했던 베트남 청년들과의 만남이 그것입니다. 올해로 열 두 해가 되었고 열 여섯이 넘는 식구들이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올해는 COVID-19 때문에 3월에 열리는 홈커밍데이 행사를 갖지 못했습니다. 홈커밍데이란 우리 모임에 속한 모든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함께 모이는 날입니다. 이 자리에서 새로 가입한 신입생들도 인사를 나눕니다. 모두가 가난한 집안의 청년들이지만 이를 극복해 가며 학업을 마치고 직장도 갖고 가정을 이루어 가다 보면 그 가운데 여러 이야기들이 생깁니다. 그런 그들과 때로 함께 걱정하고 격려하며 문제를 해결해 가는 가운데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또다른 베트남 생활의 기쁨입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는 지금까지 가져 보지 못한 새로운 고민들이 모임 내에 생겼습니다. COVID-19 때문이었습니다. 재학생들은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졸업생들도 생활에 대해 나름의 염려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모임 대신 그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것이 짜오칼럼의 내용으로 적합한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누구에게 라도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이므로 여기에 올립니다.

잘 지내나요? 여러분.
요즘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이 있습니다. COVID-19이지요. 우리 모임의 중심은 대학생들인데 공부할 이 시기에 학교에 갈 수가 없으니 참 답답합니다. 사실 학생들 뿐 만이 아니지요. 모든 이들의 생활이 불편해졌습니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 선배들에게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재택근무 정도는 양호합니다. 지금은 인원을 감축하는 회사들도 있으니까요. 결혼해서 자녀를 가진 선배들은 다른 걱정이 많을 겁니다. 어린 아이들이 이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하니까요. 정말 어려운 때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자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힘들어서 울기도 했겠지만 어느덧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당할 때는 그 때가 최악인 것 같고 세상의 끝인 것 같아도 이전의 어려움과 같이 지금의 사태도 우리의 마지막 날은 아닙니다. 그러니 지나갈 이 시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진짜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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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어려움을 당해도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단지 두려워하고 걱정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화를 냅니다. 다른 사람들은 페이스북과 Zalo 채팅에 종일 매달려 있습니다. 아마도 잊고 싶어서 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지금의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이 격리와 통제의 시간을 어떻게 다루고 있나요?
현재를 불안하게 하는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재정적인 부분입니다. 돈이 없으면 모든 것이 불안한 것이 현실이니까요. 이런 불안은 아마도 점차 심각해질 것입니다. COVID-19가 미칠 경제적인 여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일 수 있습니다. 꼭 세계적인 경제구조를 말하지 않는다 해도 지금 당장 우리 생활에 미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 뿐만 아닙니다. 모든 위치의 사람들에게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분명한 한가지는 누구도 이를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일 겁니다.
그러니 이 어려움은 모두에게 주어진 동일한 어려움입니다. 비록 개인마다 그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상황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겪어내야 할 시간의 크기로써 동일하게 모두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이 시간이 다하길 그냥 참고 기다리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신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상황도 주셨고 그것을 지내야 할 시간을 주셨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저마다의 선한 것을 기대하신다고 나는 믿습니다. 큰 일을 도모해라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단지 여러분 개인 개인이 이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소비하는지에 따라 COVID-19 이후의 결과가 매우 달라질 것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시기에 그동안 시간이 없다고 미뤄두었던 원고를 마무리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작정했지만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매일 집에 일찍 들어가게 되니 지금처럼 좋은 기회는 없을 겁니다. 집중한다면 최소한 한 권의 책은 탈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게 회복되고 다시 바빠지게 되면 이런 계획은 엄두를 못 낼 겁니다. 상황이 갑자기 종식되면 어쩌냐고요? 그건 또 그것대로 좋은 일이지요. 우리가 바라던 것이니까요. 그러니 다만 목표를 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이 어려운 시기에 어떤 목표를 세우겠습니까? 가족이 있다면 평소에 함께 할 시간이 적었던 자녀와 함께 놀아 주기로 목표를 세울 수 있습니다. 재학생이라면 유투브를 통해 영어 공부에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한국어를 공부해서 다음 모임에는 내게 한국말로 인사해 보면 어떨까요? 학교가 문을 닫아 고향에 머물고 있다면 이 때 부모님을 돕는 것은 소중한 기억이 될 것입니다. 그래요, 생각해 보면 정말 많은 할 일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학업장학금은 계속 지원됩니다. 많지는 않아도 생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현재 해야 할 일에 대해 집중해 보세요. 새로운 목표를 세워보도록 하세요. 그간 미뤄 두었던 일들, 소홀했던 일들에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든 것에는 항상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COVID-19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다른 기회로 삼을 수도 있고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드냐며 자신의 불운에 탄식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모습을 취할지는 우리의 상황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그럼 한번 해봅시다, 여러분. 나는 우리 모임의 구성원들 모두가 건강한 마음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를 응원합니다.
2020년 3월, 물빛그룹에 속한 모든 청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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