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y 9,Thursday

한국의 공부 지옥에서 탈출기 -학부모와의 인터뷰

두 딸아이를 한국을 떠나 베트남에서 공부시킨 아빠의 이야기

살아오면서 많은 실수도 했고 때로는 좋은 결정을 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베트남에 데려오겠다는 결정은 내가 살아오면서 내린 결정 중 몇 안 되는 훌륭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아이(박지윤 여, 2000년생)가 초등학교 3학년에 베트남에 왔는데, 그때 한국에서의 지윤이 일상이 어떠했는가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힙니다. 
학교를 끝나고 나면 학원에서 버스가 와요, 무슨 학원인지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데, 방과 후 두 가지 학원에 다닙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말입니다. 
1차 학원을 마치면 2차 학원에서 역시 버스를 보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갑니다. 간식은 학원에서 제공합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 밤 10시가 됩니다. 그리고 곧 잠이라도 들 수 있다면 좋은데, 그 시간 이후에는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해야 해요. 
아이는 졸음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숙제를 마치고 자정이 다 되어야 쓰러지듯 잠이 듭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9시에는 다시 학교에 나가 있어야 합니다. 진짜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한국 교육은 정말 문제가 많지요. 
그렇다고 혼자서 나만 내 아이는 그렇게 안 키운다 하고 독야청청할 수 있나요? 못하죠. 하고 싶어도 아이들이 수긍하지 못해요, 친구들은 다 학원에 가는데 자기만 혼자 집에서 논다는 게 가당치 않은 일이죠. 스스로 왕따를 자청하지 않은 경우라면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도 단지 따라가는 것만이 아니라 앞서가야 합니다. 그런 큰 아이의 눈물을 보며 지내다가 베트남이 별로 앞선 선진국은 아니지만 한국의 공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를 제가 일하는 베트남에 데리고 왔습니다. 
결국 베트남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면서 아빠가 내린 그 결정에 선물을 준 셈입니다"

박우형(62) 사장은 두 딸을 가진 아빠다. 지금은 23살된 큰 아이와 7년 터울인 둘째 아이를 두고 있다. 큰 아이는 지금 호주의 시드니 대학 의학 전문 대학원에 입학한 지 2년차다. 그리고 작은 아이는 ABC INTERNATIONAL SCHOOL의 11학년(고교 1학년)이다. 베트남의 학제는 대학 입학 전 13학년을 기준으로 한다. 유치원 1년을 포함한 터라 초등학교 6년과 중 고교 6년을 합산하여 13학년이다.
그를 씬짜오베트남 사무실에 초대하여 대화를 나눴다.
(대담 한영민 주필)

 

아이들을 베트남에 데려오면서 학부모의 입장에서 그리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염려되던 것은 없었나요?
“가장 염려되는 일은 영어였지요.
아무래도 영어로 수업을 받아야 하는 국제학교에 입학한 터라 과연 제대로 수업을 받을 수 있는지 우려되었고, 아이들 역시 그 부분이 가장 큰 우려 사항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행히 부족한 영어 실력이지만 그런대로 입학할 수 있었고, 수업에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때 느끼는 건데 어학은 어릴 수록 더욱 쉽게 익히는 듯합니다. 국제학교에서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은 사전에 영어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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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베트남에 들어와서 아이들의 학교를 선정할 때 어떤 기준으로 학교를 선택했나요? 즉, 이곳에는 학국학교도 있고 다른 국제학교도 있는데 굳이 한국학교보다 학비가 몇 배나 비싼 ABC 제학교에 보낸 이유가 있나요?
당시, 호찌민의 유명 국제학교들도 학습을 위한 영어기준이 엄격한 터라 입학이 용이하지 않았습니다. 마침 ABC는 아직 졸업생을 배출하지 않은 때라 검증이 안 되었는지 자리가 좀 있었습니다. 영국식 학교라는 것을 믿고 보냈는데, 지금은 그 학교에 대한 명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한국학교 입학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한국에서의 교육에 질려서 데려온 아이를 다시 한국식 교육과 다를 바 없는 한국학교에 보내는 것은 이곳에 데려온 목적과 배치되는 것 같아 처음부터 생각을 접은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한국학교에 나와서 다른 외국 대학에 유학을 가는 학생들도 많지만, 별도의 시험 준비가 필요하기에 외국대학을 목표로 한다면 국제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큰 딸인 지윤이를 호주 의학전문대학원에 보낸 것으로 압니다. 그 이야기를 좀 해 주시죠.
“지윤이는 예전부터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피력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지윤이와 둘이서 목 바이를 거쳐서 캄보디아에 가는 여행을 했는데 아주 열악한 버스를 타고 목 바이에 내려서 잠시 쉴 때 더위에 지쳐서 거리의 상점에서 콜라를 하나 사 먹으려 하는데 그 주변에 현지 아이들이 전부 지윤이가 먹으려는 콜라에 시야를 보냅니다. 그들도 더위에 지치고 목이 마르고 콜라로 목을 축이고 싶었지요. 지윤이는 차마 그들 앞에서 콜라를 마시지도 못하고, 아빠를 쳐다보며 어떻게 해 하는 슬픈 눈망울을 보냅니다. 그 눈망울에 별수 없이 그 주변에 있는 열댓 명 아이에게 전부 콜라 한 병씩 사주었지요. 그제서야 환하게 콜라를 마시며 지윤이가 하는 말이 나중에 나는 이런 불쌍한 얘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곤 지윤이는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친구들과 함께 Giving Tree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아낌없이 준다”라는 모토로 봉사활동을 줄곧 했습니다. 지금도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지 용돈을 절약하여 국경 없는 의사회에 매달 20만원씩 기부를 하고 있어요. 말만 하는 아이가 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었지요.
큰 아이는 장녀라 그런지 알아서 하는 아이입니다. 진로에 관하여는 저와 많은 얘기를 했지만 최종 결정은 지윤이가 했습니다. 그리고 12학년부터 자연과학계 과목을 중점적으로 선택하는 A-Level 수업을 받으며 의대 진학을 위한 준비를 했지요. 그 노력 덕분에 호주의 시드니 대학의 의학전문대학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시드니 대학의 의학전문 대학원은 과학계 학사를 마친 후 입학 자격을 줍니다. 모든 학생은 일단 과학계 학사를 취득한 후 의학대학원 입시를 다시 보게 되는데, 지윤이는 시드니 과학계 대학에 입학 당시부터 학사를 마치면 별도의 시험 없이 바로 의학대학원에 자동으로 들어가는 특별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런 케이스는 베트남에서 고교를 마친 학생으로는 최초라고 하더군요.
장학금도 5만불을 받고, 의학전문대학 학비도 30% 할인해주는 특혜를 받아서 제 부담도 많이 덜어주었습니다.”

아주 자랑스러운 따님을 두셨습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국제학교와 한국학교의 교육의 차이가 있었을 만한데 어떤 차이를 느끼셨나요?
“제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처음에 ABC 학교에 다닐 때 주변에서 SSIS라는 미국식 학교가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한 번 학교를 옮겨서 공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잠시 옮긴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학기 정도가 지나서 지윤이가 공부하는 노트를 한 번 봤는데 꼴랑 3장 밖에 없는 거예요. 아니, 한 학기가 다 가는데 노트 3장이 전부예요. 그래서 도대체 공부를 어찌하는 거야 하고 물었더니 미국 학교는 교사가 주입식으로 공부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학생들 간의 토론을 거쳐서 스스로 공부하고 깨닫는 방식이라 노트에 기입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화들짝 놀라서 다시 영국식 학교인 ABC로 돌아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 자신도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세뇌된 듯합니다. 미국식 자율 교육에 대한 믿음이 안 가는 것이죠.
영국식 학교는 미국 방식의 완전 자율이 아니고 한국식으로 일방적 주입이 아닌 중간 형태를 취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공부 방식에 익숙한 한국의 학부모들은 영국식 교육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런데 왜 대학을 호주로 보냈나요? 한국이나 미국에 보내지 않고 호주로 해외유학을 보낸 이유가 있나요?
” 영국식 국제학교에서 배운 커리큘럼에 맞는 영국 의과 대학을 보낼 생각을 했는데, 영국의 경우 의사가 한국과는 달리 국가에서 관리하는 준 공무원 신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분이 보장되긴 하지만 그에 따른 훈련기간도 길고 제약도 있는 듯하여 영국대신 호주를 택했습니다.
호주는 영국식 교육 방식과 유사하고 또 의대는 7년제로 대학원 교육을 거치는 나라라 더 믿음이 갔습니다. 그리고 일단 세계 대학 중에서 한국 정부가 인정하는 의과 대학을 골라 원서를 보냈는데 호주 시드니 대학이 제일 먼저 좋은 조건으로 입학을 허락했습니다. 지금 지윤이는 과학계 학사를 취득하고 의학전문대학원 4년과정에 2년생입니다.”

큰 달 지윤이는 성공적인 길을 가는 듯합니다. 그러면 이제 11학년이 된 둘째 딸 지안이 문제가 남았는데 어떻습니까? 언니를 닮아서 공부는 잘 하겠지요?
“둘째 지안이도, 언니가 다니던 ABC 국제 학교 11학년(고등 1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둘째 애는 언니와 성향이 좀 달라서 제 언니가 간 길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언니와 터울이 많은(7살) 탓인지 언니를 잘 따르는 아이라 언니가 많은 도움을 줍니다. 큰 아이는 집에서 부모와 많은 얘기를 하곤 했는데 둘째 애는 요즘 아이라 그런지 할 말만 하고 대화를 잘 열어 놓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니와는 많은 얘기를 한다고 합니다. 언니가 제 3의 학부모 노릇을 해주고 있는 셈이죠. 언니의 경험 덕분에 초기 적응이나 지금까지 학창 생활은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둘째 애 지안이 진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일단 지안이는 언니와는 달리 공부에 그리 열심이 아닙니다. 사교적인 성격에 미디어에 관심이 많습니다. 희망사항이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니 아무래도 엔터테인먼트 쪽에 진로를 정할 듯합니다. 지안이는 한국으로 대학을 갈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 아이들의 특징인데, 한국 문화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한국 문화가 세계적 명성을 날리면서 아이들에게는 한국에 대한 애착이 생긴 듯합니다. 더욱이 12학년 특례로 한국 대학 진학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입장이 되면 거의 모든 학생이 한국으로의 진학을 선호합니다.”

자녀의 교육비는 얼마나 들어가나요?
“지금 지안이가 다니는 국제학교 학비가 년 6억 5천만 동이 소요되고, 별도로 학원비가 매월 5-6백불 들어가고 하니 매달 따지면 최소 3천 불 이상은 소요된다고 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호주에서 공부하는 큰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호주 의대 대학원 학비가 30% 장학금 할인을 받아도 7만 불 정도가 들어가고, 기숙사 비용 등을 합치면 년 10만 불 정도 들어가는 듯합니다.”

그럼 두 아이를 키우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년간 무려 1억 5천만원은 들어가는군요. 정말 큰 돈이군요. 봉급쟁이로는 감당이 안될 금액입니다.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난 후 자녀 양육이 박 사장님 가정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우리 가정의 모든 것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모든 것이 아이들 학습에 초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돈을 버는 것도 아이들 교육을 위함이 우선이고, 어디 놀러가도 아이들의 상황이 최우선 고려 사항입니다. 엄마의 일정은 모두 아이들의 일정에 맞게 조정되고, 집을 이사해도 아이들의 상황이 먼저 고려됩니다. 아무튼 가정생활의 80%가 아이들에게 집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들이 베트남에서 자녀를 교육시키고 있는 학부모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별도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감히 뭐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아이들의 진로를 결정하실 때 시대의 흐름을 함께 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다변화, 세분화되어 일상적인 공부에 의하여만 미래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니 자녀들이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들 유심히 관찰하고 함께 논의하는 게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요즘처럼 인공지능으로 인한 시대 변화가 급격해지는 세상에는 부모님들의 혜안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부모님들도 세상을 읽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올바른 길을 지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우형 사장과 긴 시간 대화를 나누며 느낀 점은 공부하는 학생의 형편보다 그런 자녀를 가진 학부모의 처절함이다. 그는 가정을 이룬 후 자신의 모든 것을 아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집안의 모든 일이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공부에 치여 사는 아이들만 안쓰러운 것이 아니다. 양육의 의무에 최선을 다하는 부모의 모습에 가슴이 짠 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런 부모의 애절한 사랑을 아이들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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