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y 4,Saturday

상실의 시대 – 추억의 힘

사람들이 소설을 읽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넷플릭스, 영화, 유튜브, 소셜 네트워크  등 재밌게 시간을 보낼수 있는 읽을거리, 볼거리 들이 너무 많아서 지금 소설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철지난 유행가를 얘기하는 것과 같은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저도 아주 가끔 소설을 읽는데, 기회가 되어 읽을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소설가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일본 작가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소설가를 뽑을때마다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함께 항상 1,2위를 다투는 작가입니다. <상실의시대>, <해변의 카프카>, <양을 쫓는 자의 모험> , <1Q84> 등 수 많은 베스트셀러 소설의 작가인데, 그의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을 꼽는다면 한번 읽기 시작하면 밤을 세워 읽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여러 작품에 대해 비슷한 배경, 비슷한 감성이 반복된다는 비판도 있지만 일단 책을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소설가로서 대단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실의 시대 (원제 : 노르웨이의 숲) > 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이자  대표작입니다. 1987년도 작품인데, 한국에서는 1988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판되었지만 부진한 판매량을 겪다가 이후 <상실의 시대>란 제목으로 출판되어 100만권이상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90년대 대학생들에겐 거의 필독서로 여겨졌고, 당시 한국의 젊은 소설가들이 비슷한 류의 소설들을 많이 쓰게했던 책입니다. 당시 박일문 작가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베스트셀러이면서 하루키의 아류라는 논쟁을 일으켰던 대표적인 소설이었죠. <상실의 시대>는 출판사 ‘문학과 사상사’와의 판권 계약이 끝나자 2013년 민음사에서 다시 <노르웨이의 숲>이란 원제로 재출판되었고 아직까지도 스테디 셀러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성장 소설이자, 연애 소설입니다. 소설의 화자인 37세의 와타나베가 자신의 대학교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에게는 고등학교때 순수한 우정을 나누었던 키즈키란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17살때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대학생이 된 와타나베는 그의 여자 친구였던 나오코를 도쿄의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만난후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그녀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전 남자친구 키즈키의 기억때문에 정상적인 사랑과 생활을 하지 못하고 결국 요양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계속하여 나오코의 곁을 맴돌던 와타나베는 수업시간에 미도리라는 여학생을 알게 되고, 내성적인 나오코와 달리 적극적이고 당돌한 미도리에게 또다른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와타나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또한 자신의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오코는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되고, 그 소식을 들은후 극심한 정신적 혼란 상태에 빠진 와타나베가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면서 소설은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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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추억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단골 메뉴입니다. 몸은 어른이 되었는데 마음은 아직 어린아이이고, 친구들과의 우정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면서, 친구들과 진심으로 감정적으로 다투며 상처를 받는 시기입니다. 좋아하는 이성친구가 생기지만 고백하는 방법에 서툴고,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시작도 못해보고 끝나거나 어설픈 결말을 맺기 일수죠. 어른이 된후에는 그때의 기억을 잊어버리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때의 경험과 상처가 어른이 된후의 인간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하루키 소설의 매력은 그때 그 교실로, 그 때 만났었던 그 친구들의 세계로 나를 데려가서 그 때의 나를 만나게 해준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죠. 지금의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생이 되어 실질적인 연애경험을 하게 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으로 사랑을 합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돌아보면 사랑을 위한 사랑이고,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그때는 모릅니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자신에게 맞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자신의 짝을 찾아가지만, 그때처럼 가슴이 아프고, 애절하게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하루키 소설은 또한 어설펐지만 솔직하고 용기있었던 그때의 나를 만나게 해줍니다.

소설의 주요 배경은 1960년대 말의 일본의 대학교입니다. 전세계는 68 혁명의 시대였습니다. 당시 전세계 선진국들을 휩쓸었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68혁명은 물질적 성공을 삶의 목표로 삼고 치열한 경쟁사회를 당연시했던 기존세대에 대한 신세대들의 정신적 ,제도적, 문화적  반항이었습니다. 히피 문화, 반항적 음악 등 다양한 모습으로 전세계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본에서는 당시 전공투라는 급진 좌파 학생운동의 흐름이 있었고, 소설 중에서도 그런 학생들의 모습과 그들과 갈등을 겪는 다른 학생들의 모습도 나옵니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이런 사회 분위기속에서 물질적 성공을 목표로 하는 기성세대에게도,  다소 모순되는 논리로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전공투 학생에게도 공감하지 못하면서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지키는 외로운 선택을 하는데, 그것이 학생운동 말기였고, 개인의 개성을 찾아가던 대한민국 90년대 대학생들에게 많은 공감을 일으켰던 이유였던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른이 되었지만, 우리 안에는 고등학생때의 나와 대학생때의 내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친구가 한 한마디 말때문에 밤을 세워 고민하고, 내일 학교가면 그 친구에 어떤 말을 해야할까 고민하던 나, 짝사랑하던 이성 친구에게 “왜 나는 안돼?” 냐고 진심으로 질문하던 나를 만나면, 바쁜 사회생활을 통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무뎌졌던 감정이 조금은 되살아 나고, 또 그때 꾸었던 무모하고 엉뚱했던 꿈도 떠올라 그때의 나에게 위로도 받고, 응원도 받게 됩니다. 그것이 추억의 힘이고 하루키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장연

금강공업 영업팀장

(전) 남양유업 대표사무소장

베트남 거주 17년차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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