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7,Saturday

거시기가 거시기해서 거시기하잖어?

한국인이 영어를 습득하고 사용하는 데 소위 “콩글리시”라고 부르는 “한국식 영어”를 극복하고 영어를 영어답게 배우고 사용하는 원칙을 소개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공부하면서 국제회의통역사(동시통역사)가 되기까지, 그리고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과 수 년간의 강의 현장에서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한국인이 영어를 마스터하는데 효과적인 원칙과 영어 사용법을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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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하던 해 1월에 처음으로 통번역사 전속계약을 맺고 삼성전관(현 삼성SDI) 양산 공장으로 출장을 가던 길이었습니다. 선배 통역사 몇 명이 1년 전부터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에 합류하는 계약이었고, 필자도 1년 이상 장기 계약을 하여 오랫동안 먼 지방 생활을 시작하게 된 터, 첫 통번역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이 남달랐던 기억입니다. 김해공항에서 공장까지 이동하는 헬리콥터가 생각보다 무서웠던 기억도 남았지만, 그 보다 그 헬기 안에서 선배 통역사 한 명이 해 준 조언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클레이, 통역할 때 외국인 컨설턴트들이 하는 영어를 잘 못 알아 들을까봐 걱정 하지마. 통대 졸업할 정도면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통역이 안되는 경우는 없으니까. 그런데 말야, 한국인 현업분들이 하시는 한국어를 잘 알아들어야 해. 정말 알아듣기 힘들어.”

아마도 경상도 분들 사투리가 심해서 그런가? 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선배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덧붙입니다.

“사투리 때문은 아니야. 클레이, ‘자동빵으로 째다’라는 한국어 표현이 무슨 뜻일 것 같아? 이 공장에서는 물류 부문에서 흔히들 쓰시는 표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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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통번역 업무가 시작되고 하루에 10시간 이상의 통번역도 일상처럼 진행하는 일정이 반복되면서, 그 헬기 안의 선배 말과 같이, 영어때문에 통번역이 힘든 경우는 없었지만, 오히려 한국어 표현이 명확하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삼성전관에서는 “반영하다”라는 표현을 무척 자주 쓰고 있다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오늘 회의 결과를 반영해서…”
“현장의 요구사항을 반영해서…”
“지시 사항을 업무에 반영하겠다…”
“변경 사항을 반영해서…”

이 외에도 수많은 “반영하다”를 들었는데, 문제는 이 반영하다를 흔히들 하듯이 (한영사전에서 가르쳐 준대로) reflect 라는 단어로 표현하면 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한국어의 “반영하다”란 “거울로 비추어 보다”라는 뜻인데, 그 수 많은 “반영하다”가 모두 “거울로 비추어 보다”라는 뜻은 분명 아니었을 테지요.
우리는 한국어의 특정 단어를 영어의 특정 단어로 정해놓고 기계적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현상을 “원문의 개입(show-stoppers)”라고 합니다.

원문의 개입(show-stoppers)의 예를 몇가지만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 따르면”은 반드시 “according to”로 써야 한다?
“기존의”는 당연히 “existing”이다?
“내부적으로”는 물론 “internally”이다?
“검토하다”는 확실히 “review”라고 하면 된다?
“당연히”는 당연히 “naturally”가 아니었던가?
“특히”는 “especially”가 아니고 무엇이던가?
“생각하다”는 언제나 “think”만 있으면 된다?
“상황”은 어떤 상황에서도 “situation”만 쓰면 되는 법…

여러분은 위와 같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업무 중에 많이 쓰시는 표현들인데, 만약 영어로 위와 같이 옮겼을 가능성이 높다면 원문의 개입에 잡히신 셈이 됩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이 표현하는 영어가 잘못된 표현인가?하고 의문을 가지실 수 있을 텐데요, 문맥에 따라서는 분명히 잘못된 경우도 있을 테지만, 위의 표현들이 굳이 잘못된 표현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주어진 표현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말”만 따라서 영어를 하는 습관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셨으면 합니다. “말”을 따르지 않고 “의미”를 따른다면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 팀에서 알아본 바에 따르면…” 과 같은 표현은,
“My team’s research found that…” 등으로,
“기존의 고객들”은 “our current customers”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our previous customers” 일 수도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I will discuss the matter with my team.” 정도가 적당할 것이고,

“당연히”는 “there is no doubt..” 또는 “without a doubt” 혹은 조금 어렵게 가자면 “in due course”와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특히, 문장의 제일 앞에 “특히”라는 말을 할 경우 (지금 이 문장처럼 말이죠) 영어에서도 그대로 “especially”라고 표현한다면 재앙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말에는 “추임새”라고 하여 별 의미는 없이 문장의 연결만 잘 읽히도록 쓰는 말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후 모시게 된 한 저명한 교수님은 달변으로 유명하시고, 덕분에 세계 유수 인사들과 TV 대담 등도 많이 하셨던 분인데, 이 분을 모시고 회의를 다니면서, 이 교수님은 “예컨데”라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쓰신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말씀의 모두에 거의 매번 “예컨데…”하고 붙이시는데, 그 이후 말씀을 아무리 열심히 들어 보아도 “예”는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이런 “추임새”는 개인마다 다른 습관이 있을 수 있는데, 영어에서는 아얘 옮기지 않아야 좀더 영어다운 표현이 됩니다.

영어의 단어도 한 개의 단어가 여러 개의 뜻이 있듯이, 우리말의 단어도 한 개의 단어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시기가 거시기해서 거시시하던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있듯이, 말의 표면,
즉 껍데기를 따라가기 보다는 말의 이면에 있는
알맹이, 즉 의미를 따라가는 습관을 들이면
진정한 영어의 고수가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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