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December 14,Friday

베트남 경제 연구소장 김석운

 

근년 들어 갑자기 베트남 관련 소식에 새로운 이름이 등장한다.
김석운, 베트남 경제 연구소장라는 타이틀을 지닌 분이다. 베트남 경제 연구소? 무엇을 하는 곳인가, 그리고 이 연구소를 관리하는 타이틀을 안고 있는 소장, 김석운은 누구인가?
그는 어떻게 어느날 갑자기 베트남 관련 경제통으로 등장한 것일까? 이런저런 의문을 안고 그를 찾은 곳은 시내 한 복판 비즈웰이라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합동 사무실 형태의 공간이다. 청바지에 케쥬얼 자켓이 에너지 넘치는 그의 활동과 어울려 보인다.
<대담 한영민주필>

 

한컴 MDS 법인장 겸임
그는 그곳에 한컴 MDS의 법인장DMF 맡고 있는데, 한컴 MDS는 한글과 컴퓨터의 자회사로 미국의 마이크로 소프트 사의 베트남 독점 대리점을 맡고 있다고 한다. 취급품목은 물론 MS 사에서 나오는 일반 소프트웨어는 아니고 바코드를 읽는 포스 시스템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독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베트남을 포함하여 동남아 지역의 대리점을 다 함께 관리하는 알짜배기 회사라는 설명이다.
그의 명함을 좀 훑어보자. 맨위에 베트남 경제 연구소(Viet-Han Marketing Research) 라는 명칭에 연구소장 CEO라는 새겨있다. 그리고 그 아래 한컴MDS베트남 – 베트남 법인장이라는 두번째 직책, 그리고 자신의 메일과 전화번호 그리고 자신의 블로그와 함께 한국무역신문/ 김석운의 베트남 통신이라는 마지막 소개로 그 아래 현재 사무실 주소가 기록되어있다. 그는 한 몸으로 적어도 두가지 이상의 직책와 서너가지 이상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는 셈이다.
일단 그가 시작한 자신의 일에 대한 얘기는 베트남 경제 연구소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한컴 MDS에서 취급하는 마이크로 소프트 사의 포스 시스템이다. 기자의 방문 목적과는 다른 아이템이다. 그렇다고 “그게 아니라” 하며 말을 짜를 수도 없고 미소 속에서 그의 말을 경청하고는 있지만 틈만 나면 대화의 주제를 돌려 놓기 위하여 노리는 기자, 그런 기자의 애닮음과는 달리 열성적으로 한컴 MDS 베트남 법인장으로의 역할을 수행하는 김석운 소장, 초면의 두 중년이 대화의 주제 선택을 놓고 밀당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베문화교류협회 멤버로 베트남 진출
잠시 숨을 돌리는 김 소장,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기자,
“그런데, 언제 베트남에 오셨나요?” 거의 모든 인터뷰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식상한 질문이지만 김석운 소장의 경우,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어쩌면 기자의 모든 궁금증이 전부 담긴 질문의 전부일 수 있다. 언제 베트남을 아셨는데 이렇게 <베트남 경제 연구소>라는 경제 전문 기관을 만드셨는지요, 하는 의미가 내포된 질문이다.
그가 베트남에 들어온 것은 2014년이라고 한다. 한국 통신에서 장기 근속자로 은퇴를 한 후 제 2의 인생을 누리기 위해 찾은 곳이 베트남이라는 얘기다. 베트남을 찾은 대다수의 한국인들과 대동소이한 이유로 이곳을 찾은 셈이다. 단지 다른 점은 베트남에 들어 온 이후의 그의 행보다.
<한베문화교류협회>라는 단체에서 추천하여 그 단체에 소속된 맴버로 베트남에 입국한 후, 그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베트남 영자지를 뒤지며 각종 소식을 번역하여 자신의 블러그(kswkso@naver.com)에 올리는 일에 매진했다. 특별히 경제 소식 만을 골라서 올린 것은 아니지만 올리다 보니 거의 모든 소식이 경제관련 소식이었고 거기에 붙힌 이름이 <베트남 경제 연구소> 즉, <한베문화교류협회> 내에 또 다른 부서다. 일인 부서.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가 사용한 <베트남경제연구소>라는 단체는 물리적 실체가 없는 단체였던 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베트남경제연구소>라는 이름을 법인으로 등록을 했다고 한다.
그가 올린 뉴스들은 전부 공개된 정보들이다. 그러나 공개된 정보를 나름대로 추렴하고 정리하여 인터넷에 올리기는 수년 동안 꾸준히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고 그에 따라 도처의 문의가 쇄도하게 되고 그 요청에 성실히 임하다보니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 베트남에서의 지난 3년여의 그의 간략한 행보다.

상생의 현장 – 베트남
그는 지금 베트남에서 그야말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현재 무역신문에 <김석운의 베트남통신>이라는 이름으로 기고를 하고 있고, 각종 단체에서 요청하는 강연 스케줄을 조정하는 데도 곤욕을 치를 정도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또한 동시에 여전히 베트남 경제연구소의 이름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려야하고, 한컴 MDS법인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최근에는 한컴 MDS사무실이 들어있는 합동 사무실, 비즈웰 사의 요청으로 달랏에 지역 사무소를 설립하고 한국과 베트남의 농산물 교역에 관심을 쏟기위해 아예 숙소를 달랏으로 옮기고 호찌민과 달랏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베트남인의 특성으로 상생할 줄 아는 민족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인천에서 자란 그는 그곳의 얘기를 시작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차이를 얘기한다.

“제물포 앞의 상점들이 그 앞의 즐비하던 포장마차 때문에 자신들의 장사가 지장을 받는다는 이유로 정부에 압력을 가해 포장마차를 치우게 하자, 그 포장마차들이 송도로 옮겨가고, 그러자 아예 인천의 상권 자체가 송도로 옮겨져 기존의 제물포 상권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더 먹으려 하다가 전체시장을 상실하는 어이없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베트남에 와서 전혀 다른 일을 보았습니다. 베트남 시장에서 과일가게가 즐비한 상점 앞에 역시 노점상들이 과일을 팔고 있는 것을 보고, 과일가게 주인에게 저 앞에 있는 노점상이 당신의 장사를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물었더니 그 주인의 답변은 제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들은 좀 고급 과일을 비싼 가격에 팔고, 노점상은 조금 질 낮은 과일을 저렴하게 팔고 있으니, 다양한 고객의 요구를 전부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오히려 그들이 있음이 고마운 일이다 라는 말을 듣고 참 부끄러웠습니다. 이 베트남인은 우리와 달리 상생의 방법을 깨우친 민족입니다.”

마지막으로 베트남과 한국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그는

“베트남과 한국은 다 잘 아시다 시피 유교사상을 근간으로 국민 정서가 형성되어있는, 세계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정서적 공대감을 형성하고 있는 두 나라입니다. 지금이야 경제적인 이유로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실제로는 국민 정서적 이유만으로도 두나라는 아예 하나로 합쳐져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적인 사상이 다르다 해도 국민 정서가 가까우면 그런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이 우리와 지역적으로 가깝지만 갈등과 반목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국민들간의 정서적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야 말로 우리는 진정한 우국을 만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능한 많은 한국사람들이 베트남에 오고 또 그 못지않게 많은 베트남 인들이 한국을 찾아서 이제는 경제적인 이유 만이 아니라 국민들이 서로가 좋아서 자주 교류하는 그런 진정한 동맹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이미 열려 있으니 특히 베트남에 계신 한국인들이 그런 매개체 역할을 해주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공유의 삶을 실천
김석운 소장은 베트남이 궁금하여 스스로 공부한 흔적을 인터넷에 올리는 나눔의 삶으로 그는 자신의 명성을 만들어 갔다. 어쩌면 우리 교민들에는 김소장보다 훨씬 풍부한 베트남의 지식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김소장의 다른 점은 그 지식을 공유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것이 그와 다른 이의 자리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는 상생의 나라에서 공유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One comment

  1. 한국에 소재하며 배우 정보석씨를 전속 모델로 인테리어 및 실내건축자재(도어 몰딩 마루 욕실장)
    제조업체 예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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