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October 21,Monday

경건함을 선택한 낭만주의 영웅, ‘프란츠 리스트’

여섯 마리 백마가 끄는 마차를 타고 전 유럽을 누비던 음악가. 현란한 테크닉으로 ‘피아노의 제왕’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던 음악가. 파란만장한 연애를 즐겨 끊임없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했던 바람둥이. 속세를 떠나 종교에 귀의함으로써 대중들을 의구심의 바다에 빠뜨려 버렸던 반전의 사나이. 바로 ‘프란츠 리스트’의 이야기이다.

소년 비르투오소
프란츠 리스트는 1811년 서부 헝가리에서 태어났다.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아버지 아담은 아들이 음악영재인 것을 알아채자마자 당시 가장 명성있던 체르니 선생에게 데리고 간다. 오스트리아의 초일류 선생이던 체르니는 리스트의 천재성에 반해 레슨비를 일절 받지 않으며 지도하기 시작한다. 체르니의 스파르타식 교수법 덕분에 리스트의 피아노 테크닉은 단기간에 눈부시게 발전하였고, 눈 깜짝할 사이에 유명해진 소년 리스트는 제법 큰 돈을 벌어들이는 아이돌 스타가 된다. 아들이 신동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자 욕심이 생긴 아담은 아직 수련이 더 필요하다는 체르니 선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아들을 데려가기 위해 빈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파리 음악원 입학에서 낙방하게 되고… 하는 수 없이 리스트는 다양한 선생님들로부터 개인 레슨을 받으며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의 주요도시로 연주여행을 다니게 된다. 어린 소년에게는 혹독한 일정이었다. 아들부심이 대단했던 아담은 상당한 개런티를 손에 쥐게 되자 더욱 눈이 멀기 시작하였고, 끊임없이 아들의 연주 일정을 잡았다. 쉴 새없는 연습과 연주 강행군으로 지쳐가던 리스트는 점점 연주하는 기계가 되어가는 자신의 생활이 싫어지기 시작한다.

접어둔 꿈, 사제
그렇게 약 8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강압적인 아버지의 관리로 인해 숨을 곳이 없었던 리스트는 연주여행 중 틈틈이 종교서적을 뒤적이며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 그랬다. 십대 소년 리스트의 마음 속에는 성직자의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일고 있었다. 사제가 된다면 뭔가 삶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신학교 진학을 원하던 아들의 속마음을 간파한 아담은 더욱 빽빽한 스케줄로 리스트의 꿈을 잘라 버린다. 하지만 아들의 전 스케줄을 함께 소화하던 아담은 연주일정을 강행하느라 몸이 보내는 이상신호를 무시하게 되고, 급성 장티푸스로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황망히 아버지를 여의고 가장이 된 리스트. 사제가 되고 싶은 그의 꿈은 이제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던 리스트는 파리의 모론토가 7번지에 자리를 잡고 레스너로서의 삶도 병행하게 된다. 그렇게 그는 생활 음악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음악회를 바라보는 리스트의 시각이 변하고 있었다. 뻔한 프로그램에 뻔한 음악가들, 진지함보다는 단순한 유희의 대상으로 음악을 취급하는 몰상식한 관중들의 태도에 실망한 리스트는 무대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연주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싶을 만큼 허무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에 유행하던 콜레라로 사망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음악회에서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연주를 듣게 되는데…리스트는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충격을 받게 된다. 그 어디에서도 본 적 들은 적 없는 살인적인 테크닉과 청중을 압도하는 무대 매너, 괴기적일 정도로 빠져들게 만드는 카리스마.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날의 파가니니 연주는 다 꺼져 불씨만 남을 뻔 하던 리스트의 가슴에 다시 한번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된다. 그것도 활활!!

‘리스트’ 열풍 속으로
그는 완전히 바뀌었다. 정말 번개라도 맞은 것 같았다.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기로 작정한 리스트 아니, 파가니니를 능가하는 연주가가 되고 싶었던 리스트는 획기적인 연주와 무대 연출로 유럽 음악계를 평정하기 시작한다. 바로 ‘피아노 독주회’라는 전대미문의 음악회를 기획한 것이다. 피아노 독주회, 요즘은 너무나도 익숙한 음악회 형태이지만 당시의 음악회는 다양한 악기군과 연주자, 그리고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된 ‘종합 음악 퍼레이드’였다. 리스트는 자신이 단독으로 출연해 오로지 자신만이 주인공이 되기를 원해 두어 시간에 육박하는 자신만의 독주회, 즉 ‘최초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기획했다. 그는 시대복을 타고난 음악가였다. 당시의 피아노는 나날이 계량되고 있어 역사상 가장 발전된 음향과 기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덕분에 리스트가 추구하던 온갖 진기스러운 피아노 테크닉을 시험하기에 충분했다. 즉 손가락을 되도록 건반 가까이에 밀착시켜 연주하는 전통적인 ‘핑거 스쿨(Finger School)’ 연주를 던져 버리고 손을 그야말로 하늘 높이 쳐들었다가 몸무게를 실어 건반에 내려 꽂는 드라마틱한 ‘무게 테크닉’을 구사했다. 너무 세차게 내리친 경우엔 연주 도중 피아노 줄이 ‘탕!’ 하고 끊어지기도 해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주기도 했다. 또한, 악보를 보고 연주하던 연주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연주 중간에 보면대의 악보를 던져 버리는가 하면, 무대에 등장할 때 끼고 있던 장갑을 관객석으로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전통적으로 관객에게 등을 보이며 연주하던 피아노를 옆으로 돌려 관객이 자신의 손과 오른쪽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하는 등 남다른 쇼맨십을 구사하며 관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그 뿐인가, 리스트는 비주얼에 있어서도 단연코 스타였다. 건장하고 반듯한 체구에 귀족적인 얼굴, 남성미 넘치는 턱선과 찰랑거리는 금발머리는 여성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일화에 따르면, 리스트와 눈만 마주쳐도 기절을 하는 여인, 연주회장 무대쪽으로 꽃다발 대신 보석을 던지는 여인, 심지어 리스트가 피우다 버린 시가를 죽을 때까지 간직하는 여인도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매력 넘치는 사나이였길래… 아무튼 상당한 끼의 소유자 프란츠 리스트는 이미 파가니니의 인기를 능가할 스타가 되어 있었다.

낭만적인 광기, 결국 ‘사제’의 길을 만나다
리스트는 파리 음악계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하던 22세에 생크릭 백작의 딸 캐롤린과 첫사랑에 빠졌었다. 하지만 백작은 귀족 출신이 아닌 가난한 음악가 리스트에게 자신의 딸을 내주지 않았다. 너무나도 사랑했던 연인과 이별하게 된 리스트는 한동안 실의에 빠지게 되었고, 귀족들의 우월주의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리스트는 귀족 사회를 조롱하듯 파격적인 러브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주인공들은 바로 마리 다구 부인과 자인 비트겐슈타인 부인. 둘 다 부인이니 유부녀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독일로 망명한 프랑스 귀족의 딸 마리는 ‘샤를 다구’ 백작과 결혼해 이미 두 아이가 있는 여인이었다. 리스트보다 6살 연상이었던 그녀는 자신의 애정 없는 결혼에 신물이 나던 즈음 리스트를 만나 겉잡을 수 없이 사랑에 빠졌고, 결국 프랑스 파리 사교계에 핵폭탄급 스캔들을 던진 채 리스트와 유럽으로 밀월 여행을 떠나 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열렬히 사랑했던 사이였음에도 두 사람은 10년동안 3남매를 얻은 후 남남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자인 비트겐슈타인 부인은 누구인가? 폴란드 대지주의 딸이었던 비트겐슈타인 공작 부인은 17세 때 러시아 니콜라스 왕자와 결혼해 딸 하나를 둔 여인이었다. 왕자와의 극단적인 성격차이로 별거 중이었던 그녀는 키에프의 한 연주회에서 리스트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이 후 로마 교황청과의 긴 이혼 소송을 불사하며 리스트와의 재혼을 감행하려 했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았다. 비록 결혼은 틀어졌지만 비트겐슈타인 부인과의 만남은 리스트의 운명을 바꾸게 되었다. 평생동안 24권의 신학 관련 서적을 쓸 정도로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그녀의 영향이었던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바쁘고 잘 나가던 리스트는 54살에 하급 사제 서품을 받게 되었다.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에서 별안간 사제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 부인과의 만남은 어쩌면 리스트에게 있어 예정된 운명이지 않았을까. 이미 사춘기 시절 사제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리스트에게 운명처럼 다가와 결국 그의 꿈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촉매제 역할을 했을런지도.

귀신같은 테크닉으로 유럽을 호령하던 피아니스트 리스트보다, 겁없이 질주하던 불륜 스캔들의 주인공 리스트보다, 20년 동안이나 검은 수단을 입은 카톨릭 성직자로 산 말년의 리스트는 더할 나위 없이 파격적이었다. 결국 그의 꿈은 이루어진 것인가?

김 지 희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졸업(교육학 학사) / 미국 맨하탄 음악 대학원 졸업(연주학 석사) / 한세대학교 음악 대학원 졸업(연주학 박사) / 국립 강원대학교 실기전담 외래교수(2002~2015) / 2001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 이후 이태리, 스페인, 중국, 미국, 캐나다, 불가리아, 캄보디아, 베트남을 중심으로 연주활동 중 / ‘대관령 국제 음악제’, 중국 ‘난닝 국제 관악 페스티발’, 이태리 ‘티볼리 국제 피아노 페스티발’, 스페인 ‘라스 팔마스 피아노 페스티발’ 《초청 피아니스트》 E-mail: pianistkim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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