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February 20,Thursday

세월의 무게

양력으로 1월 1일도 지냈고, 이제 음력으로까지 1월 1일이 지났으니 피해 갈 수 없는 새해이다. 그렇다. 바야흐로 2020년이란다. ‘란다’ 라고 남 얘기하듯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숫자가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 얘기를 옮기듯 말할 수밖에 없다. 애써 모른 척하면 올해를 가리키는 숫자가 나를 피해 가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도 쬐끔은 담겨 있다.

씽글클럽의 칼럼니스트 한 분은 서기 2020을 SF영화에나 나오는 해로 느꼈다고 한다. 그 말이 옳다. 이 해의 숫자에는 어딘지 비현실적인 냄새가 난다. 그러니 우주에 전함이 뜨고 별들의 공간을 뛰어 넘어 여행하는 SF의 한 배경을 떠올릴 만도 하겠다.

저 멀리 우주로 떠도는 새해의 비현실감을 지구별로 끌어와 현실로 주저 앉히는 것은 ‘나이’이다. 새해 달력의 첫 장을 열 때, 그리고 새 달력이 새로 한 살이라는 달갑지 않은 선물을 안겨줄 때, 우리는 나이를 ‘먹는’ 일을 통해 세월의 무게를 느껴야 한다.

아는 사람이 연말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떡국이 몸에 안 좋은 음식이라고 밝혀졌다는 것이다. 떡국을 많이 먹으면 각종 성인병과 더불어 암, 골다공증, 치매는 물론 탈모를 유발하고 각종 노인병에 직,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단다. 헐! 그런데 국내외 연구진들의 보고에 의하면 떡국이 이렇게 위험성 높은 식품인 이유는, (이 대목에서 뜸을 들여야 한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말하기를) 떡국을 먹을수록 사람이 나이를 먹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헐!! 뻔히 농담인 줄 알면서도 이 메시지를 읽고 나니 맛있게 먹었던 떡국이 순식간에 나를 유혹해 결국 한 살을 더 먹게 만드는 몹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런 유머를 듣고도 올해 따라 웃을 수 없었던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일년 내내 몸무게가 늘었느니 어쩌느니 비애에 빠지다가도 새해를 맞으며 나이라는 선물을 받아 들을 때, 몸무게의 무게라는 것이 세월의 무게감에 비해 얼마나 가벼운 것인가를 느낄 때, 더 이상 떡국 유해론이 유머처럼 들리지 않는 이 심상치 않은 현실감은 무엇일까.
세월이 주는 선물이란 이상한 것이어서 내가 나를 나처럼 느껴지지 않게 하는 이상한 힘이 있다. 거울을 보면 내가 상상하는 내 모습과는 다른, 묘한 중년이 거기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눈 아래는 처져 있고 볼이 늘어진 입가는 심술이 담긴 것처럼 보인다. 귓가의 머리카락은 이미 허연지 오래이고 그나마 그걸 확인하려면 이제는 안경 없이는 보이지 않아서 눈 조리개를 가로로 좁히고 좁히고 또 최대한 조여서 볼 수밖에 없으니.

그런데 세월이 지난다 해도 시간도 멈추고 나이도 멈추는 관계들도 있나 보다. 부모님에게서 자식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백순 노인인 어머니께 팔십 아들은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듯 불안하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모친은 두 살 때나 팔십 때나 영원히 엄마로 불리는 것처럼. 남들 다 가는 군대를 대학 졸업하고 어렵사리 간 서른이 다 되가는 나이 든 아들놈도 부모에겐 어린아이이다. 생전 처음 만나는 환경에 적응은 제대로 할지, 좋은 선임들을 만났는지, 훈련은 고되지 않는지. 어린 동기들 사이에서 느끼는 소외감이 더할텐데 괜찮을런지. 오랜 유학생활에도 해보지 않던 걱정을 하루하루 쌓아가는 걸 보면 확실히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세월의 영향에서 비껴 나 있다.

친한 동창, 동문들의 모임도 특별한 영역이겠다. 친한 선후배 사이의 모임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후배 한 사람이 대학 때부터 모이는 선후배 모임이 있다는데 지난 겨울 한국에 방문 차 간만에 모인 모양이다. 오랜만에 왔다고 시간을 애써 내 준 선배들이 반갑기는 했지만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이면 막내라고, 이 넘 저 넘 하고 하대하며 불러 대는 걸 들으면서 자기가 왜 이 대접 받으려고 애써 이 자리에 참석했나 헛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자기도 자식 놈이 무럭무럭 커서 아빠와 곧 어깨를 겨누려고 하는 흰머리 숭숭한 중년인데. 그때 그는 깨달았다. 그들 사이에 시간이 멈추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첨 만나 인사할 때는 그래도 격의라는 게 있었지만 건네고 받는 소주 한두 잔에 광속보다 빠르게 모든 관계가 옛 시간으로 회귀해 버리더란다. 그러니 선배들에게 자기는 영원히 만만한 후배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거라는 얘기이다. 그래도 변한 게 있지 않겠냐고 묻는 내게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예나 변함이 없지만 관심사는 한결같이 제 몸의 건강으로 바뀌었습디다 라는 대답을 후배는 들려주었다. 주변 사람 중에 세상을 떠나 보내는 일을 겪으니 관심이 그렇게 변해 갈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선후배 관계로 모여 웃고 떠드는 그 자리에는 세월이 멈춘 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묵직한 무게의 두려움으로 그 사이에 자리를 하고 앉는 모양이다.

세월의 무게를 뭐라 비할까. 나이를 먹어가며 겹겹이 쌓아간 세월의 무게는 어디로 축적되는 것일까. 어떤 사람에게는 단지 성장하면서 얻어가는 키와 몸무게로만 남을 것이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이 짊어지고 살아온 날들의 무게가 인생 속에 녹아들지 않을까. 그래서 어떤 이에게 세월의 무게는 살아온 날들의 진중함으로 비춰지고,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너무 무거워 삶을 힘겨워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세월의 무게가 준 선물, 나이를 무어라 할까. 차라리 그것은 흐르는 세월의 거친 물살에 버티어 서는 숨가쁜 힘, 반력(反力)이라고 해야 할까.
떡국 한 그릇으로 늘어가는 나이에 한숨 짓거나, 빼야 할 나잇살에 고민하기 보다는 나이 한 살을 더 먹음으로써 한 해를 더하는 세월을 너끈히 짊어질 수 있도록 내 인생의 무게와 힘을 더하기를 소망한다. 올해는 뗏 명절이 유난히 빨리 왔다. 나이 먹기를 두려워 말고 세월을 짊어질 힘을 내시기를 모든 씬짜오베트남의 식구들과 더불어 바란다. 다들 힘찬 기합으로 시작하는 한 해가 되시라. 으랏차!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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