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June 3,Wednesday

드뷔시의 인상주의, 기존 미학에 도전하다

“나는 음악을 열렬히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난 그것을 숨막히게 하는 전통으로부터 해방시키려고 한다. 그 음악은 솟구쳐 오르는 자유를 위한 예술이며 하늘과 바다, 바람과 같이 무한한 것들에 대한 예술이다. 내가 진정 추구하는 음악은 영혼의 서정적 발로와 꿈의 환상에 충분히 순응할 수 있는 유연한 것이어야 한다.”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을 창시한 ‘클로드 드뷔시’가 했던 말이다. 여기서 그가 언급한 ‘전통으로부터의 해방’은 그가 일생을 걸고 지향했던 인상주의 음악관을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그렇다면, 인상주의란 정확히 무엇이며,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은 어떠한 모양으로 ‘전통으로부터 해방’되었던 걸까? 오늘의 테마,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 얘기 속으로 들어간다.

낙제생의 반전
드뷔시는 1862년 8월 22일, 파리 근교인 생 제르맹 앙레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살림이 넉넉치 못해 지인의 후원을 받아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탁월한 재능을 발판으로 11살의 어린 나이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하게 된다.피아니스트를 꿈꿨지만, 콩쿨운이 없었던 그는 작곡으로 자신의 진로를 바꾸게 되었는데, 작곡과 교수님들에게 그는 그야말로 두통거리였다. 왜냐면, 그는 성실히 배운대로 작품을 써내는 모범생과는 180도 다른 괴짜였기 때문이다.
정통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교수들에게 그가 제출하는 곡들은 이상하고 괴상한 것이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불협화음과 규칙없이 이리저리 바뀌는 박자 일색. 가르쳐준대로 하지 않는 이 문제아를 이해해 줄 교수는 없었다. 적어도 파리 음악원에는. 그래서인지 그의 화성학 시험은 언제나 낙제였고, 제대로 교수들의 눈 밖에 나게 된다.
이렇게 반골 기질이 다분했던 그가 언젠가 현실과 타협한 적이 있다. 보란듯이 멀쩡한 작품 ‘칸타타 탕자’를 작곡해 로마 대상(당시 유럽에서 가장 명망있던 콩쿨로서, 수상자는 이탈리아 유학 특전을 받게 됨)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고 만 것이다. 화성학 낙제생은 그렇게 모범생 코스프레에 성공해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로마는 그에게 너무 무료한 곳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인기장르 ‘벨칸토 오페라’는 드뷔시의 취향과 전혀 맞지 않았고, 그 곳 교수들의 수업은 프랑스와 다르지 않은 구태의연한 것이었다. 정부의 특혜를 받아 부푼 꿈을 안고 올랐던 유학길인데, 4년 예정이었던 그의 유학은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2년만에 끝이 났다. 그렇게 드뷔시는 보따리를 싸
파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화요회
파리로 돌아온 드뷔시의 눈길을 끈 건 ‘화요회’라는 예술가 모임이었다. 화요회. 시인 말라르메가 자신의 집에서 매주 화요일 밤마다 열었던 이 모임은 보들레르, 베들렌 등의 상징주의 시인들과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등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주된 멤버였다. 주로 젊은 예술가들이었던 그들은 기존 문예사조의 고리타분한 미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좀 더 새롭고 혁신적인 프랑스 예술의 지평을 펼치자’라는 모토로 모여 열띤 토론을 나누었다. 상징주의 시인들은 언어의 사전적인 의미보다는 해당언어가 품고 있는 뉘앙스에 매력을 느꼈다. 그들은 단어와 단어의 조합으로 발생하는 신비로운 어감, 특정 단어가 품고 있는 암시들, 그 언어들이 내뿜는 상징효과 등을 탐닉했다.

상징주의는 원래 10세기 중후반 프랑스 시인들 사이에서 퍼졌던 문학적 인상주의로, 상징주의 시인들은 전통적인 문장구성법이나 작시법에 만족하지 못했고, 표현이 규격화 되어있던 전통적인 시에 싫증을 냈다. 논리로 풀어내는 시가 아닌 순전한 감각으로 느끼는 시, 일반적인 법칙에 눈치보지 않는 지극히 개인화된 시, 이러한 상징주의 시의 풍부한 암시성을 만나게 된 드뷔시는 바로 매료되고 만다. 그 뿐인가, 작품에 빛의 본질을 끌어들인 인상주의 화가 마네와 모네의 그림을 보고는 그 특별함과 앞서감에 넋을 잃고 만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활동은 기존화가들의 그것과 판이하게 달랐다. 그들은 어두침침한 ‘아뜰리에’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밖으로 나갔다. 밝은 태양이 반짝이는 야외로 나가 시간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구름의 모양을 읽었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일렁이는 파도의 결을 느꼈으며, 햇살의 기울어짐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세심히 포착했다. 이들은 사물의 고유한 색이라는 개념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는 모든 사물들은 빛에 의해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모습을 바꾸었다. 그러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상징주의 시인들의 시와 더불어 드뷔시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신세계였다. 언제나 새로움에 갈급했던 드뷔시는 이제 자신이 추구하는 또 다른 차원의 음악을 향해 느낌표를 찍고 씩씩하게 걸어나갈 힘을 얻고 있었다.

시대의 반항아, 인상주의 음악가 되다
중세 시대 음악의 주도권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에게 있었다. 그 주도권은 18세기경 독일이 가져가게 되었고, 그 후 200년동안 독일이 세운 음악이론과 기법 등이 유럽음악을 장악하게 되었다. 독일과 프랑스는 수시로 민족적인 분쟁에 휘말렸고, 이로 인해 프랑스 사람들의 독일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졌다. 그래서 19세기 말의 프랑스 음악가들은 더 이상 독일 음악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프랑스 음악을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새로운 예술조류 속에서 ‘화요회’ 멤버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상징주의와 인상주의를 골고루 섭취하게 된 드뷔시는 이를 자신의 음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게 되었던 것이다. 드뷔시의 음악을 듣다 보면 이런 단어들이 떠오른다. 환상적, 감각적, 은은함, 묘한 화성감, 불확실한 경계선, 파스텔톤, 순간의 포착, 암시, 회화적, 몽환적, 정처없음, 부유하는 선율들, 보이지 않는 끝 등등…
그의 인상주의 경향이 가장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작품은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이라고 알려져 있다. 1880년, 드뷔시가 이탈리아 북부의 베르가모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와 작곡한 모음곡이다. 모두 4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 1곡: 전주곡(악곡을 시작하는 오프닝 곡) / 제 2곡: 미뉴에트(3박자 춤곡)
제 3곡: 달빛(가장 유명한 곡) / 제 4곡: 파스피에(4박자 계열의 춤곡)

세번째 곡 ‘달빛’이 가장 유명하다. 달빛이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듯한 톤 칼라, 은은한 달무리를 나타내는 듯한 화음들은 몽환적이면서 따사롭다.
그 다음으로 손꼽을 수 있는 드뷔시의 인상주의 대표곡은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겠다. 앞서 언급되었던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독백>을 토대로 한 관현악곡이다. 사실 말라르메가 이 시를 처음 썼던 시기는 1865년이었다. 드뷔시가 세 살 때였나보다. 그런데 정확히 11년 후, 말라르메는 이 시를 <목신의 오후>라는 제목으로 개작해 시집으로 간행했고, 화요회의 멤버였던 드뷔시는 이 시를 보자마자 악상을 떠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인상주의적 화풍이 다분한 이 작품의 스토리는 환상적이고 엉뚱하다.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시칠리아 초원에서 물의 요정 ‘님프’와 ‘나이아드’에게 반한 ‘목신(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목축을 관장하는 사람, 상체는 사람이요 하체는 염소)’은 그들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낮잠에서 깨어 몽롱한 상태로……”

마지막으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목신의 오후 전주곡> 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인상파적 세계에 푹 젖어든 곡이 있다. 1905년에 완성한 <바다>. 평소 동양미술에도 관심이 많았던 드뷔시는 일본의 유명 판화가 ‘가스기카 호쿠사이’의 판화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작곡했다. 모두 3개의 교향적 스케치인 이 작품은 드뷔시가 동경하던 바다의 모습이 회화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제 1곡: 바다의 새벽부터 정오까지
고요한 새벽…이내 떠오르는 태양…그것이 투영된 금빛 바다의 물결
제 2곡: 파도의 희롱(유희)
쉼 없이 밀려들고 밀려나가는…숨을 쉬고 있는 바다
제 3곡: 바람과 바다의 대화
바람은 바다를 스치고…이에 응대하듯
더욱 웅장하게 일렁이는 바다

이 작품에는 <오케스트라를 위한 세 개의 소묘>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소묘’라는 단어는 그가 인상주의 미술에 다분히 영향을 받았음을 직감하게 한다. 교향적 스케치 <바다>를 듣다보면, 정말이지 ‘귀로 듣는 한 폭의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징주의와 인상주의를 융합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을 창시한 드뷔시. 그의 음악은 산뜻하고 투명한 수채화 같다. 맑다. 듣는이로 하여금 머릿속으로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게 한다, 클로드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은.

 

김 지 희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졸업(교육학 학사) / 미국 맨하탄 음악 대학원 졸업(연주학 석사) / 한세대학교 음악 대학원 졸업(연주학 박사) / 국립 강원대학교 실기전담 외래교수(2002~2015) / 2001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 이후 이태리, 스페인, 중국, 미국, 캐나다, 불가리아, 캄보디아, 베트남을 중심으로 연주활동 중 / ‘대관령 국제 음악제’, 중국 ‘난닝 국제 관악 페스티발’, 이태리 ‘티볼리 국제 피아노 페스티발’, 스페인 ‘라스 팔마스 피아노 페스티발’ 《초청 피아니스트》 E-mail: pianistkim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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