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May 20,Friday

한주필 칼럼 – 태생적 행복

삶을 행복하게 사시는 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돈이 많은 사람? 집안이 좋은 사람? 사랑이 넘치는 사람?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는 수도 없이 많지만, 자신이 처한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 그것은 성격적인 부분에서 찾을 수 밖에 없을 듯합니다. 한마디로, 태어난 성격 자체가 행복을 누리기에 알맞은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이라는 마음의 상태가 염려나 불안에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마음을 의미한다면,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느긋한 성격의 사람이 그런 불안에 덜 빠진다는 점에서 행복을 누리기 쉬운 성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격이 민감하고 섬세하여 모든 일이 닥칠 때마다 불안해 지는 사람의 삶은 늘 걱정이 넘쳐납니다. 다행히 일이 잘 된다 해도 다시 잘못될 가능성 때문에 또 불행을 느낍니다. 그러나 선천적인 느긋한 성격으로 “안되면 말자 뭐” 하는 조금은 무디게 보이는 성향을 지닌 사람은 상대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 조건을 지닌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태생적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염려와 불안이 주는 괴로움을 모르고 사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일본의 어느 유명작가는 특정한 사유없이 그저 막연히 불안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살을 했습니다. 불안은 그렇게 사람을 깊은 불행의 늪으로 유도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행복한 삶이란 걱정과 염려, 불안의 사고를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내일의 일을 오늘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안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성격상으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행복한 삶이란, 태어난 성격으로 정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죠.  타고난 성격상 걱정을 모르는 사람은, 심약하고 예민한 성격으로 늘 신경을 곤두 세우며 사는 사람들보다 행복한 삶을 산다고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분들은 또 대부분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사고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행복할 수 밖에 없는 성격적 조건을 다 지닌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골프 내기를 해도 티가 납니다. 홀 내기를 하다가 한 두 홀 못쳐서 돈을 잃어도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저같이 심약한 인간은 인상을 쓰며 마음을 조리는데 그들은 웃으며 다음 홀에 버디 잡아서 찾아올 꺼라며 태평입니다. 그리고 그리 됩니다. 결국 심약한 인간만 더욱 불행해집니다. 

그러면 심약한 사람은 평생 불행해야 할 팔자인가요? 

그런 사고를 깰만한 방법을 찾아 봤습니다. 어쩌면 긍정적인 사고가 심약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의 후천적 방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는 습관을 키움으로 갖출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긍정적 사고를 갖게 되면 자연히 불안도 사라지겠지요. 늘,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억지로라도 심어줄 수만 있다면 지긋지긋한 불안과 염려에서 해방되어 평화로운 마음에 행복을 담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습관은 반복된 주문으로 형성될 수 있다고 하니 적당한 주문을 하나 맘에 새겨놓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왜 나는 하는 일마다 이렇게 잘 되지?” 하고 말입니다. 

태생적으로 심약한 심장을 지니고 태어나 늘 염려와 불안 속에 이를 악물고 살아가는 인간도 이 주문을 매일 생각날 때마다 진저리 치게 반복한다면, 언젠가 가슴을 뛰게 만드는 큰 일이 닥쳐도 편안한 마음으로 무심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는 날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아무튼, 산다는건 참 만만치 않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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