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6,Friday

한주필 칼럼 – 다시 돌아온 이유

왜 베트남에 사는가?

젊은 시절 외국에 나가는 것 자체가 꿈이었습니다. 한동안은 왜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이렇게 빈곤한 한국에서 태어났느냐고 하늘에 불평을 늘어놓곤 했지요. 그리고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에 나가면 나도 그들처럼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으리란 기대로 외국에 나가는 방법을 연구하곤 했지요. 결국 이공계 대학을 나오고도 기술자의 삶을 거부하고 오파상이라는 직업을 택해 마음껏 세상을 나돌아 다닐 기회를 잡았고, 그 덕분에 세계6대륙을 다 돌아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젊은 시절 그리 선망하던 선진국이 아니라 모국보다 결코 부유하지 못한 베트남에서 삶을 산다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젊은 시절의 꿈이 고작 잘사는 나라에 나가서 풍요롭게 지내자는 지극히 세속적인 욕망이라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런 꿈마저도 아련한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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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에서 그저 살고자 발버둥 치는 모습에 스스로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렇다고 이곳이 그리 너절한 곳이라는 표현은 아닙니다. 풍요란 재정적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비록 이 나라가 한국보다 잘 살지는 못해도 이곳에서 고향을 떠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가져온다면, 이 또한 풍요로운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아무튼 또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왔습니다. 6개월 동안 한국에 머무르면서 이제 베트남 생활을 정리하고 그곳에 안주해도 나무랄 사람이 없을 듯한데, 굳이 부득부득 다시 베트남으로 들어왔습니다.

왜 그런가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왜 이곳 베트남에서 사는가 하고 말입니다.

아마도 여기서 많은 시간을 보내신 교민들이라면 다 같이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주제가 아닐까 싶은데 여러분은 왜 베트남에서 생활하시나요?

각자 다 사연이 있겠지요. 저도 저만이 갖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것은 베트남에서 사는 게 맘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한국인이 정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이국생활에서 생기는 기본적 어려움을 감수하게 만들어 줍니다. 앞에서 세계 6대륙을 다 다녀봤다고 했지요. 제가 개인적으로 느낀 것은 한국인이 정당한 대접을 받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한국이 갑자기 강성해지는 바람에 어디서라도 대접받지만, 예전에는 결코 그러지 못했습니다. 특히 선진국이라는 곳에서의 차별은 심각할 정도였습니다. 하다못해 아프리카를 가도 아시안은 차별 받았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은 유일하게 우리에게 마음으로 미소를 던져 준 나라입니다.

이곳에서는 감성이 통합니다. 감성이 언어를 대신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베트남어를 한마디 못 해도 잘 사는 한국인이 많은 것을 봐도 베트남 사람들, 특히 남쪽 사람들과 한국인은 감성적 마찰이 별로 없다는 것이 큰 매력입니다. 아마 내로라하는 선진국으로 이민 간 교민들에게 그들이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인가 물으면 한결같이 차별에 대한 얘기가 상위권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곳처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나 텃세가 덜하다는 것은 엄청난 매리트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와는 다른 베트남인들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살면 이곳 생활에서 갈등이 요소는 사라집니다. 외국생활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심적인 부담이 사라지고 나면 한국 생활에서 행해야 하는 각종 의무와 책임이 가벼워진다는 것을 실감하며 마음을 평화롭게 만듭니다.

이는 물론 저같이 사회성이 떨어지는 인간의 경우에 한합니다.

가장 먼저 꼽는 이유가 베트남의 이국생활이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화롭다는 것이라면, 다음으로 꼽는 것은 한국의 국정이 맘에 안 들기 때문입니다. 맘에 안 든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무력감을 갖게 됩니다. 살면서 국민에게 무력감을 주는 나라가 과연 올바른 나라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조성한 편 가르기에 모든 국민들이 동조하며 진영논리로만 사리를 판단하는 상황이 견디기 힘듭니다.

그런 모습을 참고 지내기에는 남은 세월이 별로 없다는 것도 고국을 떠나 이곳에 오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에서 살고 싶은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이유인데, 여가생활을 적절히 즐길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물론 상대적인 이유입니다. 한국에서도 여가생활을 즐기지 못할 이유가 없지만, 한국은 너무 부담이 가고 또 엄격합니다. 골프도 그렇고 헬스 등 다른 여가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 제대로 대접받고 살기 위하여는 진짜 만만치 않은 돈을 뿌려야 합니다. 베트남에서 구멍가게 같은 사업을 꾸리며 사는 인간에게는 한국은 자괴감을 심어 줍니다. 하긴 너무 오랫동안 베트남의 환경이 익숙해진 탓에 한국이 낯설어진 것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여러 이유로 베트남에 들어오니

한국에서보다는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쓰고 나니 좀 부끄럽네요. 적어도 사내가 삶의 정착지에 대한 이유를 대자면 시대적 소명이나 하다못해 삶의 목표 같은 그럴듯한 사유를 밝힐 만도 한데 고작 들이대는 이유가 이렇게 감정적이고 세속적인 이유만 있으니 민망스러울 정도입니다.

물론 젊은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 믿습니다. 젊은이들은 자신이 품은 꿈을 실현하는 장소로 이곳을 찾아야 합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의 이유를 따라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타산지석이라는 것이 있죠. 이 부족한 인간의 미흡한 생을 보며 그대들은 보다 가치있고 의미 있는 베트남 생활을 즐기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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