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August 19,Friday

한주필 칼럼-제헌절

7월 17일이 제헌절이라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제헌절, 대한민국의 헌법이 제정된 날입니다. 

1948년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제헌국회에서 7월 12일 헌법을 제정하고, 7월 17일 정식으로 공포하여 그날을 제헌절로 삼았습니다. 7월 17일을 제헌절로 정한 이유는 조선의 개국과 연이 닿는 듯합니다. 이성계가 고려의 마지막 왕 공민왕으로부터 왕위를 이양 받은 날이 바로 음력 7월 17일입니다. 정설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일단 그날에 맞춰 제정일을 정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1948년 이후 공휴일로 지정되어 모든 국민이 하루를 쉬면서 헌법 제정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는 날이었는데. 2007년 이후 식목일과 함께 공휴일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때 아마도 주 5일 근무가 시작되면서 공휴일을 줄이려는 생각으로 그렇게 정한 듯합니다. 

그런데 기념일을 쉬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날에 대한 느낌이 달라지는 듯합니다.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제외되고 난 후에는 사실 제헌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나 국민들의 관심도 적어진 것이 팩트입니다. 그날이 무슨 날인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고, 아마도 공휴일이 사라진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제헌절이라는 기념일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상당하리라 봅니다. 

그런데 우리 젊은이들이 제헌절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의 역사를 살펴보면 바로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한반도에서 물러난 후 승리한 연합군은 그동안 일본의 식민지로 있었던 한국을 승전 기념품 정도로 생각하여 누가 차지할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와 미소공동위원회를 거쳐 나온 결론은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5년간 신탁 통치를 거쳐 완전 독립을 시키자는 것이었죠. 이는 우리 국민을 스스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 저능한 수준으로 보고 나라를 둘로 쪼개 5년간 잘 교육시켜 나라 모양새를 갖추고 난 후 다시 논의하자는 가상한 결정으로 보이지만, 사실 5년간 자기들 체제를 공고히 하여 영원히 남북으로 나눠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나눠 갖자는 의도입니다. 우리 국민은 남북을 막론하고 모두 그 결정에 격렬하게 반대를 합니다. 하지만 잠시 후, 소련에서는 북쪽 공산당에 압력을 가해 신탁찬성을 유도하여 남북 갈등이 본격화됩니다. 그러자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전역에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결정을 내리고 북쪽은 미친듯이 반대합니다. 결국 가능한 지역에서만 선거하자는 차선책을 만들어 남측만 유엔의 선거 감사단의 관리하에 5월10일 선거를 치뤄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이승만 의장을 중심으로 제헌 헌법을 제정에 착수합니다.  

이 사건은 유엔이 생긴 후 최초로 한 국가의 수립에 관여한 첫 케이스입니다. 그래서 한국과 유엔은 깊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10월 14일 유엔의 날은 한동안 공휴일로 지정되어 기념했을 정도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국회가 결성되고 헌법위원들이 결성되어 만든 초안에는 정부형태의 의원내각제와 양원제 국회를 운영하는 국가조직을 제안하였으나 이승만 의장의 강력한 반대로 단원제에 대통령제가 대한민국 정부 형태로 결정됩니다. 

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입니다. 즉 국호는 대한민국이고, 체제는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토는 한반도를 포함한 도서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 후 대한민국 헌법은 무려 9차례의 개정을 거치면 수난을 당합니다.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을 허락한다는 4사 5입 개헌 이후, 4.19를 거치며 의원내각제로 개정되었으나, 5.16 혁명에 의해 3선개헌과 유신헌법 등을 거치며 정치에 의해 헌법이 욕을 봅니다. 결국 79년 10.26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고, 신군부가 등장하고, 81년 국민투표를 통해 8차 개헌으로 제 5공화국이 탄생합니다. 대통령 7년 단임제와 간접선거를 골자로 하였으나, 전두환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바통을 이어받은 노태우 대통령은 6월 항쟁에 손들고 직접 선거, 5년 단임제의 현행 헌법을 만듭니다. 즉 9차례에 걸친 개정을 통해 드디어 현재의 헌법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한나라의 헌법의 자취는 이렇게 그 나라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우리나라도 굴곡이 많은 헌법의 역사를 거쳤지만, 신생국이 겪는 성장통이라는 시각으로 봐야 할 듯합니다. 그런 진통을 겪은 신생국으로 출범한 지 고작 70여 년 만에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하나로 우뚝 섰습니다. 

그것도 그냥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정부 출범 이후 2년 만에 전 국민의 15%가 죽은 잔혹한 전쟁을 거쳐, 온 국토가 완전히 파괴된 나라가 이렇게 성장한 케이스는 인류의 유래를 다 뒤져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전쟁의 폐해에서 복구되려면 백년이 걸린다고 모두가 혀를 차던 바로 그 나라가 단지 70년 만에 전쟁 복구 정도가 아니라 세계 최강의 하나로 등장했다니 말문이 막힐 따름입니다. 

모두 대한민국 국민들의 뛰어난 자질이 만들어낸 성과입니다. 이제 우리가 만들어낸 성장에 만족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차원이 다른 발걸음을 디뎌야 할 단계입니다. 멀지 않은 시대에 그런 대한민국의 모습을 확인할 것을 기대하며, 주말 하루 제헌절의 기록을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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