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December 3,Saturday

한주필 칼럼- 무엇을 남길 수 있나?

가끔 한가한 시간에 사념이 많아지면 현재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어질 때가 생기곤 하지. 젊은 시절에는 앞으로 새로 생길 것에 대한 기대로, 그 당시 쥐고 있는 것이 많건 작건, 크건 작건 간에 그것이 가진 것이 전부라는 생각이 안 들지만, 이렇게 고희의 시간을 넘기고 보면 이제는 더 이상 생길 것이 없겠다는 생각에 그나마 현재 내가 쥐고 있는 것에 대한 애착이 생기는 모양이야.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자칫하다 가진 것마저 다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는구나 싶어. 이제와 잃고 나면 다시 만들 여력도, 그럴 시간도 남지 않기 때문이지. 어쩌면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젊은 시절에는 돈을 모으기 힘든 모양이야.

아무튼, 문제는 현재 쥐고 있는 게 없다는 거야. 쥐고 있는 것이 돈에 대한 문제라면 너무 간단명료하여 초등학교 산수 문제로도 안 나올 정도야. 그런데도 다 짜낸 치약 튜브를 마지막까지 쥐어짜듯이 혹시 빠진 것은 없나 머리 속을 샅샅이 뒤져보지만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는 사실이 나 자신을 슬프게 만들어.

왜 이런 생각을 했나 모르겠어. 유튜브 책 낭독 채널에서 어떤 책의 일부를 듣고 나서인가 봐.

요즘 게으러진 탓에 독서량이 현저히 줄었어. 글을 거의 매일쓰며 사는 인생에게 독서량이 줄었다는 것은 심각한 불안증을 불러와. 마치 텅 빈 창고를 앞에 두고 생산을 시작해야 하는 제조업자 같은 입장이 되는 거야. 그래서 그나마 눈 대신 귀로 듣는 것이라도 하기 위해 유튜브 독서 채널을 자주 찾곤 해.

이왕 말 나온 김에 한마디 더 짚고 가자면, 그런 독서 채널이 좋은 점은 몇 가지가 있어. 독서를 대신한다는 점도 좋지만 그 외에 책을 미리 엄선하는 작업을 거친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은 점 같아. 한국에서 온라인 서점을 찾아 책을 구입하다 보면 30% 정도의 책은 프롤로그 조차 읽지 않은 채 버려두는 것이 생겨. 잘못 선정을 한 거야. 그런데 유튜브를 통해 소개받은 책은 그런 실수가 없지. 소개되기 전에 채널 관리자는 이미 그 책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난 후 올리는 것이니 일차 전문가에 의한 검열을 거쳤다는 점에서 좋은 책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지.

아무튼 그날, 어느 유튜브 독서 채널에서 소개한 책은 사망하신 분의 자리를 청소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쓴 책인데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어.

사람이 죽고 나면 그가 살던 자리를 치우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야. 의미를 살려야 할 유품인지 아닌지를 판별하여 처리를 결정해야 하고, 남길만한 유품이라면 어떤 형태로 남길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 해. 때로는 벽지도 바꿔야 하고, 필요하다면 인테리어도 변경하는 게 필요할지도 몰라. 가신 분은 자신의 자리가 말끔하게 치워지는 게 서글플 수도 있지만, 남은 사람은 죽음의 흔적과 오래 마주하는 것이 반가운 일은 아니긴 하니 말이야.

유품을 정리하다 보면 그 사람 살아 생전의 흔적을 만날 수 있어. 나도 지난 여름 돌아가신 모친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자꾸 눈물을 훔치곤 했던 기억이 떠올라. 정말 어머니라는 이름은 죽음을 초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듯 해. 죽음 앞에서 달라지지 않을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일꺼야.  어머니라는 이름은 그 중에 하나인 듯해.

아무튼 살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남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자신이 초라해져. 대부분 역사에 기록될만한 역할을 한 영웅이 아닌 이상, 자신 가족 정도만이 그 이름을 기억하고, 가족이 모이는 날에 나누는 대화의 소재가 될 수는 있겠지만, 사실 그것도 죽은 이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이긴 해. 죽은 이는 자신이 이름이 기억되고 아니고에 관심이 없을 터이니 말야.

그렇다면 결국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는 자문은, 죽기 전에 세상에 대한 배려나 봉사를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하고 갈 것인가 하는 말과 같은 의미 같아. 그 봉사 대상자는 개인에 따라 엄청 다르겠지. 가족 이외의 봉사 대상자는 재벌 기업 회장의 경우, 수많은 직원과 그 가족 그리고 전 세계 소비자가 될 테지만, 우리 같은 소기업 사업가는 그 대상 자체가 협소하고 제한되어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야.  

하지만 봉사는 물질로 할 수도 있지만, 진정한 봉사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물질을 남겨 후손을 풍요롭게 하는 것 외에도 다른 방안이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지. 그래서 남길 재산이 없다고 우울해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야. 하긴 아무리 많은 물질을 남긴다고 해도 부자가 3대 넘기기 힘들다는 말처럼 돈을 제대로 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물질이 자손에게 해가 될 수도 있지.   

이런 말이 있어,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지. “어른 말을 잘 듣는 아이는 없다. 하지만 어른이 하는 대로 따라 하지 않는 아이는 없다” 라는 말이 있어. 미국의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이 한 말이야. 내가 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 하는 자식의 행동이 그의 삶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일단 부모로서 자식에게 남길 것을 이미 준비한 것이란 생각이 들어. 억지 자기 위로인 듯 하지만 말이야.  

뜬금없는 소리 하나 할까? 자신의 비문에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생각해 본 적이 있어?

버나드 쇼와 같이 ‘우물쭈물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자조 섞인 오만의 문구를 남길 만큼 이룬 것이 없지만, 그래도 한 줄의 글로 내 생을 표현하는 비문 하나는 만들고 싶어.

오랜 고민을 거쳐 제대로 된 비문을 미리 하나 만들어 내 방에 붙여놓고 매일 바라본다면, 하루하루의 삶이 좀 더 충실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 그러면 따로 남길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듯하지 않아?  

이 또한 초라한 빈자의 자기방어 같기도 한데, 아무려면 어떤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뿐 인걸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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