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8,Sunday

한주필 칼럼- 내가 먼저 웃으면 세상도 그대에게 미소를 보낸다.

최근 한국에서 처가 가족들이 베트남을 찾아왔습니다. 집사람은 오랜만에 가족과의 상봉으로 입이 귓가에 걸려 다닙니다. 미소는 전염병처럼 주변 사람에게 행복을 전파합니다. 그들이 베트남에 머무는 동안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베트남을 처음 방문한 가족들이 한국과 다른 베트남에 관한 얘기를 합니다. 아파트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복장으로도 베트남 사람과 한국 사람을 구분할 수 있지만 또 다른 구분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서로 눈이 마주하게 되면 미소를 보내는 사람은 베트남인이고 무표정하게 반응 없이 지나는 사람은 한국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죠. 저도 그런 것을 많이 느낍니다. 한국인은 어려서부터 실없이 웃으면 안 된다는 엄한 교육을 받은 터인지 여간 해 서는 낯 모르는 사람에게 미소는커녕 눈도 마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인들은 다릅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순간부터 입으로 인사를 나누진 않아도 눈으로 미소를 보내며 묵례합니다. 더 적극적인 친구는 가벼운 인사말을 걸어오기도 합니다. 신선한 문화충격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날은 빛나는 하루가 시작됩니다. 아침에 빠듯한 출근 시간에 쫓기던 마음이 누그러지고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펼쳐질 듯한 기대가 피어납니다.  

매일 아침 더 많은 미소를 받기 위해 아침마다 저 스스로 입가를 올리고 집을 나섭니다. 제가 먼저 미소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 미소를 받은 대부분 역시 따뜻한 미소로 반응합니다. 한국에서 그랬다가는 “왜, 당신 나 알어?” 하는 이상한 눈총을 받거나, 아침부터 성희롱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지만, 베트남에서는 설사 미소가 돌아오진 않아도 그런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염려 말고 따뜻한 미소로 우리 이웃에 대한 선의를 보여주면, 이웃의 반가운 미소가 그대의 하루에 행운을 담아줄 것입니다. 행복을 부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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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다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조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일을 가장 후회했을까요? 각자 개인적 사연으로 다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노인들이 공통적으로 후회하는 일은 “세상을 너무 심각하게 살았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공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잘 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늘 모든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며, 자기 행동이 어긋남이 없는지 챙기며 조심스레 사느라 즐기지 못했다는 후회입니다.  

저는 이 말에 눈물 나도록 공감합니다. 그들처럼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닌 주제에 늘 뭔가에 쫓기듯이 부담을 가득 안고 굳은 얼굴을 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돌아보게 됩니다. 스스로 즐기지도 못했지만, 주변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미소도 뿌리지 못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반성하게 됩니다.  

삶은 소풍과 같다고 하지요.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라는 시에서 그것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소풍을 제대로 즐기기 위하여 진지하게 준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심각한 얼굴로는 소풍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멋진 양복을 입은 신사가 굳은 얼굴로 전장에 나가는 전사 같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면, 그의 하루가 그의 멋진 의상처럼 빛나지는 않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심각한 삶은 자신에게 늘 경계하고 조심하라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 불안, 공포를 부르며 마음의 평화를 앗아갑니다. 조금만 기대치에 어긋나면 분노와 함께 깊은 절망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설사 무난히 성사되는 일이 생겨도 그것을 즐기지 못하고 앞으로 더욱 잘해야 한다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인생에는 미소가 자리 할 곳이 없습니다.

며칠 전 한국과 브라질의 월드컵 16강 게임이 있었습니다. 골을 넣을 때마다 브라질 선수들은 춤을 추며 마음껏 즐깁니다. 반면에 한국은 점점 비장해집니다. 결국 노력이 가상하여 후반에 한 골을 넣었지만, 공을 넣었다는 기쁨보다는 앞으로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자신을 더욱 다그치는 한국 선수들이 애처롭고 안쓰럽습니다.  

누가 축구를 즐기고 있나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한국과 브라질의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릴케는 ‘인생이란 죽음이 잠시 빌려준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삶을 살아도 다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한정된 시간 속에 있으면서 영원히 살 것처럼 매달리지 말라는 조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결국 소풍 나온 아이처럼 즐겁게 지내다 가는 것이 최고의 삶입니다.   

어찌하면 즐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나요?

늘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것이 즐거운 삶의 표현이 될 것입니다. 기분이 우울해 웃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웃으면 묘하게도 기분도 나아집니다.  

그래서, 미소는 행복을 부르는 열쇠입니다.    

아침에 만나는 우리 이웃에게 던지는 작은 미소는 세상을 사랑한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행복이란 이름으로 그대의 품에 돌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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