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8,Sunday

한주필 칼럼 – 지켜야 할 인맥

 

 

 

연말이 가까워져 오니 마음이 부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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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넘기기 전에 뭔가 정리할 것이 있을 텐데 하며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그런 마음은 모두 같은지 각종 모임이 송년회를 명목으로 열려 회원 간의 정을 나누고 새로운 해에 대한 다짐의 자세를 나눠봅니다. 특히 지난 3년 동안 코로나로 발이 묶이고 그로 인해 신변에 변화가 생긴 사람들이 많았을 터이니 해가 가기 전에 그들의 신상을 알아보는 기회를 갖는다는 면에서도 연말 모임은 좋은 자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코로나로 오랜 시간 서로 만나지 못한 탓인지 모임 요청이 유난히 많은 듯합니다.  

실제로 베트남 교민사회에는 수많은 단체와 모임이 있습니다. 씬짜오베트남 엘로우페이지를 보면 동문회와 동우회 등 각종 친선 모임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호찌민에 등록된 동문회만 200여 개, 스포츠 레저 동우회도 50여 개에 향우회, 종친회, 연합회 등도 많습니다. 등록된 모임만 이렇게 많은데 아마 등록하지 않은 모임은 더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각종 교민 단체들이 있지요. 한인회를 필두로 교민사회 양대 산맥을 이루는 코참, 그리고 월드 옥타 외에 각 지역 경제단체 등 그야말로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단체와 모임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인들은 모임을 정말 쉽게 만듭니다. 일종의 문화인 듯합니다. 하긴 한국인 3명이 모이면 모임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요. 왜 그럴까요?

한국인의 모임 문화는 농경사회가 갖는 특징의 하나입니다. 동이족으로 표현된 한민족의 풍습에 대하여 중국 진나라의 진수가 쓴 삼국지의 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동이 사람들은 농사 절기에 맞추어 하늘에 제사하고 밤낮으로 음주가무를 즐겼다” 는 기록이 있습니다. 즉 우리는 예전부터 같이 놀기를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농한기에 같이 시간을 보내며 친목을 도모하고, 그런 친목이 농번기에 서로 일손을 덜어주는 품앗이, 두레 등의 협력작업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협력 작업이 필요한 농경사회에서는 당연히 지연, 혈연이 가장 중요한 인맥이 됩니다. 그렇게 우리 조상들은 이웃과 농사를 함께 짓고 함께 즐기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유대감을 돈독히 해왔습니다. 그런 유대감은 우리 공동체를 지키는 토대가 되어 외적의 침공을 막는 역할도 하였고, 일상에서는 서로 기쁜 일 슬픈 일을 공유하며 ‘情’이라는 우리 민족의 정서를 만들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만나 서로 정을 나누는 것이 한국인의 모임인 셈입니다.  

어느 논문에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82.8%가 친목모임ㆍ취미모임ㆍ사회봉사 모임 및 종교모임 등에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중 가장 많이 참여하고 있는 모임 활동은 친목 모임으로 전체의 75.6%의 사람들이 하나 이상의 친목 모임에 가입하고 있었는데, 이중 특히 동창회에의 참여가 높답니다. 그 다음으로 가입수가 많은 것은 종교 모임이고, 다음이 취미 모임으로 사회봉사 모임에의 가입이 제일 낮아 6.7%만이 가입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회봉사 모임이나 공적인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이 적은 것은 우리가 돌아봐야 할 사안이기도 합니다.  

모임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만족하는 편인데, 단 사회봉사 모임에는 참여도도 만족도도 예외적으로 낮게 나타납니다. 결국 한국인의 모임은 공적 목적을 갖고 모이는 목적 지향형의 모임보다, 단지 우리끼리 잘 지내자는 연대 지향형의 모임이 주를 이룹니다. 

아마도 한국 특유의 학연, 지연, 혈연의 관계가 일차적으로 신분에 대한 보증이 되고, 행동에 대한 규제도 가능하니 별다른 의심 없이 ‘우리가 남이가’ 하는 연대형 모임이 만들어집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인은 “인맥은 힘이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고,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개인의 문제를 인맥을 이용하여 풀어나갑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겼을 때 인맥이 없다면 곤란해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므로 인맥을 쌓는 모임은 일종의 사회적 보험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한국인이 갖는 모임에 거는 기대와 특성이 친목이라는 모임의 목적을 왜곡시키기도 합니다. 나중에 필요한 인맥이라는 생각으로 모임에 이름을 걸어 놓은 사람도 없지 않으니까요. 그런 자세로는 서로 배려하고 의지하며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일상의 이웃으로의 관계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연말 모임에 참석하라는 통지를 받고 가끔 생각해봅니다. 

과연 이 모임은 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돌아봅니다. 지난 일 년 동안 그들과 얼마나 많이 만났는지, 만나지는 않아도 안부라도 전하며 살았는지, 같은 모임이라는 이름 외에 일상의 연결점은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 봅니다.  

인맥을 갖는 것은 분명히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사실 다양한 인맥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그리 큰 지장을 주지는 않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저 기본적인 인간관계로 자신을 알아주는 한 두어 명의 친구와 가족이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해서 이런 매듭이 필요한 시간에는 이런 저런 모임에 내키지 않은 발길을 주는 것보다 자신과 늘 함께 지내는 직원이나 가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번 연말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 희망합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나지는 못해도 늘 관심을 두고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침마다 매일 마주하는 우리 직원과 이웃들, 그리고 내 생활을 함께 공유한 가족이야말로 내가 키우고 지켜야 할 진정한 인맥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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