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6,Friday

[한주필이 만난사람]- 윤영석 한·베가족협회 신임 회장

 

 

전 세계에 유일한 단체가 베트남 교민사회에 존재한다. 물론 이름이야 당연히 유일할 수 있지만 그 성격조차 유일한 단체가 하나 있다. 이름하여 <한.베가족협회>라는 단체다.

한국인과 베트남인이 만나 가족을 이룬, 국경을초월한 사랑을 결혼으로 승화시킨 가족들의 모임이다. 이 단체가 존재한지 이미 8년이 지났다.
2014년 심상원 초대 회장이 주도하여 설립된 단체다. 당시 섭외된 회원은 100여 가족이었고 지금은 등록 회원이 200여 가족이라 한다.
한.베가족협회라는 단체는 그 생소한 이름 답게 국적이 다른 부부가 이룬 가정이라는 특수성과 한국과 베트남의 진정한 결연을 보여주는 모임이라는 입장에서 교민들과 베트남 정부의 많은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한.베 수교 30주년을 맞이 하여 특별히 이들의 존재가 더욱 부각되고있는 시점에, 지난 8년간을 이끌어 오던 심상원초대 회장이 퇴임하고 그 후임으로 수석 부회장으로 활동하던 윤영석 씨가 회장으로 취임하는 지도부 교체가 있었다.
씬짜오베트남에서 새로운 윤영석 신임 회장에게 만남을 청했다. 일반 교민들보다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듯한 이들은 과연 어떤 일을 하며지내는지 알고자 한다.
화창한 월요일 오후, 씬짜오베트남 사무실에 윤영석 신임회장이 방문했다.
갈색 콤비에 체크무늬 셔츠와 감색 넥타이의 멋진 깔맞춤으로 단장한 윤회장, 베트남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패션 감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초라한 사무실이 갑자기 환해지는 기분이다.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듯하다. 묻지도 않고 내놓은 커피가 그대로 식어가고 있다. 커피를 무심코 내기 전에 물어야 했었다. 실례를 범한 셈이다. 코로나 전, 지난번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듯하다. 늘 하는 일이 이 모양이다. 일일신은 아니라도 우년신(해마다 새로워지다)은 하도록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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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의 바쁜 일정을 화제로 이야기를 풀어가 본다.
그리고 정례화 된 첫번째 질문.

한·베가족협회는 언제 어떻게 발족하게 되었는가?

2014년 심상원 회장이 제집을 찾아왔습니다. 당시 저는 개인적으로 한·베가족 몇 분을 모아 모임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심 회장이 호찌민 전체 한·베가족 협의회를 만들려고 한다는 제안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야말로 제가 원하던 그런 모임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제가 주도하던 한·베가족 모임도 함께 합류하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베 가족 협의회 창설 멤버로 이미 8년여의 활동을 한 셈이군요.
그동안 어떤 활동을 했었나요?

사실 우리 단체는 좀 특수합니다. 한·베 가족이라는 명칭이 어떤 이들에게는 그리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름일 수도 있다 보니 대외적 활동이 주로 회장님 개인의 역할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원들 간의 친목도모를 위한 연례적 모임에 가능한 많은 회원들이 나와서 서로 인사를 나누며 가깝게 지내도록 유도하는 것에 주력해왔는데, 교민사회에 널리 알려진 이름에 비해 실질적인 활동이 그리 활발했다고 자부하긴 힘든 실정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최근에는 젊은 한·베 가족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한·베 가족이라는 정체가 그리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고, 사업하는 사람의 경우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새 시대가 열리면서 대외적인 활동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해주십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전에 어느 지인으로부터 한·베 가족이라는 모임이 만들어져 그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인가 하는 의문 섞인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왜 한·베 가족이란 분류가 따로 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다른 외국의 한인사회의 경우, 현지인과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경우가 수 없이 많지만, 그들만의 모임이 만들어져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죠. 배우자가 누구이건 간에 그저 하나의 가족일 뿐인데, 스스로 따로 분류되어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또 다른 역차별을 부르는 일이 아닌가 싶은 것이죠.

가만히 듣고 보니 그 말에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하여 윤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물론 우리 모임도 단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모인 친목 모임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다 보니 마치 교민단체와 같이 되어 버렸지만, 이런 위상도 저희가 의도했다기보다 우리 교민사회의 상황이 만든 측면이 있습니다.
한동안 한인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고 교민을 대표하는 한인회의 부재가 지속되면서 저희 같은 모임이 소속될 대표 조직이 없었습니다. 만약 한인회가 제대로 전체 교민을 대리하고 통합된 단체로 활동을 했다면 우리 모임은 한인회에 속해서 한 분과로 자리하여 한·베 가정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일들을 상의하고 서로 협의하는 정도로 조용히 활동을 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한인회가 그런 통합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저희의 권익이랄까, 문제랄까 하는 일에 대하여 그 누구의 지원도 없을뿐더러 조언을 받아 상의할 자리조차 궁색한 실정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우리 같은, 조금은 특별한 신분에서 발생될 수 있는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뜻으로 우리 협의회의 독자적 활동을 하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요, 앞으로 갈수록 한·베 가정은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한·베 가정을 이룬 지 벌써 15년이 되셨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지내다 한 가정을 이루셨으니 차이점도 적지 않으실 텐데, 생경한 문화에 당황하는 점도 있으실 것 같고, 그런 부분에서 기쁜 일, 힘든 일도 있으실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그런 차이를 느끼시는지요?

우선 기쁜 일을 먼저 말씀을 드리자면, 가족에 대한 관계가 한국보다 적극적입니다.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양국 모두 공동체 지향형입니다. 공동체에 이익이 되는가 하는 것이 가치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베트남은 큰 단위 공동체보다 가족과 같은 작은 단위공동체를 기준으로 하는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에 대한 애착이 남다릅니다. 가족간에 서로 사랑을 표현하는 부분도 한국인보다 적극적이고, 아이들과 스킨쉽도 많고,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한국보다 훨씬 가정적이라는 현상에 놀랐습니다. 가족을 중심으로 모든 생활이 이루어집니다. 일이 먼저가 아니라 가정이 먼저로, 가치의 우선순위가 다르다는 점에 저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주말마다, 시간을 만들어 가족들과 어울립니다. 가까운 마실도 가고, 이웃도 만나며 모든 것을 가족과 함께합니다.
솔직히 한국에서는 기대하지 못했던 행복들이 주변을 감싸 돌고 있는 느낌입니다. 베트남에서 가정을 이룬 후 진정한 베트남 드림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기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죠. 기쁜 일이 있는 만큼 불편 사항도 적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언어문제입니다. 언어의 차이로 인해 집사람과 대화의 깊이가 충분치 않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일상생활의 대화는 문제가 없지만, 감정상의 문제로 대화를 나눌 때는 충분한 표현이 되지 않아 불편함을 느끼긴 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모든 한·베 가족이 함께 느끼는 사안이 있는데, 자녀들과의 대화입니다. 주로 엄마와는 베트남어로 대화를 하고 아빠와는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 가정이 많다 보니 부모가 각자 아이에 대하여 갖는 느낌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역시 정체성에 대한 갈등이 생기기 쉽습니다.
한국의 국적을 갖고 있지만, 베트남인으로의 태생적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 같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이 더 잘 산다는 것을 알 정도의 나이가 되면 스스로 베트남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거부반응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런 2세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리라 생각하는데, 이런 문제에 대하여 저희 회원들의 경험담을 공유하며 각자의 환경에 맞는 어드바이스를 내줄 수 있도록 고충 상담소를 만들어 데이터를 축적할 생각입니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한·베 가족협의회의 해야 할 일들이 나온 듯한데, 앞으로 어떤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베가정의 가장 중요한 사안은 2세들의 교육과 정체성 문제입니다.
가정을 직접 이룬 부모들이야 스스로의 결정에 대하여 각자 책임져야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피해가 가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이들은 친구들과 다른 자신의 처지를 인지하며 살아야 하는 환경이기에 부모들이 세심하게 배려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가장 먼저 언어 문제인데, 가능하면 엄마 아빠가 서로 한국어와 베트남어를 다 사용할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함이 옳은 일이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들만큼은 양국 언어를 다 습득할 수 있도록 함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어려서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만큼 어려서의 교육이 진짜 중요합니다.
저 같은 경우 자녀들의 언어습득에는 성공적이지 못합니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내다 보니 영어가 익숙해지고, 또 친구와 엄마를 통해 베트남어를 모국어로 배워서 한국어를 잘못합니다. 저도 아이들과 영어와 베트남어로 대화하는데 제가 좀 불편하지만 알아들을 때까지 대화를 하긴 하는데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불편 사항을 해결하고자 저희 모임에서는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한글학교를 만들기도 했었는데 이게 여러 문제가 대두됩니다. 우선 지역적으로 한·베 가정이 호찌민시에서도 널리 분포되어 있다 보니 학생이 모이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현재는 기존의 한글학교나 교회 등 종교단체와 협력을 고민하고 있고, 또 온라인 학교를 만들어 주로 온라인으로 공부하고 부모들 모임이 있을 때 아이들을 함께 참여하여 동질성을 심어주는 방안도 궁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 자랑스러운 우리 한국기업체를 방문하여 견학시키며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꿈을 심어줄 생각입니다. 이부분에 대하여 많은 기업체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한·베 가정을 위한 장학금도 마련하여 우리 자녀들의 교육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부모님의 국적이 각기 다르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불편 사항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이런 환경을 긍정적인 마인드로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양국의 문화와 언어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환경이 되므로 앞으로 양국에서 다 필요한 인재로 성장할 기회를 가질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 인재들이 양국의 우호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역할을 할 테니까요. 자녀 교육 외에 또 다른 계획은 어떤 것이 있나요?

현실적으로 한·베가정이라는 특수성은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한국의 남성과 베트남이 여성의 결합이 서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서로 필요에 의해 맺어진 경우도 또한 많습니다. 그런 경우 필요가 사라지고 나면 헤어지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마련이지요. 그러다 보니 내국인 간의 결혼이나 이혼과는 달리 그사이에 탄생한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지내다가 남성이 한국으로 귀국한 후 연락이 끊어진 상황도 있을 수 있고, 한국으로 시집갔다고 아이만 안고 베트남으로 돌아온 여성들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다 아이들의 국적이 오히려 문제를 야기합니다. 정식 결혼은 한 경우 대부분 아아들에게 한국 국적을 주는데, 베트남에 돌아오면 그 국적으로 인해 베트남 공교육을 정식으로 받기 힘들게 됩니다. 물론 경제적 어려움이 없다면 국제학교에 보내면 되지만 그렇게 여유로운 경우가 별로 없으니 이게 참 큰일입니다.
이런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는 여러 가지 법적인 문제가 따르는데 그걸 조언해줄 기관이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고충 상담소를 만들 계획입니다. 저희 회원 중에 법률인 몇 분을 모셔서 한·베 가족이 겪는 문제를 상담하며 그런 사례로 데이터를 만들고 법률적 조언을 해줄 생각입니다. 아마도 이경우에는 한국에서도 이런 행정적 처리를 해줄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우리부터 법률 상담소를 만들어 운영하다 보면 뭔가 대책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해야 할 일이 많으십니다.
아들들 문제가 항상 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긴 합니다. 우리도 흔히 속 썩이는 자식때문에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푸념을 하긴 하지만, 그것도 자식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행복한 푸념입니다. 그래도 한·베가정의 자녀들을 세심하게 보살피며 교육 시킨다면 두 사람 몫을 할 수 있는 인재가 탄생한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부디 앞으로 좋은 인재들이 나와서 양국이 관계를 돈독히 하고 또 우리 사회를 좀 더 밝은 사회에 만들어 주시길 희망합니다.
씬짜오베트남 독자에게 한 말씀 남겨주시길 부탁합니다.

요즘은 우리 아이들 정체성 문제보다 저 자신도 정체성의 문제를 앓고 있습니다. 그저 친목 모임으로 시작된 이 모임이 8년이 지나다 보니 어느새 교민단체로 인정을 받고 있는 터라 처음 이 모임을 시작했을 때와는 다른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는 정체성 문제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다니는데 만나는 어른마다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말씀하시며, 저희 역할에 기대를 거시는 것을 봅니다. 그만큼 한·베 가족이 많아졌다는 의미이고, 많아진 만큼 문제도 적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어떻게, 어떤 일들을 해야 할지 아직 정립되지 않았는데, 주변 어른들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정리해나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아무튼, 저의 작은 힘이 우리 회원들과 같은 처지의 한·베 가정들이 보다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베트남 교민사회의 전통 언론인 씬짜오베트남에서 인터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년에는 씬짜오베트남 독자 여러분의 가정에 하늘이 주신 행복이 만개하고, 모두 건강한 베트남 생활을 즐기시길 기원합니다.

 

 

 

 

 

윤영석 회장은 1961년생으로 진주 출신이다.
한때 명성을 날리던 경기공전에서 기계과를 전공했다.
또한 어려서부터 타악기를 다룬 음악인이기도 하다. 경기공전의 전설적 보컬 그룹인 해오라기 2기에서 드러머로 활동했었고, 군 입대 전까지 홍삼트리오 맴버로 활약한 전문 음악인이다.
앞으로 새로운 신분으로의 그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호치민 한베가족협회
유정동 사무국장 T. 093 887 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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