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ne 22,Tuesday

거리의 히어로 제 25편 윙반쪼이 거리

윙반쪼이 거리(Nguyễn Văn Trỗi)는 푸년군과 떤빈군 8, 10, 11, 12, 15, 17동에 걸쳐 있으며 꽁리 다리부터 호앙반투 거리까지의 총길이는 2940m, 폭40m에 이르는 주간선도로이다. 즉, 꽁리 다리(빈응엠절)부터 떵선녁공항과 쯔엉선 도로까지 이어져있다. 프랑스 식민통치 이전에는 26번길로 불렸으나, 이후 ‘Impératrice’길, ‘Mac Mahon’길, ‘Cách Mạng 1-11’길 등 다양한 이름을 거쳤고 1985년 4월 4일에 이르러서야 윙반쪼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Nguyen Van Troi 윙 반 쪼이   1940~1964년
미국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를 겨냥한 폭탄 의거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후, 남베트남 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사형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망 직전 남긴 발언이 매우 유명해졌고, 이후 베트남 사회공화국은 남베트남해방군이자 베트남 전쟁영웅 중 하나로 그를 추대했다. 윙 반 쪼이는 꽝남(Quang Nam) 성탄꾸잇 마을에서 가난한 한 가정의 셋째로 태어났다. 제네바협정이후 그의 가족은 사이공으로 이주했으며  그 곳에서 학교를 졸업한 그는 쩌콴전기회사에서 전기 기술자로 일한다. 이후 그는 서남사이공결사대에 참가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때는 1964년 5월 2일, 꽁리다리에 미국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나 암살을 위한 폭탄을 설치하라는 임무를 받는다. 사실 이 임무는 처음부터 그가 맡은 임무가 아니고 동료에게 주어진 것이었으나 아내와 자녀가 있는 사정을 고려해 윙 반 쪼이가 임무를 대신 맡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계획이 발각되어 5월 9일 체포된다. 수감 중 갖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비밀을 폭로하지 않자, 군사재판에 회부된 그는 결국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 해 10월 15일 9시 45분 경 찌호와 감옥에서 총살당하기 전 그는 여러 외국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 말을 기억하시오. 미국제국주의 타도! 응웬칸 정권 타도, 호찌민 만세, 베트남 만세” 라고 외치고 비장하게 죽음을 맞이 했다. 1964년 10월 15일 미아미신문이 그의 말을 보도하면서 그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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