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December 17,Sunday

초현실주의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이번에 소개할 작가는 스페인 현대미술계가 자랑하는 2대 거장 중 한 명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입니다. 인간의 욕망에 철저히 집중했고 특히 에로티시즘을 탐닉했으며 그 결과 가장 반기독교적인 미술로도 악명이 높습니다. 환상과 비합리적인 환각의 세계를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고, 기괴하고도 암시적 이미지가 가득 차 있는 초현실주의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 Un Chien andalou〉(1928)와 〈황금시대 L’Âge d’or〉(1930)를 제작하며 영화사에도 영향을 끼친 바 있습니다. 이 작가를 소개하는 이유는 그가 현대 미술사에 끼친 영향이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살바도르 달리>는 어떤 예술가인가?
‘달리’는 14세부터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명문에서 미술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모마리아상을 보이는 대로 그리라는 선생의 말에, 광고지에서 본 저울을 그린 답안지를 제출하면서 “심사위원보다 내가 더 완벽하게 답안을 알고 있어요”라고 말해 결국 학교생활의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부유한 그의 아버지 덕에 당시 최고의 미술교육을 받게 됩니다.
이후 ‘달리’는 파리로 건너오게 되는데, 여기서 ‘파블로피카소’, ‘폴엘뤼아르’, ‘막스에른스트’ 등 아방가르드 (Avant garde/전위; 선봉에 서서 흐름을 바꿔가는) 예술가들과 친구가 되어 그의 그림은 초현실주의로 점점 성숙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의 무의식인 마음의 상태를 끌어내기 위해 환각적 상태를 유발했는데, 이 과정을 스스로 ‘편집광적 비판’이라 불렀고, 이러한 그의 활동은 주목받기 시작하여 엄청난 성공을 이루게 됩니다.
그의 천재성은 미술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무대디자인, 광고, 삽화, 실내장식과 영화제작 등 여러 방면에서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여 월트디즈니의 영화제작에도 참여하여 영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리기도 합니다. 또한 스페인의 막대사탕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Chupa Chups” 의 성공은 그의 예술적 아이디어가 더해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했겠지요. 그의 예술세계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만 그의 작품은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달리’의 뮤즈이며 치료사인 아내 ‘갈라’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달리’ 역시 연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특별히 ‘달리’는 더욱 집요했습니다. 그의 작품 활동은 그 연인의 존재와 같이했습니다. 그 여인은 ‘갈라’라는 그의 부인입니다.
‘갈라’는 전남편인 ‘엘리아르’에겐 변덕스러운 사랑을 행하는 팜파탈(Femme Fatale; 남성을 파멸의 길로 몰고 가는 여성)이였으나 ‘달리’에겐 영감을 주는 뮤즈(Muse; 그리스 신화에서 지적 활동을 하는 여신으로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였고 53년간 함께 한 사랑하는 아내였습니다.
그는 너무나 섬세해서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유약한 자아를 지녔고 그것을 감추기 위한 발작적 기이한 행동들을 자주 하였는데, 10살 연상인 ‘갈라’는 그의 이런 병적인 나약함을 잘 파악하여 위로하고, 안정을 이끌어 주며 둘의 사랑도, 그의 그림도 같이 성장하기 시작했죠.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그림을 빨리 끝내라고 독촉하며 완성하기 전까지 밥도 안 주는 악처였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녀는 결혼 생활은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어린 정부들을 가까이했고, 그는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결국 미술계의 거장이 됩니다.
그의 화풍은 내용상 프로이트의 노이로제 환자를 위한 치료법이었던 정신분석학 중에서도 “히스테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형식적으로는 매우 고전주의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즉 무의식의 세계를 매우 정교하고 선명한 선과 색으로 환상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사실 꿈이란 꾸고 나면 상당히 흐릿한 잔상만 남는데 역설적이게도 그는 아주 견고한 선과 선명한 색으로 이미지를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그가 프로이트 이론에 미쳐서 평생 신봉했던 이유는 본인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자 했기 때문이겠죠.

“내 어머니보다, 내 아버지보다, 피카소보다, 그리고 심지어, 돈보다 갈라를 더욱 사랑한다. 그녀가 나를 치유했다.”

그녀는 결코 미인도 아니고 남자관계도 복잡했으나 당시 최고 지성인들의 추앙을 받았던 것으로 보아 예술적으로 뭔가 영감을 제공하는 특별한 여자이기는 한 것 같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광고에서는 순수 미술을 활용한 응용미술로써 그의 기법을 많이 활용합니다. 그래서 그의 미술을 고급예술(High Art)이며 아방가르드 예술이라고 합니다.
‘달리’의 대표작들은 딱딱한 사물을 정반대로 부드럽게 하는, 반의적 표현을 많이 썼던 작가입니다. 1982년 ‘갈라’가 89세의 나이로 먼저 죽자 이후 그는 일체의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고 파킨슨병을 앓다가 1989년에 그녀의 뒤를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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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하 은 서양화가

홍익대 미술대학 미술대학원
유니버셜 지오 갤러리 관장
알파 갤러리 사업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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