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August 16,Thursday

관성을 깨자

 

언젠가 퀴즈를 통해 응답하는 이의 성격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 문제 중에 하나, 애인을 만나 데이트 중에 강을 만났다. 어떻게 이 강을 건널 것인가?
선택 : 1. 조금은 위험할 수 있지만 한편 재미있을 것 같은 쪽배를 타고 강을 넘는다.
2. 안전한 구름다리를 타고 넘어간다.
가슴 설레는 데이트 인데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헤엄을 쳐서 넘어간다고요? ㅎㅎ 그런 선택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매번 선택을 해야 하는 삶을 삽니다.
점심을 무엇을 먹을까를 시작으로, 출장을 언제 갈 것인가, 친구에게 돈을 빌려 줄까 말까, 오늘 저녁에 외식을 할까, 집에서 혼밥을 먹을까 등등 매 순간이 선택입니다.
그런 순간에 여러분은 어떤 기준을 갖고 선택을 하게 되나요?
아마도 모르긴 해도 대부분 그동안 해 왔던 대로 검증된 선택을 별다른 의심없이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각각의 상황에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혹은 쭉 해오던 대로 반응하는 것은 우리는 관성적인 반응이라고 합니다.

고교시절 물리시간에 배운 운동의 법칙 중 제1법칙이 관성의 법칙입니다.

관성의 법칙은 어떤 물체가 힘을 받지 않으면 계속 그 운동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멈춰 있는 물체는 계속 멈춰 있으려 하고,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계속 같은 운동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즉 어떤 물체에 외부 힘이 작용하지않는 이상 모든 물체는 예전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이 관점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물리학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요즘 새삼스레 느낍니다.
요즘같은 급변하는 시대에서는 아무리 성공한 사업가라 하더라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은 모든 사업가가 가져야 할 불변의 진리에 가깝습니다. 본지도 그런 생각에 앞으로 10년의 먹거리를 새로 창출하기위해 이런 저런 사업 구상을 하며 여러가지 변화를 유도하고 있는데 예상보다 어려움이 큽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는 것보다 이런 변화에 대하여 내부 의견을 조율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물론 오너가 하자는데 직원들이 대 놓고 반대를 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팔 걷어 붙이고 나설 의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일을 진행하여야 할 직원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데 이 일이 진행되겠습니까?

관성적인 삶이란 그냥 쭉 해오던 대로 사는 삶입니다. 어떤 외부의 요소에 의한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습관적, 관습적으로 반응하며 사는 삶. 우리가 얼마나 관성적으로 살고 있는지 한 번 살펴 볼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을 가고, 마눌님이 밥상을 차려주면 아침을 먹고, 출근시간이 되면 집을 나서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회사에서도 역시 회사의 룰에 맞게 반응을 하며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점심을 먹으러 식당을 찾고, 오후 업무가 끝나면 다시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집에서 티비를 보고, 저녁을 먹고 10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겠죠. 그리고 다시 아침이 되면 똑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시간에 따른 암묵적 지시나 소속된 공동체의 룰에 따라 순응하며 변화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일상이 관성적인 사람들은 모든 행동 역시 관성적입니다. 밥을 먹고 나면 물을 마셔야 하고, 침대에 누우면 잠을 자야 하고, 책상에 앉으면 공부를 해야합니다.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야 하고 토요일에는 골프 모임이 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의문점이 없습니다. 이런 의문이 없는 삶이란 어찌보면 생활의 틀이 잘 짜여져 있는 괜찮은 삶이란 증표도 되지만 이런 관성적 삶의 방식에 익숙해지면 발전을 위한 변화마저 거부하는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변화란 지금까지 의뢰적으로 해 오던 것과는 다른 낯설은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회사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한 10년동안 열심히 일해서 베트남에서 제법 신뢰받는 교민잡지를 만들고 안정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이것이 독으로 작용을 하는지 새로운 변화를 기피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살펴보면 이제 긴장감이 떨어진 탓입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사라진 것이죠.
물론 이해가 갑니다. 예를 들어, 전장에서 포화를 무릅쓰고 열심히 진지를 구축하여 이제 좀 숨을 돌릴 만한데 또 다른 진지를 구축하라고 하니 그동안 고생하던 직원들 입장에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소리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상대가 또 다른 전술로 접근하고 있는데 그저 손 놓고 바라만 볼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상대란 경쟁업체라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함에 있어 가장 먼저 시행해야 할 일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적극적인 동의를 구하는 일입니다. 이것만 해결이 된다면 그 외의 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입니다.
어떻게 설명을 하면 일선 요원들의 관성적 거부를 누르고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동의를 구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열심히 일한 덕택에 이제서야 장기 플랜을 실행할 만한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말로 설득이 될까요? 이런 상황 설명이 당장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은 되겠지만 이런 변화를 치루고 조금만 더 지나면 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기에 근원적인 해결방법은 아닌 듯합니다.

그래서 쓰는 글입니다. 아예 일상에서 부터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의문을 가져 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내리는 모든 일상의 선택부터 의문을 갖는 습관을 가져 본다면, 나아가 사회나 단체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변화에 대하여도 관성적인 거부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런 삶의 가치관은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유관합니다. 빈곤과 풍요가 단 시일에 휘몰아 치듯이 다가오던 5-60년대의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변화하는 삶에 대한 거부 반응이 덜하겠지만 태어나면서 부터 자가용을 타고 다니던 8-90 년대 이후 세대에게는 왜 이래야 하는데 하며 손사래를 칠 수 있겠죠.
그런데 이들이 명심해야 할 일은 바로 요즘의 시대가 빈곤과 풍요가 교차하던 5-60년대와 다르지 않을 만큼 변화가 심하는다는 것 입니다. 이런 시대에 살아남기 위하여는 이제는 조금 사고를 바꿔야 합니다. 예전에 해오던 대로의 관성적 선택으로는 생존을 보장하기 힘든 시대입니다.
만약 어느 젊은이가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데이트 길에서 만나는 강을 건너기 위하여 헤엄을 치겠다는 별난 선택을 한다면 우리 회사에 일 할 생각이 없느냐고 권유할 것입니다.

자신이 내리는 모든 선택에 의문을 가져 보세요. 그동안 쭉 해오던 선택 말고 다른 선택을 하면 뭐가 잘못될까 하는 의문 말입니다. 아마도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될 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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