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6,Friday

위대한 문자, 훈민정음 그리고 한글

한민족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가장 가치있는 유산을 고른다면 무엇이 있는가?
석굴암, 경복궁, 고려청자, 무령왕릉, 판소리, 직지심경, 모두가 소중한 문화유산이지만, 한민족이 인류사에 남긴 최대 발자취이자, 문화유산은 국문(國文)인 한글이다.
한글이 문화유산으로써 가치가 높은 이유는 문자사용으로 인해 파생되는 수준 높은 문화가 많기 때문이다. 구운몽, 홍길동전, 심청전 등 중세 문헌은 물론이고 요즘 한창 뜨며 세계인의 눈길을 끌고 있는 K-POP이나 한국의 드라마 등 모든 한류를 창조하는 근간이 바로 우리글 한글이다.
문자는 기록이라는 절차를 거쳐 후손에게 지식과 문화를 전수하는 수단이기에 그 문자를 사용하여 민족의 고유 정체가 담긴 문화가 탄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은 우리민족에게 문화적 날개를 제공한 최고 유산이라 할 수 있겠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본지는 한글에 대한 특집을 마련하여 비록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생활하는 우리 교민들에게 잠시 동안만이라도 우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한글에 대한 생각을 하며 지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훈민정음과 한글의 차이

엄격한 기준에서 본다면 한글과 훈민정음은 다른 문자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즉, 한글은 훈민정음이 간편화, 표준화 과정을 거쳐, 19세기 말 20세기 초 사용되던 한국어에 기반한 훈민정음의 개량된 다른 언어라는 시각인데, 이에 대한 근거로 유럽의 경우 라틴어에서 파생된 로마알파벳이 각국의 필요에 따라 문자 형태를 첨가, 생략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개량하지 않냐는 이유를 들며 한글도 그런 형태다 라는 것이다. 백번 그 말이 맞다해도 훈민정음을 개량 발전하여 쓰는 것은 한글 밖에 없으니 로마알파벳이 각국에 퍼져나가면서 변화된 과정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저 한글은 훈민정음의 시대적 실용화에 따른 변화버전 정도라고 보는 게 마땅하다. 아무튼 훈민정음이 변화한 것이 한글, 하나건 말건 변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그 차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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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대로 라면 훈민정음은 자연 만물의 모든소리를 기록하는데 목적을 두고 만들었고 한글은 한국말을 기록하는 목적으로 변형된 문자다. 이것을 마음에 두고 우리말에 대한 여러사항을 객관적으로 짚어보자.

훈민정음이 우주라면, 한글은 고작 한국이다.
이승재. 국립한글박물관 연구교육과장의 글을 보면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있는 글자들을 살피다 보면 당시 우리말과 관계없는 소리를 적기 위한 글자들이 보인다. 그런가 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소리를 적을 수 있다는 표현도 보인다. 또한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는 각종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외국 문물이나 기술에 관심을 많이 가질 때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을 모두 고려하면 훈민정음은 대체로 아래와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우리말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중국 한자음을 적기에 적합한 글자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중국 한자음을 발음기호처럼 적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은 소리대로 적을 수 있는 표음문자로 만들어졌다. 표음문자는 소리대로 적을 수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 들어온 말을 한자와 같은 표의 문자보다 훨씬 더 원 발음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외국에서 들어온 각종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외국의 각종 서적들을 번역할 때에도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렇다. 이것으로 알수 있듯이 훈민정음은 세종대왕께서, “이왕 만드는 것, 한국말 표기만이 아니라 한자나 외국어 표기도 가능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까지 다 담을 수 있도록 아예 우주용으로 만들어 주마”하며 만든 문자다. 그런데 아둔한 한국인, 그렇 게 훌륭한 훈민정음을 한국말을 표기하는데만 사용한 것인데, 그렇게 협소한 용도로만 사용하다 보니 사용되지 않은 글자들이 보인다. 그러자 한국인의 과감성을 발휘하여 용감하게 이리 자르고 저리 잘라 버린다. 그리고 폼나게, 한글이라는 새 이름을 가진 변형 버전을 만든 것이다. 그리곤 100년도 안되어 지구의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나니 비로소 우리가 잘라 버린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는 깨닫는다. 그러나 한번 사라진 글자가 다시 살아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훈민정음 당시 제정 되었으나 한글에서 사라진 글자를 중심으로 그 변화를 짚어보자.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보았다. 인터넷 상의 자료를 인용하였다.


자음의 세 글자와 모음의 한 글자가 없어졌습니다.

없어진 글자는 [ ㅿ ] [ ㆍ ] [ ㆆ ] [ ㆁ ] 네 글자입니다.

ㅿ : 첫 글자는 반설 불청불탁음이고
ㆍ : 두번째 글자는 아래아, 하늘을 나타내는 글자입니다.
(모음)
ㆆ : 세번째 글자는 여린 ㅎ이고
ㆁ : 네번째 글자는 받침 ㅇ 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음 불청불탁음으로 비음입니다.

그래도 예전 글자들이 어색하게 보이는 것은 병서, 연서가 달라진 까닭이 큽니다. 자음에는 ㅂ+ㅇ(ㅂ 아래에 ㅇ을 쓰는) 여린 ㅂ이 있었지요. ㅁㅇ ㅍㅇ ㅃㅇ 도 모두 있었으나 ㅍㅇ 부터 차례로 사라졌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자음을 세개 겹쳐 쓰는 것도 있었습니다. 닭ㅅㄸㅅㅐ는 닭때 즉 닭이 울던 때라는 거죠.

모음의 경우도 연서가 많이 변했습니다. ㅛ + ㅑ ㅠ +ㅕ 같은 글자 들은 모두 없어 졌지요.

방점도 없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사성 – 평성, 상성, 거성, 입성 이 있어서 여기에 따라 뜻을 구분했지요. 글자 옆에 점을 찍어 표시했습니다.


 

위와 같이 변했다. 사실 천지 개벽한 변화는 아니지만 용도가 협소한 문자가 된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 모르고 산다. 자산이 잘려 나간 것을 모르고, 그 귀한 자산을 작업하다 남은 쓰레기 취급하니 참 답답한 일이다.

 

훈민정음의 과학성

훈민정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표기하는 범 우주적 목적으로 만들어 진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훈민정음의 과학성과 실용성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과학적이라는 말이 진리 같다.
그러나 누군가 왜? 라며 한글의 우수성을 질문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가?

 

훈민정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적을수 있다. 어떻게?

언어의 기원에 관한 논의는 학자들의 오랜된 주제이지만 아직도 확실하게 결론이 내려진 것은 없다.우리 인류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는 호모사피엔스가 비언어적인 소통수단에서 말을 통한 소통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증거로 해부학적으로 말을 할 수 있는 조건인 목의 후강이 내려앉은 구조가 호모사피엔스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 때 바로 이 인간의 후강구조에 입각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훈민정음이 다른 표음 문자와 기본이 다른 이유다.
먼저 우리가 자음이라고 부르는 닿소리는, 목구멍에서 숨이 나올때 숨이 어느 곳엔가 닿으면서 만들어내는 소리라는 뜻이다. 그 목구멍을 통해 나오는 숨이 혀, 어금니, 입술,이, 목구멍,에 닿는 순간에 생기는 모양을 본떠 “ㄱ, ㄴ, ㅁ, ㅅ,ㅇ” 로 기본글자 5자를 만들고 거기에 획을 하나 혹은 두개를 추가하여 닿소리 17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모음이라고 부르는 홀소리, 홀소리란 목구멍에서 숨이 나올 때 어디에도 닿지 않고 홀로 나는 소리를 말한다. 명칭만 봐도 한자 표기인, 자음. 모음보다 훨씬 이해가 쉽다. 아무튼 홀소리의 경우 하늘 땅 그리고 사람의 모양을 본떠 ” . ㅣ ㅡ “기 본 홀소리를 만들고 그에 기본자들을 한번씩 합쳐서 ” ㅗ ㅜ ㅏ ㅓ ㅛ ㅑ ㅠ ㅕ” 8개를 만들어 총 11자의 모음을 만들었다. 그렇게 28자의 기본자가 만들어 진 것이다. 그 후에 우리나라 발음에 별로 없는 글자, 옛이응, 반시웃, 아래아, 여린 히읗이 사라져 현재 한글의 자모수는 24자가 된 것이다.
특히 한글의 자랑 중에 하나는 다양한 모음의 발달이다. 그리고 그 모음이 표현은 그야말로 훈민정음이 진정한 발음기관을 그린 문자라는 것을 너무나 뚜렷하게 보여준다. 모음 세 기본자의 의미가 땅 하늘 인간이지만 실제로는 목구멍을 원구형으로 보고 그 곳을 통과하는 각각의 소리가 그려내는 목구멍의 모양 ” . ㅏ.ㅣ”를 합하여 그린 것이다.
기본적으로 모음의 발견은 언어학 역사에 획기적인 전환기를 제공한 엄청난 업적이다.
세계에는 6000여종의 언어가 있고 그말을 적는 문자가 250여개있다 그리고 현재 사용하는 문자는 40여개다. 왜 이렇게 많은 문자들이 사라졌는가? 그 이유가 아마도 모음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모음 존재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표기의 어려움으로 이어져 모음이 표기 되기 전에 많은 문자가 사라졌다고 봄이 타당하다. 모음이 처음 등장한 문자는 고대 그리스 알파벳이다. 고대 그리스 인들이 페니키아 알파벳을 받아 들이며 그에 모음을 추가하여 서양 알파벳의 뿌리되는 그리스 문자를 만든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다.
예전에 텔렉스(인쇄전신 교환장치)로 국제 소통을 할 때 긴 단어를 줄임 단어로 표현하여 비용을 절약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스케줄을 SKDL, 플리즈를 PLZ로 사용했는데 이런 현상은 바로 문자 발전을 역으로 돌린 것과같은 형태다.
실제 문자의 발전은 모음표기 없이 “SKDL”을 적고 “스케즐”로 읽다가 사람에 따른 이해의 차이가 소통의 어려움으로 드러나자 그 자음사이에 모음을 만들어 채우기 시작하며 비로소 SKeDuLe 이라는 표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음만으로 된 음절에 모음이 더해지는 발전을 한 것이다. 모음의 기록을 전 후로 고대와 현대 문자가 구분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모음, 목구멍에서 아무것도 닿지 않고 홀로 내는 소리, 진정한 훈민정음의 자랑

도무지 목구멍에서 아무것도 거치지 않은 소리를 어떻게 이미지 할 수 있는가?

아무 것도 안 거치니 그저 동그란 모양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동그란 구멍도 여러 모양으로 바꿈으로 나오는 소리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세종 대왕은 그 목구멍의 모양을 가로 세로 짝대기 두개로 2차원 그리고 아래아 점으로 3차원의 모양을 그릴 준비를 한 것이다. 모음 3개 글자가 각 소리에 따른 목구멍이 모양을 표기할 도구다.
목구멍의 중심에서 상하 표현은 인간의 모습인 ㅣ 를 사용하고 좌우 표기는 땅을 나타내는 ㅡ, 그리고 목구멍 앞과 뒤로 변화하는 모습을 점으로 표기했다. 마지막 글자가 사라진 모음, “아래 아” 다.
한글에서 이 표기를 생략함으로 우리는 소리는 3차원에서 2차원이 줄어버렸다.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문자로 스스로 격하 한 것이다. 이 모음의 모양이야말로 한글이 완벽한 문자라는 증거다. 만약 우리의 귀와 시각이 원을 360구분한 1도 단위의 차이도 구분하고 표기할 수 있다면 이 세가지 막대의 조합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모음의 숫자는 360도를 3제곱한 46,656,000이 나온다. 그러니 훈민정음은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고 봄이 너무나 당연하다.

히브리어 문자를 보면 자음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단어의 발음이 쉽지 않다. 각 음절을 어떻게 부르자 는 식으로 긴 음절단위의 발음 약속들이 이루어져 있는 문자다. 이 문자 역시 구전에 의존해 발음하는 문자의 특성상 서서히 사장되다가, 7세기 이후 모음을 추가하여 회생된 문자다. 그러나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히브리어에 YHWH 라는 단어가 있다. 유일신 하나님을 칭하는 단어다. 한번 읽어 보시라. YHWH, 아훼라고 발음하는 히브리어의 구전을 모르는 사람은 쉽게 읽을 수 없는 단어다. 이를 고대 제사장들이 야훼라고 불렀고 영어로는 여호와라고 불렀다. 그래서 지금도 카톨릭에서는 아훼(YaHWeH) 라고 부르고 개신교에서는 여호와(Jehovah)라 부른다, 이 흔적이 인류 문자발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베트남어를 배우는 한국인이 가장 불편한 것이 우리에게 없는 발음과 중간발음들이 있어 우리 귀에 생소하여 익히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에게도 이런 글자가 있었다, 지금 사라진 여린히읗을 사용하면 베트남 단어의 끝에 붙는 “H”의 표현이 가능하고 모음의 아래아 발음은 우리가 가장 힘든 베트남어의 3가지 ㅇ에 대한 발음을 각 각 표기할 수 있어 베트남어를 익히는데 편리 할 수 있었다. 한글에서는 사라진 표기들이 외국어를 배울 때 솜씨를 발휘하는데 그 솜씨를 보여줄 기회가 오기 전에 무도한 한국인에 의해 짤려 나갔다. 그 외에도 훈민정음 당시 제정한 병서나 연서, 성조까지 활용한다면 온 세상 소리를 다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소리를 나타낼 수 있게 만든 문자가 과연 한 인간의 솜씨로 가능하겠는가?
이에 대하여 집현전 학자들은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이렇게 말했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져 천지만물의 이치를 모두 담고있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이는 아마도 하늘이 성스러운 임금의 마음을 여기시어 그 솜씨를 빌려주신 것이로구나” 하고 탄복을 한다. 훈민정음 창제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람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뛰어난 것이라 신이 그 솜씨를 빌려 줬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그리고 또한 위의 문장을 통해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실은, 훈민정음은 세종이 혼자서 만든 것이 맞다는 것이다. 집현전 학자들과 같이 만들었다면 그들의 입에서 어찌 세종을 칭송하는 문장만이 나오겠는가? 자신들, 집현전 학자들도 고생 좀 했다 뭐 이런 얘기도 나올 만 하지만 별다른 언급이 없다.

 

우리 글의 실용성

먼저 언급했듯이 우리 글, 글자의 모양이 발음기관과 조음작용을 관찰해 반영했다는 것도 너무 놀랄 일이다. 이는 모든 문자가 사물의 형태를 본떠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과 일맥 상통한 얘기로, 소리가 나는 기관의 모양을 떠서 만듬으로 문자형성의 기본을 따랐다는 것이다.

또한 그 발전의 과정이 규칙적이다. 훈민정음의 28자를 만든 기본 글자는 닿소리 5개 ( ㄱ,ㄴ,ㅁ,ㅅ,ㅇ) 과 홀소리 3개 ( . ㅣ ㅡ) 에 불과하지만 그것에서 규칙적으로 확장된 글자를 사용함으로 글자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 다른 특징은, 글자를 합쳐쓰는 방식이다. 초성 중성 종성을 모아쓰기로 함이, 특히, 현대 IT생활에 엄청난 경쟁력을 준다. 아마도 한자 방식에 영향을 받았을 것 같은데, 이 표기 방식으로 더 빨리 읽고 쓰기가 가능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한글”을 ㅎㅏ ㄴ ㄱ ㅡ ㄹ 과 같이 늘어쓰는 방식으로 하면 약 25%이상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한, 글의 모양만 봐도 발음의 모양을 연상할 수 있다는 신의 문자가 바로 한글이다.

예를 들어 “호호”라고 쓰면 입도 위아래가 되고 “하하”라고 쓰면 입모양도 옆으로 벌어진다. 글자의 모습과 이를 그리는 입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은가? 하하에는 입이 옆으로 늘어나고 호호하면 입이 위로 치솟는다.
실제로 한글이 나타낼 수 있는 음절의 수는 정말 얼마나 되는가 살펴 보자
지금의 한글을 기준으로 계산 해 본 것이다. 먼저 첫소리에 나오는 자음의 숫자는 기본 14자에 된소리 5을 합하여 19, 그리고 가운데 소리의 모음은 기본 모음 10자에 이중 모음 11자를 합하여 21, 그리고 끝소리에 나오는 자음은 첫소리 19에 곁받침 8을 합하여 27 자다.

그것을 근거로 계산을 하면
받침이 없는 자: 첫소리 자음 19 X 중간소리 모음 19 = 399 자
받침이 있는 자: 받침없는 자 399 X 끝소리 27= 10,773 자가 나온다.
그래서 한글로 쓸 수 있는 발음수는 399 + 10,773= 11,172 의 음절이 된다.
익숙한 숫자지만 나오게 된 계산의 근거를 알고 가자.

마지막으로 한글의 실용성을 알 수 있는 것은 글자와 소리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우리 글은, 하나의 글은 하나의 소리값 만을 갖는다. 어떤 이들은 이런 특징은 모든 소리 글, 표음문자의 보편적 성질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보급된 소리글의 하나인 영어의 예를 들자.
그 대표적인 예로 NIKE를 들수 있다. 일반적으로 니케, 혹은 영어임을 감안하여 발음을 적용하여도 나이크 인데 이들은 나이키로 읽는다.
만약 한글로 “니케” 라고 쓰고 남들에게 “나이키”라고 읽으라면 누가 따르겠는가? 이 사람 정신이 없는 친구네 하는 소리가 바로 나온다. 나이키의 경우는 고유명사라 그럴 수 있다고 감안해도 “LIVE”라고 쓰고는 단어의 의미에 따라 라이브로 읽기도 하고 리브로 읽기도 하니 일관성하고는 거리가 먼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 한글은 그런 가능성이 아예 없다. 니케라고 쓰고 나이키라고 읽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소통의 일관성을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상당한 실용성을 갖는 것이다.

 

한글이라는 이름의 탄생

우리글의 이름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흔히들 우리글이 한동안 천대를 받아 속된 말로 언문이라고 하대 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 언문(諺文)이라는 단어의 뜻을 보면 “전하는 말이나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을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있는 문자”라는 뜻으로 결코 낮은 말이 아니다. 실제로 세종대왕도 언문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특별히 글의 목적이 국민을 바르게 인도하는 의미로 사용될 때만 훈민정음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언문이라는 말이 결코 피해야 할 소리는 아니다. 물론 단어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런 의미를 갖고 사람들이 사용했다면 그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조선인이라는 말이 결코 속어가 아닌데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얕보며 사용했기 때문에 조센진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금지어가 된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튼 우리글은 갑오개혁 이후 국서, 국문, 조선글로 지칭되다가 1910년에 주시경 선생에 의해 한글로 지칭되었는데 그 후에도 여러 이름으로 시도되다가 지금의 한글로 이름이 정해졌다.

한글이 세계의 문화유산?
이런 말은 잘못된 것이다.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것은 한글이 아니라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나라의 글 자체가 기록 유산으로 지정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뜻이 문맹 퇴치에 있다는 것으로 세계 문맹퇴치를 위한 유네스코 상을 만들어 그 상의 이름을 세종대왕상으로 명명한 것은 맞다.
그 증거로 한국은 문맹률 0%를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한글에 대하여 세계 언어학자들은 과연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미국에 널리 알려진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리 지 1994년 6월호「쓰기 적합함」이란 기사에서, ‘제라드 다이어먼드’라는 학자는 ‘한국에서 쓰는 한글이 독창성이 있고 기호 배합 등 효율 면에서 특히 돋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한 바 있다.(조선일보 94.5.25).
그는 또 ‘한글이 간결하고 우수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 고 말한다. 또 소설『대지』를 쓴 미국의 유명한 여류작가 ‘펄벅’은 한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세종대왕을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극찬하였다(조선일보 96.10.7).
그런가 하면 시카고 대학의 메콜리(J. D. McCawley) 교수는 미국사람이지만 우리 나라의 한글날인 10월9일이면 매해 빠짐없이 한국의 음식을 먹으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KBS1, 96.10.9). 그 맥콜리 교수는 한글 창제는 세계의 언어학계가 경축해야 할 일이니 당연히 이날은 기념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영국학자 제프리 셈슨은 한글이야 말로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지적 산물 중에 하나다 라고 말했다.
언어 연구학으로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 대학에서 세계 모든 문자를 순위를 매겨(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등의 기준으로) 진열해놓았는데 그 1위는 자랑스럽게도 한글이다.

 

맺음말

이런 얘기는 한글을 사용하는 한국인이라면 어느정도 알고 있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혼자서 알고 있는 얘기로 우리의 자부심을 채우기 전에 우리는 한글이 한민족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만주의 조선족들이 사실은 중국인이면서도 한국인에게 대접받고 있는 것과 북한이 우리와 총을 겨루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남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한가지, 언어가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글을 버릴 때 우리는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니다.
외국에서 나가 사는 교민들 자녀가 한국어와 한글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한국인의 정체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진다.
우리도 이국에서 이국어를 사용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는 그런 부류 중에 하나다.
그럴 수록 우리 말과 글을 자녀들에게 제대로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소통이 문제다. 아무리 다른 언어를 잘해도 우리말을 사용할 때처럼 분명한 소통은 기대하기 어렵다. 가장 기본적인 소통 단위인 언어문제가 꼬이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자녀들이 어디서 어떤 삶을 살든간에 한국의 말과 글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면, 그들은 진정한 한국인으로 자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며 묻는 부정적 질문의 답이 은근히 신경 쓰이는 문장이다.

One comment

  1. 좋은기사 감사합니다. 글의 작성자가 어느분인지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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