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November 14,Wednesday

모차르트의 숙적 살리에리? 왜곡된 그의 삶

푸쉬킨의 시선,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러시아의 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이 1830년에 발표한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18세기 유럽에서 동시에 활동했던 두 음악가 울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예술 세계 그리고 그들 사이에 숨겨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신의 은총을 한 몸에 받은 듯한 천재 모차르트와 그 천재로 인해 평생 2인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산 것으로 알려진 살리에리. 이 두 음악가는 푸시킨의 희곡 속에서 상당히 드라마틱한 악연으로 얽혀 있다. 1791년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온갖 소문이 난무했다. 소문인즉, 살리에리가 질투에 눈이 멀어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푸쉬킨은 그 소문을 믿었고, 그 것을 토대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쓰게 되었다. 천재를 질투한 범재, 천재의 죽음과 독살설. 이 얼마나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소재인가?
살리에리의 모차르트 독살설은 푸쉬킨의 시선에 의해 이렇게 묘사되었다.

살리에리 “오 하늘이시여!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세상의 정의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겁니까?
만약 성스러운 재능이나 불멸의 천재성이 불타는 사랑, 자기희생과 노력, 열정과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리 판단도 못하는 미치광이 방탕자의 것이라면 무엇이 공정합니까?!!! 아! 모차르트! 아! 모차르트!~~~ ”
(괴로움에 빠져있던 살리에리는 어느 날 모차르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모차르트 “요즘 도대체 잠이 오지 않아 남는 시간에 이 곡을 작곡하고 있습니다. 한 번 들어봐 주시겠습니까? ” (그 즈음 악화된 건강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던 모차르트는 피곤한 기색을 드러낸 채 무심히 자신의 레퀴엠을 들려준다 )
살리에리 ‘남는 시간이라? 이건… 너무 훌륭하잖아…!!’ (이글거리는 질투심과 좌절감으로 이성을 잃은 살리에리는 결국 모차르트의 샴페인잔에 독약을 타고 만다)
살리에리 “모차르트~ 이 곡 정말 훌륭하군. 놀라운 대작인걸?!” (자신의 속마음과는 판이하게 다른 말을 내뱉고 있는 살리에리 앞에서 모차르트는 술에 취해, 아니 독에 취해 서서히 숨을 거둔다)
모차르트 독살설은 푸쉬킨에 의해 이렇게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즉 푸쉬킨은 이 희곡을 통해 살리에리를 독살자로 만든 것이다.

왜곡된 채 더욱 각색된 영화
<아마데우스 >
모차르트하면 바로 떠오르는 영화. 바로 <아마데우스>이다. 피터 셰이퍼가 쓴 희곡 <아마데우스>의 흥행을 본 밀로스 포만 감독은 이 희곡을 영화로 제작하였다. 1984년에 개봉한 이 영화 역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시기한 나머지 병고에 시달리던 모차르트에게 레퀴엠을 작곡하도록 강요하다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1823년 11월 빈. 자살을 기도하다가 병원으로 후송되는 살리에리는 피범벅이 된 채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이렇게 울부짖는다.
“오! 하나님, 모차르트에게는 천재성을 주시고, 왜 제게는 그런 천재성을 알아보는 눈만 주셨습니까?!!”
살리에리의 이 말 속에는 천재를 갈구하는 범재의 좌절이 여실히 나타난다. 일평생 성실과 근면, 노력과 희생을 발판으로 긍지있게 살아왔다고 생각한 살리에리. 하지만, 살리에리는 절대로 천재라는 타이틀을 모차르트로부터 뺏어올 수 없는 평범한 노력형 작곡가로 묘사되어 있다. 심지어 영화 속의 살리에리는 시기와 질투에 휩싸여 클래식 음악사상 최고의 천재였던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살인마가 되어 있다. 그렇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극작가 피터 셰이퍼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현대판 업그레이드 버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실존 살리에리는 어떤 인물인가?
안토니오 살리에리 (Antonio Salieri 1750 – 1825)는 이탈리아의 레냐고 지방에서 태어났다. 16세에 부모를 잃은 살리에리는 빈 궁정의 지휘자였던 스승 가스만의 도움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음악 전반에 걸쳐 체계적인 공부를 하였다. 20세 초반에 이미 오페라 <여류 문인들>, <아르미다> 등을 흥행시키며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다진 살리에리는 1774년 스승 가스만의 별세를 계기로 황제 요제프 2세의 궁정작곡가 겸 오페라 지휘자가 되었다. 이어 1776년에 궁정 총 음악감독인 카펠마이스터가 된 살리에리는 사망하기 직전인 1824년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였다. 작곡가로서의 명성에 발맞추어 제자 육성에도 열성적이었던 그는 베토벤, 슈베르트, 체르니, 리스트 등 서양음악사의 한 획을 그었던 음악가들을 가르친 선생으로도 유명하다. 생전에 작곡가, 지휘자, 그리고 스승으로서 명망있었던 살리에리였지만 70세가 넘어 발병한 치매로 인해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1825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75년의 생을 마감하였다.

독살설에 관하여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과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살리에리. 오페라로 18세기의 유럽을 호령했던 살리에리. 하지만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된 것은 대히트를 친 <아마데우스>라는 영화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영화 속 살리에리의 모습은 진짜 그의 모습이었을까? 역추적해보니 연극과 영화 속에 묘사된 살리에리 모습은 상당히 왜곡되어 있었다. 사실 질투의 화신은 살리에리라기보다는 모차르트였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당시 성공한 음악가 살리에리의 자리인 궁정악장은 모차르트가 그렇게도 오르고 싶었던 자리였지만, 변덕스럽고 생활이 두서없었던 괴짜 모차르트에게 황제는 그 자리를 내어 주지 않았다. 요즘말로 풀어보면 살리에리는 아무것도 아쉬울 것 없는 정규직이었고, 모차르트는 비정규직(프리랜서 작곡가)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차르트의 불만은 당시 음악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공연히 아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물론 천재 모차르트에 대해 살리에리가 질투심을 갖지 않았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겠다. 아무튼 이 둘의 관계가 편치 않았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살리에리의 모차르트 독살설은 둘 사이의 불편한 관계 속에서 모차르트가 사망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고, 정신병으로 요양소에 들어간 살리에리가 종종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소”라고 헛소리를 했던 점, 거기에 죽어가던 모차르트가 “누가 나에게 독을 먹인 건 아닌가…” 라고 말했다는 소문 등이 모두 합쳐져 만들어진 오해라는 것이 현재까지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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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지 희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졸업(교육학 학사) / 미국 맨하탄 음악 대학원 졸업(연주학 석사) / 한세대학교 음악 대학원 졸업(연주학 박사) / 국립 강원대학교 실기전담 외래교수(2002~2015) / 2001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 이후 이태리, 스페인, 중국, 미국, 캐나다, 불가리아, 캄보디아, 베트남을 중심으로 연주활동 중 / ‘대관령 국제 음악제’, 중국 ‘난닝 국제 관악 페스티발’, 이태리 ‘티볼리 국제 피아노 페스티발’, 스페인 ‘라스 팔마스 피아노 페스티발’ 《초청 피아니스트》
E-mail: pianistkim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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