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September 23,Thursday

[역사를 바라보다<9>] 빈찌티엔(Binh Tri Thien) 그리고 광찌(Quang Tri)

 

[역사를 바라보다 – 이름으로 알아보는 역사 <9>]

베트남 공화국(월남)의 최전방 지역으로 북쪽을 흐르는 벤하이 강을 따라 월남과 월맹을 갈랐던 군사분계선
그 역사와 함께 숨쉬는 광찌(Quang Tri)성

빈찌티엔(Binh Tri Thien) 그리고 광찌(Quang Tri)

 

꽝찌성(廣治省 QuảngTrị)은 베트남 북쪽 중앙 해안에 있는 성이다. 옛 황실의 수도인 후에(Huế) 바로 위쪽이다. 광찌성에는 천하절경을 자랑하는 명승고적지가 즐비할 뿐만 아니라, 월남전의 상흔을 간직한 수많은 전쟁유적지가 있어 매년 관광객들과 방문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광찌성은 특히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북쪽의 베트남민주 공화국과 남쪽의 베트남 공화국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있었던 곳으로, 특히 1954년~1975년 사이에는 베트남 공화국(월남)의 최전방 지역이었으며, 이 성(省)의 북쪽을 흐르는 벤하이 강을 따라 월남과 월맹을 가르는 군사분계선이 설치되었다. 당시 이 지역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북쪽으로는 광빙성, 남쪽으로는 트어티엔후에(Thừa Thiên-Huế), 서쪽은 라오스의 사반나케트 (Savanakhet) 성, 그리고 동쪽은 동해와 접한다. 한편 광찌성의 총면적은 4,745.7km2이며, 성도는 동하(Đông Hà) 시로,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남으로 593km, 호찌민에서1A 국로를 따라 북으로 1,120 km떨어져 있다. 참고로 광찌성의 현재 인구는 60만2천여명으로, 이중 다수가 농사를 주업으로 한다.

역사
옛 베트남 역사서에 따르면 훙브응-안증(Hùng Vương – An Dương Vương) 시대에는 이 지역이 방랑-어우락(Văn Lang – Âu Lạc)국의 영토였다. 중국 한나라 통치당시(BC.192~179)에는 광찌성이 행정구역상 녁남(Nhật Nam)군 소속이었으며, 2세기말 한나라가 멸망하자 이 지역 토호(참파족)들이 럼업(Lâm Ấp)국을 건설한다. 10세기말 중국에서 독립하여 건립된 대월국은 북쪽의 중국과 남쪽의 짬파 민족과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1069년 리탄똥(Lý Thánh Tông) 왕 제위 당시 리트응끼엣(Lý Thường Kiệt) 장군은 5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남진해 참파국의 수도 짜방(Chà Bàn)을 공격, 참파 국왕 루드라바르만3세(Rudravarman III) 를 사로잡아 탕롱(하노이)으로 호송했다. 당시 참파왕은 몸값으로 보찐(Bố Chính), 디어리(Địa Lý), 미린(Ma Linh) 등 3개 주를 대월국에 바친후 풀려났는데, 이 지역들이 지금의 광찌성의 일부다. 또한 쩐(Trần)왕조 시절인 1306년 짬파의 왕 자바 신하바르만 3세(Jaya Sinhavarman III / 베트남어로 Chế Mân/쩨멍은 쩐안똥(Trần Anh Tông)왕에게 후인쩐(Huyền Trân)공주와의 혼인을 청했다.

당시 그는 Ô와 Lý(Rí) 지역을 예물로 바쳤는데, 1309년 Ô주(châu/州)는 투언쩌우(Thuận Châu)로, Rí주는 호아쩌우 (Hóa Châu)로 지명이 바뀌면서 베트남 영토에 정식 편입되었다. 이중 특히 – 주(châu/州), 즉 투언쩌우가 지금의 광찌성의 일부다. 1558년이후, 당쫑(Đàng Trong/베트남 남쪽지역)을 다스리던 윙가의 윙호안레(Nguyễn HoàngLê)는 투언쩌우에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을 많이 머물게 하고, 방비를 철저히 함으로써 당응오아이(Đàng Ngoài북쪽지역) 지역을 점령 찐가의 영주들과 오랫동안 대치해왔다.

 

윙 왕조 통치기
1803년 야롱 (Gia Long)왕이 제위에 오를 때까지300여년간 광찌는 행정구역상 진(dinh/鎭)이었는데, 1827년 진(trấn)으로, 1832년에는 성으로 승격했다. 그 후 프랑스 식민시기인 1890년 5월3일 Jules Georges Piquet 총독은 광찌성과 광빈성을 합쳐 빈찌성이라 명명했으며1906년2월 17일 Paul Beau 총독은 이곳에 광찌 행정시를 두기도 했다. 그 이후, 1954년 제네바 협정 당시 벤하이(Bến Hải)강을 사이에 두고 남부의 베트남공화국은 오늘날의 광찌성 중, Hải Lăng, Triệu Phong, Cam Lộ, Gio Linh, Hướng Hóa현, Vĩnh Liêm읍 , Vĩnh Sơn(Vĩnh Linh)읍 일부, 광찌 행정시등을 관리했으며, 북쪽의 베트남민주공화국은 빈린(Vĩnh Linh) 현 ¾을 관리하기로 했다. 1976년3월 부터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은 국회에서 광찌(Quảng Trị)성, 광빈(Quảng Bình)성, 트어티엔후에(Thừa Thiên-Huế )성, 빈린(Vĩnh Linh)구역을 합쳐 빈찌티엔(Bình Trị Thiên)성으로 명명했다. 하지만 1989년7월 빈찌티엔 성은 다시 광빈(Quảng Bình), 광찌(Quảng Trị), 트어티엔후에(Thừa Thiên-Huế) 등 세 개의 성으로 재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광찌성 관광 명소 TOP 10 >

끄어뚱 해변(Bãi biển Cửa Tùng)
끄어뚱(Cửa Tùng) 비치는 광찌성 빈린현, 빈광읍(Vĩnh Quang, huyện Vĩnh Linh, tỉnh Quảng Trị)에 있다. 동하(Đông Hà)시에서 출발해 1A국로와 70번 성로를 이용, 빈광읍(Vĩnh Quang)읍에 도착하면 바로 찾을 수 있다. 비취색 바다, 부드럽고 포근한 흰색 백사장은 여느 유명 비치 못지 않게 아름답다. 광찌성은 해초 생산지로도 유명한데, 10월에는 해초(rong biển)시즌에는 각종 신선한 해초을 구입하러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다.

꼰꼬섬(Đảo Cồn Cỏ)
끄어뚱(Cửa Tùng)해변에서 서쪽으로 잠시 걷다 보면 빈린(Vĩnh Linh) 바다 한가운데 보이는 아름다운 섬을 발견할 수 있다. 꼰꼬(Cồn Cỏ)란 이름을 가진 이 섬은 해발5-30m, 육지에서 30km 떨어져 있다. 이 섬은 월남전 당시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인 장소지만 현재는 교통, 숙박, 각종 편의시설 등 관광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관광객들이 제법 많이 찾아온다. Cồn Cỏ섬의 가장 큰 특징은, 원시 대자연 속의 아늑하고 평안한 느낌 그 자체다.

 

빈목 지하터널(Địa đạo Vịnh Mốc)
끄어뚱(Cửa Tùng) 해변에서 북쪽으로 7 km 떨어진 곳에 빈목(Vĩnh Mốc)지하터널이 있다. 이 터널은 월남전 당시 극렬한 저항이 있던 뼈아픈 장소로, 지난 1965년에 만들어졌다. 총 길이는 2,000m에 이르며, 월남전때 군인과 일반인이 함께 거주했다. 구조는 3층이며, 내부에는 생활이 가능한 다양한 용도의 방이 있다.이곳에 오면 살아있는 역사의 생생한 현장을 직접 두 눈으로 보며 자유와 독립이 얼마나 고귀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라방 성지(Thánh địa La Vang)
하이푸읍(xã Hải Phú) 에 위치한다. 라방(La Vang)성지는 해마다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방문하는 명소로, 라방(La Vang)이란 명칭은 천주교를 박해했던 따이선(Tây Sơn) 왕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은 왕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이곳으로 피신하곤 했는데, 새로운 신자가 들어오면 서로 큰 소리로 환영했고, 그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퍼진다 하여 라방이라 불리게 되었다.

 

광찌 고성(Thành cổ Quảng Trị)
광찌읍 2동(phường 2, thị xã Quảng Trị)에 위치한 광찌 고성은 끄어뚱 비치에서 1A 국로를 따라 동으로 2km 정도 가다 보면 나온다. 둘레2km, 높이는4m, 가량이며 월남전 당시 폭격으로 기존 시설의 대부분이 소실된 상태다. 한편 프랑스 식민통치 당시 이곳은 혁명전사(chiến sĩ cách mạng)들을 가두는 감옥으로 쓰였다. 이런 이유로 광찌 고성은 베트남 역사상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닌 특별한 장소로 보존되고 있다.

 

히엔릉교와 벤하이강
(Cầu Hiền Lương và sông Bến Hải)
벤하이(Bến Hải)강은 쯩선(Trường Sơn)산맥에서 발흥하여 100km를 굽이 굽이 흘러 끄어뚱(끄어뚱Cửa Tùng)해변에 이른다. 광찌(Quảng Trị)성의 자연경계선을 이루는 벤하이 강은, 후에(Huế)사람들에게 흥(Hương)강이 있고, 응에안(Nghệ An) 사람들에게 럼(Lam) 강이 있다면 광찌성 사람들에게는 벤하이(Bến Hải)강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이곳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 히엔릉(Hiền Lương)교는 지난 1928년 벤하이 강 위에 건설되었는데, 프랑스 식민통치 시절 항전장소로 유명해졌으며, 특히 1954년 제네바 협정 당시 벤하이(Bến Hải)강과 히엔릉(Hiền Lương)교에서 정전선언을 한 바 있다.

 

번끼우 부족
(Bản dân tộc Vân Kiều)
번끼우 부족이 사는 싸랑(Xa Lăng), 크루(Klu) 지역으로, 과거 미군과의 항쟁기 당시 가장 용맹하게 싸웠던 소수 부족마을이다. 이곳에 오면 다양한 유적지와 함께 이들의 소박하고 흥미로운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다.

 

라오바오 국경관문
(Cửa khẩu Lao Bảo)
라오바오(Lao Bảo)관문은 흥호아(Hướng Hóa)현에 위치하며, 베트남과 라오스 사이를 오가는 주요 국경관문이다. 이 곳은 양 지역간에 무역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장소로 연일 수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이곳에 오면 라오스로 가기가 수월할 뿐만 아니라 태국산 질좋은 물건들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다. 한편 이곳 라오바이에서 라오스의 Savanakhet 성으로 건너가면 라오스의 아름다운 경관과 유명 사찰들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쯩선 열사 묘지
(Nghĩa trang liệt sĩ Trường Sơn)
요린현, 빈쯩읍(Vĩnh Trường, huyện Gio Linh)에 있다. 동하(Đông Hà)시에서 북으로 38km 떨어진 이곳은 월남전 당시 미군의 폭격이 극심했던 지역으로, 당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쯩선(Trường Sơn)묘지는 전국에서 가장 큰 국립묘지로, 크기가 106ha에 이른다. 전설의 호찌민로(đường mòn Hồ Chí Minh huyền thoại)를 지키기 위해 순교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많이 뭍혀 있으며, 묘소 한 가운데는 높이 32,4m의 기념상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 오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내던졌던 수많은 애국열사들의 열정이 느껴진다.

 

캐산(Khe Sanh)
동하(Đông Hà) 시에서 서쪽으로 63km떨어진 흥호아 현에 있다. 베트남 역사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캐산(Khe Sanh)은1968년과 1971년,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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