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July 13,Monday

발가락이 닮았다

6월 1일은 ‘국제 어린이날(International Children’s Day)’ 이었습니다. 5월 5일만을 어린이날로 기억하다 베트남에서 처음 알게 된 국제 어린이날은 국제 여성의 날 만큼이나 생소한 기념일이었습니다. 어린이와 여성에 대한 관심의 필요가 이 날을 있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린이와 여성의 권익이 신장된 탓에 거꾸로 남성을 위한 날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니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국제 어린이날은 1925년 제네바에서 있었던 ‘아동 복지를 위한 세계 회의(World Conference for the Well-being of Children)’에서 정해졌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여러 나라들이 6월 1일을 어린이날로 지내게 되었다고 하지요. 특별히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 진영의 국가들이 이 날을 국가 어린이날로 지키다 보니 정한 주체에 대한 오해가 있기도 하답니다. 그런데 UN과 유네스코에서도 1954년에 ‘세계 어린이날(Universal Children’s Day)’을 11월 20일로 정해 기념일로 삼았다 하니 좀 어리둥절하네요.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따로 날을 정한 국가들도 여럿 있다고 하니 헷갈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명칭이 어쨌든, 날짜가 어찌 되었든 의미는 대동소이합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이날을 기념해 초등학생 이하의 자녀를 둔 직원에게 작은 선물을 전달해 왔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좀 특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보다도 부모들이 더 고생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참 COVID-19로 사회 격리가 강화되고 학교 등교는 물론 학원이나 외부 생활이 허락되지 않던 무렵, 집에 꼼짝없이 갇혀 있던 엄마와 아이 사이의 긴장관계(?)를 표현했던 내용을 SNS를 통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아이에게 어머니가 생활계획표를 짜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아이가 마지막에 이런 주의사항을 적었습니다. 엄마 말 안들으면 피가 ‘코로 나’-온다. COVID-19의 심각한 상황을 희화 했다고 비난하는 분도 있겠지만 잠시 시름을 잊고 웃게 만든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모두들 등교를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금방 자랍니다. 언제 크는가 싶지만 잠시 눈길을 놓쳤다가 돌아보면 훌쩍 커버린 자식을 발견하게 되니까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인생의 큰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동의하는 것이 그런 기쁨을 주는 자식이라도 항상 내 맘 같이 자라주지는 않는다는 것일 겁니다.
아기였던 자녀가 이젠 제법 컷구나 느끼는 것은 부모에게 하는 질문이 늘어갈 때 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가끔씩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요. 거기에 더해 자의식이 성장하는 예닐곱 살이 되면 행동을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오죽했으면 미운 일곱 살이라는 말도 있을까요. 아, 요즘은 미운 다섯 살이라지요? 그럴 때 저 녀석은 누굴 닮아 저렇게 다를까 하는 부모들의 얘기를 듣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자식을 키우면서 그런 경험이 있으시지요?
그런데 어린 자녀와 다니면 때로는 생각해 보지 못한 질문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 회사 주재원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질문을 했습니다. 아마도 아파트 단지 내에 이민족, 저 민족 섞여 사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었는가 봅니다.
“아빠, 왜 저 아저씨는 얼굴이 까매?”
햇볕에 그을려서 탄 게 아니라는 건 아시겠죠? 아이에게 피부색이 다른 것은 차이의 요소가 아니라 신기함 그 자체였나 봅니다. 반대로 그 흑인아저씨의 자녀라면 이렇게 질문했을 것입니다.
“아빠, 왜 이 나라에는 얼굴이 허연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그런 아이가 요즘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배운 지 얼마 안되는데 서양 사람만 마주치면 얘기하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른답니다. 아이가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서양 사람이 있었답니다. 아빠를 흠칫 쳐다본 아이, 바로 서양인에게 유치원에서 갈고 닦은 필살의 한마디를 던졌답니다.
“헬로~.”
아빠는 아이의 진보에 흡족했습니다. 그리고 짐짓 다음 말을 뭐라 할까 기다렸지요. “….”
침묵. 예, 대화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섯 살 어린이에게 또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그래도 그 서양인은 어린 아이가 인사를 하니 웃으며 잘 받아 주었다지요. 아이 아빠는 말합니다.
“얘가 기회만 나면 영어를 하고 싶어 해요. 그래 봐야 헬로, 굿모닝, 아이앰어보이 이지만요. 저랑 정말 달라요.”
벌써 이십 년을 함께 일해 그를 속속들이 잘 아는 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습니다.
“그러게. 아이가 참 똑똑하네. 엄마 닮았나 봐?”
잽을 한방 먹인 거지요. 볼을 살짝 씰룩인 직원이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고 싱글거리며 대답합니다.
“맞아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우리 직원도 내공이 쌓여서 그 정도 공격에는 흔들리지 않는가 봅니다.
그래요, 참 신기한 일입니다. 아이는 부모를 닮습니다. 얼굴 생김새가 그렇고 성격의 어떤 모양이 그렇고 그것도 아니라면 발가락이라도 그렇습니다. 한국에 살 때 우리 이웃에 지독한 장난꾸러기 아들을 둔 부부가 있었습니다. 제 아들이 나이도 같아 서로 잘 어울렸던 이웃이었죠. 그들이 해 준 얘기입니다.
“시댁에 갔는데 아이가 정신없이 장난을 치고 말썽을 부리는 거예요. 시부모님 보기 죄송해서 혼을 냈죠. 그랬더니 시어머니께서 말리시는 거예요. 하시는 말씀이, 그만 혼 내거라. 얘 애비는 더했다, 더했어.”
옆에서 잰 누굴 닮아 그런지 모른다고 짐짓 화난 표정으로 엄마를 거들며 아이를 훈계하던 아빠가 갑자기 무안해 졌겠죠. 조용히 헛기침을 하고 돌아 서더니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더랍니다. 엄마는 신기했죠. 아이 아빠에게서 그런 개구장이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테이니까요. 유전자의 힘은 놀랍고 신비합니다.

어린이날에 잠시 군에 간 아들을 생각했습니다. 좀 우습더라고요. 어린 시절의 귀여운 모습은 젖 살과 더불어 몽땅 빠져 버렸는데 그래도 군에서 보내준 사진으로 보는 아들의 모습에는 아이 때의 그것이 그대로 남아 있네요. 군 생활이나 잘 할라나 아직도 걱정입니다만 그게 부모 마음인가 봅니다. 그래도 절 닮아서 잘 하겠지요? 너무 찡그리지 마십시오, 여러분.
지금 아이가 곁에 있어요? 때론 우리를 기쁘게 하고 때론 속을 썩일 대로 썩이는 그 아이,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런 가요? 거울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夢先生

박지훈
건축가(Ph.D),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베트남현지법인 대표(법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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