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December 2,Wednesday

차카게 살자

‘바른 저울을 가지고 사는 것’
무게를 속이지 않고 거래하는 것,
다른 이와의 관계에 있어 옳다고 하는 일을
말하고 행하는 것이 착하게 사는 것 아닐까

A사의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책임자인 B팀장과 전체 팀이 함께 인사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한국인들이 만나면 으레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신상조사 같은 거지요. 고향은 어디인지, 출신학교는 어디인지, 어떤 회사에서 이력을 밟아왔는지 같은 질문들입니다. 한국 사회가 연고를 중시하는 사회이다 보니 첫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피해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상대를 대할 때 제일 먼저 표시나는 것이 억양입니다. 그래도 저는 티가 잘 나지 않는 경우입니다. 오리지널 충북 출신이지만 대개 서울 아니면 경기지역으로 압니다. 사투리를 쓰지 않고 억양이 평이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도 고향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그려, 아녀를 대차게 반복하는 충청도 사람입니다.
고향이 맞으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계속 연결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가운데 어디선가 합일점이 생깁니다. 둘 사이가 아니더라도 한 다리 건너 친구가, 선배나 후배가 서로의 연결고리가 되기도 합니다. 거기 출신이에요? 아, 그 친구요? 나도 알죠. 하며 시작하는 과거의 기억들은 서로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데 위력을 발휘합니다.
아무 것도 겹치는 게 없으면 나이와 학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시기가 한국의 격변기이다 보니 비슷한 시기를 살아낸 사람들에게는 할 말이 많게 됩니다. 또 남자들이라면 군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군대는 아주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지금도 입대하는 꿈을 꾼다는 사십대의 후배 얘기를 듣게 되니 군대란 남자들에게 참 강렬한 기억 덩어리입니다. 비슷한 업종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직장에서 연결고리가 생기곤 합니다. 교민 사회에서 사람을 만나 보면 상대방과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내 친구 또는 전 직장 동료를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성을 가지고 연관성을 찾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성과 돌림자를 보고 항렬을 찾아 내가 아저씨뻘이네 하며 따지는 경우는 확실히 줄었습니다. 좋은 이름을 자녀에게 주고 싶은 부모 마음에 돌림자를 선호하지 않다 보니 같은 성씨, 같은 본이라도 이름을 보고 관계성을 유추하기가 어려워져 갑니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서도 피해야할 규칙이 있습니다. 다 알 듯이 정치성향이나 종교관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은 금물입니다. 술 몇 잔에 핏대 좀 올렸다가 어렵게 만든 자리가 더욱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연고 찾기를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첫만남에 관심사를 나누고 서먹함을 지우는데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요. 이른바 동류의식을 갖게 되는 거지요.

한국사람의 삶은 복잡합니다. 짧은 시기 동안 이룬 성장의 후유증은 불가피했습니다. 그 대가로 겪은 계층의 대립과 가치의 붕괴, 구조의 재구축 등 사회의 변화는 모두의 삶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그러니 한국 사람들은 개인의 배경을 이루는 나이, 가족, 고향, 학교, 군대, 직장, 이 모든 것에 강한 흔적을 갖고 살게 되나 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첫 자리의 연고 찾기는 시대가 준 흔적과 상처를 내어 보이는 과정,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고 위로 받는 절차가 아닐까 하고 잠시 생각해 봅니다.

B팀장과의 대화도 그랬습니다. 서로 억양이 다르니 고향은 패스.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그와 내가 대뜸 회사로 인해 연결이 되었습니다. 한 회사에 근무해서가 아니라 같은 시기에 만났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런 것입니다. B팀장은 2천년대 초반 베트남에서 내가 아는 어떤 분과 근무하다 국내로 복귀했고, 오랜 시간을 격해 다시 호찌민에 부임하여 그분과 재회하였습니다. 당연히 반가움으로 찾아가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B팀장이 만난 그 사람이 바로 제가 90년대 초 베트남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던 건설사의 담당이었고 호찌민에서 일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해 준 분이기도 했습니다. 아무 것도 공통점이 없던 우리가 각각 다른 시기에 같은 사람과 호찌민에서 함께 한 인연이 있게 된 거지요. B팀장은 그분을 만난 후 자신의 프로젝트를 얘기했고, 당연히 그 수행 책임자가 저였으니 저에 대해 묻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문득 섬찟 했습니다. 그분이 저에 대해 뭐라고 평했을까요? 그 자리가 기쁘고 즐겁게 마무리된 것으로 보아 감사하게도 제 나쁜 모습은 감추어 주셨던 것이 확실합니다.
B팀장과의 만남을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착하게 살자.’
그런데 이렇게 쓰니까 맨숭맨숭 합니다. 오래 전 한국에서 근육질의 건장한 아저씨를 만났는데 그 아저씨의 내 두배쯤 되는 팔뚝에 새겨진 좌우명으로 대신하는 것이 느낌이 확실합니다. ‘차카게 살자.’

사람의 본성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착하다느니(성선설) 또는 악하다느니(성악설), 그런데 근본에 관한 모든 견해를 떠나서 사람들은 착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아, 착하게 산다는 것이 속 없는 순둥이로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건 모두 아실 것입니다. 가끔 약한 것과 착한 것을 혼돈하는 경우가 있으니 제가 말하고자 하는 착하게 산다는 것은 ‘바른 저울을 가지고 사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게를 속이지 않고 거래하는 것, 바꿔 말하면 다른 이와의 관계에 있어 옳다고 하는 일을 말하고 행하는 것이 착하게 사는 것 아닐까 합니다. 그러므로 착한 것은 타인과인 관계성에서 드러납니다. 평판이 중요한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자기를 보는 거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교민사회가 아무리 10만을 넘네, 15만이네 해도 작은 사회입니다. 거짓 정보들도 돌아다니지만 숨어서 하는 일도 드러나는 곳이 이 곳입니다. 누구누구에 대해 알려 들면 금방 정보들이 모입니다. 개인사는 말할 것도 없고 사업 상 관계의 흉허물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가끔 걱정이 됩니다. 제 인격의 못남을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드러내지 않고 수면 아래 음지에서 살고 싶었는데 씬짜오베트남에 칼럼을 쓰며 이름을 걸어 놓은 지가 벌써 2년 가까이 됩니다. 앞뒤가 안 맞는 거지요. 그런 마음이니 이 글들이 저 자신에게 어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지 항상 두려움을 품고 쓴다면 믿으실런지요? 그래서 다시 한번 되뇌입니다. 기왕 양지로 나와 활동하는 바에야 정말 ‘차카게’ 살아야겠다고 말입니다. /夢先生

박지훈
건축가(Ph.D),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베트남현지법인 대표(법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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