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ly 29,Thursday

연말소회

Dec 17. 2014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을 축하 드립니다.
“하늘에는 영광이 땅에는 평화가”
그리고 모든 인류의 가슴에 따뜻한 사랑을 담아주소서.

성탄절은 물론 기독교의 명절이지만 이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종교와는 관계없이 모든 가족이 모여 서로의 안부와 사랑을 확인하고 가까운 이웃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더불어 사는 세상의 환희를 만끽하는 날이다. 또한 가족이 더욱 그리운 연말에 함께 온기를 나눌 사람도 없이 빈곤하고 우울한 시간을 보내야하는 불우한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는 날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강림은 인류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류 최대의 사건이다. 고작 12명의 제자를 가르치신 예수의 존재로 말미암아 인류가 구원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접어두더라도, 예수라는 신의 아들의 등장은 인류가 존재한 이후 나타난 어떤 인물이나 물건, 발명품보다 훨씬 깊고 막중한 영향력을 인류에게 미쳤다.
세상의 어떤 위대한 영웅이라해도 한 시대가 지나고 자신의 삶이 종막을 고하고 나면 그가 가진 모든 권력은 그야말로 모래성이 되어버리고 말지만 예수의 등장은 경우가 다르다. 그는 인류 역사의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곳에서 고작 3년여의 활동으로 12제자를 양성한 것이 그가 인간사에서 행한 행적이지만 3년간의 활동으로 그의 생후 2천년이 넘도록 그는 거의 모든 인류에게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역사, 과학, 생활 등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고 앞으로도 더욱더 그럴 것이다.
좀 냉정한 시각으로 본다면 종교의 힘이 너무 비대해지는 바람에 종교는 이제 대화를 통한 조종이나 타협이 불가능한 절대 성역으로 남아서,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삶의 규범이자 가르침으로 우리 인류의 정신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지만 그 막강함으로 인한 부작용 역시 가지고 있는 힘만큼이나 크고 엄청나다.

얼마전 읽은 일본의 유명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십자군 전쟁에서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종교적 살상이 얼마나 허무 맹랑한 이유로 일어났고 그것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신의 이름으로 사라졌는지 그 살상의 흔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종교를 정치의 수단으로 사용하면 그 결과가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너무나 비극적인 역사가 그곳에 있었다. 실제로 현재 일어나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갈등과 전쟁은 종교로 인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인류는 신의 높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뜻에서 성탄절은 누구에게나 모두 즐거운 날이지만 예수 탄생에 담긴 신의 의도를 깨닫지 못한다면 인류의 평화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 종교로 인한 각종 갈등과 문제들은 앞으로 우리 후손에게 적잖은 숙제거리를 남겨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렇게 갈등만 겪다가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언젠가 우리도 신의 존재와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는 날, 하늘에는 영광이, 땅에는 평화의 축복이 내려 인류는 영원한 평화를 누릴 것이라 믿고 기다려 보자.

동방박사님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와 같이 난해하고 관념적인 그림말고 좀더 구체적인 것으로 이해가 쉬운 예언을 보여줄 수는 없었는가요?

인간은 시간이라는 한정된 틀에 갖혀사는데 어떤 신도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우리 영혼을 구원해 줄지 밝히지 않는다. 그저 수양하고 준비하고 기다리라고만 한다. 진정 신의 계시는 우리 의식 영역 밖의 진리인가?

연말이 되면 항상 이 모양이다.
언제나 시간과 대치한다. 연말은 우리에게 또 다른 매듭을 접어주곤 한다. 시간의 매듭이다.
아, 벌써 연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 순간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올 한해 나는 무엇을 하며 보냈는가 그리고 내년에는 또 어떤 삶을 살 것인가?

<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리 될 줄 알았다, I kno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고 호사스런 비문을 남긴 버나드 쇼처럼 세상을 접으면서도 넘치는 유머가 담긴 시니컬한 한마디로 자신의 삶을 자신 있게 내세우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먼 훗날 가끔 내 아이들이 나를 아버지, 할아버지로 기억해 줄 수 있는 뭔가 작은 메시지라도 남겨두는 일과, 그 동안 살아오며 알게 모르게 받은 가족과 이웃들의 수많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일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올해의 화두를 봉사로 맞추고 새해 빗장을 열어 볼 수 있다면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모습으로 제법 설레는 손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Dec 18, 2014

성탄절과 연말이 함께 있다는 것도 참 절묘한 조화다 싶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면,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각자 고단한 세상살이에 쫓기며 살아오던 우리에게도 남모를 미소가 피어납니다. 노란 은행잎을 날려보내던 가을 바람에 차고 건조한 초겨울 냉기가 스며들고 마지막 잎새마저 가을비 한 자락의 바람에 사라질 때가 되면, 거리에는 성탄절 장식과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려오기 시작하고, 그때마다 고향을 그리는 조급한 마음은 한달음에 반가운 부모님의 옆으로 달려가곤 합니다.
하루도 자식 생각에 편할 날이 없었던 부모님들, 늘 떨어져 있기에 더욱 궁금하고 보고픈 자식 아이들, 지난 한해 동안 조용히 가슴 한 곁에만 담아둔 자식에 대한 은근한 그리움이 공연히 남세스러워, 표정 관리조차 어려운 부모님들은 입을 귀 밑에 걸어두고 먼 길을 달려온 아들 딸 내외와 손자 손녀들을 맞이합니다.

두 팔을 활짝 벌이고 할아버지 품으로 달려드는 손자 녀석의 저돌적 공세가 골다공증으로 쑤셔대는 무릎에 싸한 통증을 더해주지만, 이놈의 다리 부러지면 어떠랴, “그래 잘 왔다. 고생했지” 하늘 높이 손자녀석을 들어올리며 그의 순진무구한 미소 속에서 가족의 귀중함을 새삼 되새겨 봅니다.
작년만 해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손자 녀석이 이제는 정신 없이 쏘다니면 온갖 말썽을 다 피웁니다. 그 옆에서 아이의 모습에 사랑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이젠 귀밑머리에 세치가 늘어가는 아들애의 모습에서 엄정한 시간의 무상함을 새삼 느껴봅니다.

“그래 올해는 어떠했냐?”
“뭐, 그냥 그래요. 내년에는 좀 더 나아 지겠죠”
“그려 자식아이들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면 됐다. 그만하면 넘치는 축복 아니겠냐?”

“예, 저희야 앞으로 잘 살면 되죠. 아버지 어머님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내시면서 저희를 지켜주십시오. 나중에 저희 아이들이 이 곳에 올 때마다 맞아주신 아버님, 어머님의 자상하신 미소를 평생 행복한 기억으로 품고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맞습니다. 가족의 사랑과 미소를 아름다운 기억으로 담고 살아가는 아이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요?
이번 연말에는 이런 속 깊은 사랑의 대화가 댁내 가정에서 무럭무럭 피어 오르기를 기원합니다.

작성자 : 한 영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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