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6,Friday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오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 베토벤의 “운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누구나 귀에 익은 첫 소절 네 음절은 아마도 클래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유명한 소절입니다. 해서 베토벤의 운명은 클래식의 대명사 처럼 불리우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베토벤의 운명(Symphony No.5 in C minor op.67)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804년, 베토벤에게 필생의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요제피네 폰 다임입니다. 그녀는 원래 헝가리의 귀족인 브룬스빅 가문의 둘째 딸로서, 1799년 봄부터 비엔나에 체류하면서 언니 테레제와 함께 베토벤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 그들 자매와 베토벤은 ‘생명이 다할 때까지 지속될 마음의 우정’을 맺기도 했습니다.

1799년 여름, 요제피네는 어머니의 결정에 따라 27세 연상의 요제프 다임 백작과 결혼식을 올리고 비엔나에 정착했으며, 이후 ‘다임 백작부인’으로서 네 명의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녀는 꾸준히 피아노 레슨을 받고 때때로 집에서 음악회를 개최하면서 베토벤과의 인연을 이어 나갔는데, 한편으론 문학과 음악에 별 관심이 없는 남편 밑에서 외롭고 불행했습니다. 더구나 집안의 경제사정은 갈수록 악화되었고, 급기야 1804년 1월에는 남편이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꽃다운 20대 중반의 나이에 미망인이 되어 경제적 곤궁에다 신경쇠약에까지 시달리고 있었던 요제피네에게 위로의 손길을 뻗친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었습니다. 이제 우정은 연정으로 발전했고, 두 사람은 1804년 가을부터 한동안 연인 관계로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애초부터 오래 지속되지 못할 운명이었습니다. 요제피네가 귀족이었던 데 비해 베토벤은 평민이었고, 만일 베토벤과 결혼하게 되면 요제피네는 법에 따라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을 상실하게 될 처지였습니다. 또 베토벤은 예나 지금이나 앞날이 불투명한 ‘음악가’라는 직업에 몸담고 있었고, 치명적인 청각이상에 시달리고 있기까지 했습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요제피네의 고민도 깊어졌고 베토벤의 호소는 절박해졌습니다. 그러나 결국 요제피네는 집안사람들의 반대에 굴복하고 맙니다. 1807년이 저물어갈 즈음 그녀는 베토벤에게 결별을 선언했고, 그 후 두 사람의 사이는 소원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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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작곡 되었던 작품이 바로 “운명” 교향곡 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토벤의 가장 성공적이고 상징적인 역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그런데 때때로 이 교향곡의 표제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운명’ 이라는 호칭은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은 아닙니다. 엄밀히 말해서 ‘운명’은 그저 별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별명은 베토벤의 후년에 비서 노릇을 했던 안톤 신틀러의 증언에서 유래했는데, 그가 곡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유명한 ‘4음 모티브’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이냐고 물었을 때 베토벤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신틀러의 여러 증언이나 주장들이 후대에 와서 거짓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이 증언도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이 곡을 ‘운명 교향곡’이라고 부릅니다. 거기에는 편의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 곡이 ‘어둠과 고난을 헤치고 광명과 환희로!’라는 베토벤 고유의 모토를 다른 어떤 곡보다도 명료하게, 효과적으로 응축해서 구현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첫 악장에는 일평생 청각장애, 신분의 장벽, 정치적 격변기의 혼란 등을 겪으며 숱한 역경과 맞서 싸워야 했던 베토벤의 처절한 투쟁상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듯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한 편의 교향곡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원래 이 작품이 ‘영웅 교향곡’의 바로 다음 작품으로 구상되었습니다. 전작이 ‘이상적 영웅상’ 혹은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의지’를 펼쳐 보인 것이라면, 이 ‘운명 교향곡’은 그 이상을 향한 인간의 투쟁과 고뇌, 그리고 궁극적 성취 과정을 형상화한 음악적 드라마라고 볼 수 있지 않을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한 편의 교향곡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작품에 담긴 베토벤의 정신이나 주제의식을 논하는 것에 못지않게, 그 순수한 음악적 측면을 주시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상상을 초월하는 리듬의 응집력, 주제 재료의 경제성(‘운명의 동기’로 대변되는), 진취성과 혁신성 (제1악장 중간의 절묘한 오보에 카덴차, 제3악장에서 콘트라베이스가 빚어내는 효과, 관악 파트에 피콜로와 콘트라파곳을 추가한 것, 피날레에서 트롬본을 등장시킨 것, 스케르쪼 악장의 주제를 피날레 악장에서 다시 등장시킨 것 외) 등을 두루 살펴야만 비로소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과 가치를 온전히 느낄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다시 우리가 흔이 들었던 베토벤의 “운명”을 들으시면서 새로운 느낌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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