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July 23,Tuesday

경기의 규칙

과연 이 작은 시장의 규모에서 설계기업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까?
낮은 진입장벽으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소규모 회사들과 경쟁이 가능할까?
그것을 이겨 나갔다 해도 낮은 현지 단가와 베트남 대형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어떤 경기이든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같은 조건에서 겨루게 함으로써 공정함을 기하기 위함이다. 골프에는 그에 합당한 규칙이 있고 권투경기에는 그 경기에 적합한 규칙이 있으므로 각각의 선수들은 그 규칙을 익히고 규칙이 제한하는 범위 내에서 경쟁을 하면 될 일이다.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사업에도 경기와 유사한 규칙들이 있다. 서로의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위해 담합을 규제하거나 독과점 방지를 위한 법을 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규칙의 적용이 애매한 경우가 있다. 종목이 다른 선수들이 한 경기를 치를 때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일본 도쿄에서 치루어진 세기의 경기라 했던 무하마드 알리와 안토니오 이노끼의 경기를 기억하는 분도 있겠다. 알리는 미국의 헤비급 챔피언인 권투 선수였고 이노끼는 일본의 유명한 프로레슬러였다. 1976년 9월의 일이다. 그러나 차려진 밥상만 화려했지 경기는 지루하고 싱거워서 한마디로 밥 맛이었다. 결과도 3:3 무승부로 판정이 났다.
나중에 밝혀진 내용이지만 경기를 재미없게 만든 것은 이 경기를 위해 별도로 적용된 규칙 때문이었다고 한다. 시합을 며칠 앞두고 쌍방에 적용된 규칙에 의하면 보다 행동이 자유롭고 전신을 무기로 쓸 수 있던 이노끼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제약이 있었다. 던지기 기술이나 태클 기술 등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대에게 킥을 날릴 수 있는 것도 바닥에 한쪽 무릎이 닿아 있는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는 조항도 있었다. 결국 이 경기는 복싱도 레슬링도 아닌 이상한 것이 되어 버렸다. 주먹으로 상대를 쓰러뜨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알리는 거리를 유지하기에 바빴고 레슬링 기술을 쓸 수 없던 이노끼는 경기 내내 누운 채로 알리를 상대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경기에 전적으로 권투 경기의 룰을 적용하였다면 어떠했을까? 서서 펀치로만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이노끼에게 알리의 턱은 너무나 멀게 느껴질 것이다.
레슬링의 룰을 적용한다면 알리의 몸이 링 밖으로 날려 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러니 어느 쪽이 되었든 이 경기는 처음부터 서로 맞지 않는 경기였다. 이상한 규칙이 적용된 것은 그 와중의 고육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경쟁을 하는 우리에게도 이런 경기의 규칙이 있다.

베트남에 현지법인을 세워 설계 및 감리업무를 수행하는 우리와 같은 기업을 가리키는 베트남어 표현은 ‘Công ty Tư vấn Thiết kế và Xây dựng’이다. 프로젝트 자문, 설계 및 건설이란 의미인데 여기서는 영어로 간단하게 ‘Consultancy’로 통용된다. 그런데 의미가 불분명하다. 설계회사라 하면 ‘Architectural Design company’라고 하는 게 분명할 듯한데 어디를 찾아봐도 그와 유사한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설계회사가 건설행위를 할 수 있는 것도 이상하다. 그럼 이들이 쓰는 ‘Consultancy’의 실체가 무엇일까? 짧지 않은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이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설계회사라면 설계와 감리지식을 가지고 특정 산업의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데 반해 베트남에서는 유관업무까지 관계할 수 있도록 폭넓게 허용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설계사무소가 건설행위를 할 수도 있고 반대로 건설사가 설계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이라면 허용되지 않는 구조이다. 또 총체적인 사업을 자문할 수 있으니 PM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개념으로 세운 설계사무소는 그 업을 함에 있어 베트남 회사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부분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 어느 경우가 옳다는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의 관습을 따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경기를 위해 링에 올랐다 치자. 상대인 베트남선수가 왜소해 보이니 한국에서 갈고 닦은 권투 실력을 발휘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싶다. 1라운드는 탐색전이었다. 잽을 던져 가면서 상대의 반응을 본다. 생각보다 쉽게 풀릴 듯하다. 그럼 2라운드부터는 적극적인 대시를 시작한다. 3라운드에는 장기인 연속 스트레이트 펀치를 상대의 안면에 가격하기 위해 부지런히 상대를 몰아가기 시작한다. 내심 미소가 지어진다. 승기를 잡았다! 이런데 이건 왠 걸? 상대를 눕히겠다 작정한 4라운드에 들어서니 갑자기 상대의 무릎이 올라온다. 팔꿈치가 내 등을 찍는다. 이건 반칙 아닌가? 물론 반칙이다. 한국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정당하다. 경기의 규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숙제였던 ‘Consultancy’의 해석을 이렇게 내렸다. 현지기업으로 지속성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한 우리 회사 같은 경우에 그들과 같은 룰에 따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은 자명하다. 그것이 상호 간에 공정한 일이다. 그래서 설명한 링에서의 경기와 같은 비유로 성장의 단계를 정리했다. 최초의 탐색기, 그 다음의 성장기, 성장기에는 우리가 가장 잘 하는 것, 스트레이트이면 스트레이트, 어퍼컷이면 어퍼컷을 주무기로 하여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일정 수준이 되어 다른 베트남 회사와 경쟁할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상대의 링에서 상대의 규칙에 따라 본격적인 경기를 벌일 준비를 하는 것이다. 발을 써야 하면 발을, 팔꿈치를 써야 한다면 팔꿈치를 단련해야 한다. 이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경영학에서는 사업다각화라는 용어로 이를 설명하기도 한다. 나는 경영학을 배우지 않았으니 필드에서 깨달은 링 안의 게임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

내가 아는 회사 중에 이십여 년간 본업에 충실해 있다가 몇년전 식음업에 뛰어든 회사가 있다. 혹자는 그 회사를 비난한다. 사업이 잘안되니 음식장사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그 회사의 준비과정을 잠시 본 적이 있다. 남들이 말하는 그 음식장사를 위해 약 이년 간의 준비기간을 거쳤고 정식을 F&B회사를 만들고 투자신고를 하였다. 직원들은 회사의 직원으로서 소속감을 가지고 일한다. 그럼 단순히 음식을 파는 일이라 말하기 어려워진다. 그 회사 사장의 말을 들어보니 자기들의 본업에 대해 베트남 기업과의 경쟁력에서 밀려날 것이 확실하다는 예측 하에 시작한 사업이었다. 회사로서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였던 셈이다. 물론 본업을 병행하고 있으니 일종의 사업 다각화라 할 만하다. 나는 그 회사가 베트남에서 치르는 경기의 규칙에 적응하기 위해, 그리고 이겨 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가 성공할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우리도 이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과연 이 작은 시장의 규모에서 설계기업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까? 낮은 진입장벽으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소규모 회사들과 경쟁이 가능할까? 그것을 이겨 나갔다 해도 낮은 현지 단가와 베트남 대형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들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주목하는 것이 저들과 벌이는 경기의 규칙이다. 지금까지는 한국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해왔으므로 한국의 룰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제는 다른 경기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 그들의 경기에서, 그들의 링에 올라 가, 그들의 룰에 따라 경기를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알리와 이노끼의 싸움이 시시하게 종결된 것은 그것이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리라면 우리는 글러브를 벗어 던져야 한다. 우리의 무릎을 꿇어 누워 대항하는 프로레슬러와 함께 뒹굴 각오를 해야 한다. 여러분이 일하는 곳에서는 어떠한지 궁금하다. 우리에게는 이제 4라운드의 공이 울렸다. /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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