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August 21,Wednesday

Carl Creny-‘체르니’, 그대는 누구인가?

우리들의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문 앞이나 동네 골목 어귀에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었던 피아노 학원. 지역에 따라 달랐지만 한 달에 몇 만원 정도였던 학원비에 별 문제가 없는 집안의 아이들은 방과 후 여지없이 그 피아노 학원으로 몰려갔었다. 우리들의 첫 교재 바이엘 ‘상권’과 ‘하권’을 완료하고 나면 피아노 선생님은 어김없이 체르니 30번을 내미셨다. 바이엘 치는 애들이 부러워하던 수준(^^)있는 애들의 ‘체르니 30번’, 그 수준있는 애들을 바로 쪼그라들게 만들던 대단한 ‘40번’, 있다고는 들어 보았으나 한번을 직접 보기 힘들던 더! 대단한 ‘50번’.^^

동갑내기 학원 친구들 사이에서 그 진도를 두고 은근히 견제하던 ‘체르니 연습곡’은 안타깝게도 피아노를 배우던 우리 모두들에게 지겹고 따분한 기억만을 안겨주고 말았다.
간혹 피아노 치기를 너무 좋아하던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곤 말이다. 그 뿐인가?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 아니었더라도 적어도 체르니 30번 정도는 마쳐야 피아노를 그만둘 수 있다는 엄마들의 엄포에 아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체르니와 씨름을 했었다. 그렇게 체르니는 따분했었다. 얼마 전 어느 분과의 대화중에 알게 된 사실은 많은 분들이 체르니를 단순히 피아노 교본의 이름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체르니는 피아노 교본의 이름이 아니라 음악가의 이름이다. 지구에서 가장 많이, 가장 오래도록 인정 받아온 한 음악 교육자의 이름이다.

무대 공포증 때문에? 아니 덕분에
정확히 말해 ‘카를 체르니(Carl Czerny, 1791~1857))’는 179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했다. 체르니의 아버지는 많은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던 피아노 교사였다. 일찌기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피아노를 가르친 아버지는 자신이 지도하던 그 어떤 제자들보다도 아들의 재능이 뛰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조기 교육에 돌입했고, 부친의 열혈 지도 덕분에 체르니는 아홉살이 되던 해에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데뷔 연주회를 갖게 되었다. ‘제 2의 모차르트’가 나왔다고 ‘빈’ 전체가 난리가 났다.

제대로 신이 난 체르니의 아버지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유명했던 음악가 ‘베토벤’을 찾아갔다. 피아노 건반 다루는 데 탁월함은 물론이요, 온순한 성품에 성실함이 돋보였던 10살짜리 소년 체르니는 베토벤의 마음을 금세 사로잡았다. 그로부터 4년동안 체르니는 베토벤 문하에서 피아노 연주와 작곡을 사사하게 되었다. 4년만에 그들의 인연이 끝났던 이유는 베토벤의 괴팍하고 자기중심적인 지도방식이 싫었던 체르니의 아버지가 아들을 집으로 데려와 버렸기 때문이다. 한참 관계가 틀어 졌던 두 사람.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화해를 하고 체르니는 다시 베토벤으로부터 음악을 사사하는 동시에 그의 악보를 정리하고 연주하는 등 친밀한 사제관계를 이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스승 베토벤은 체르니에게서 점점 이상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할 때면 사시나무 떨듯 떠는 체르니의 모습을 보며 ‘연주가로 롱런하기엔 무리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지만, 체르니는 두뇌가 명석하고 성실한 신동이었던 반면 무대 위에서 배포있게 기량을 발휘하는 끼많은 신동은 아니었던 것이다. 체르니의 ‘무대공포증’은 나날이 심해져 갔고, 너무 떨려서 발생하는 연주 실수에 대한 음악평론가들의 싸늘한 반응 때문에 체르니 자신은 점점 자신감이 사라져갔다. 그런 이유로 ‘제2의 모차르트’라는 수식어를 지녔던 체르니는 한창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20세의 나이에 연주가로서의 꿈을 접었다. 대신 체르니는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단번에 찾아내게 되었는데, 바로 ‘피아노 교육자’라는 옷이었다. 체르니에겐 옳은 선택이었던 같다. 이 세상 그 어떤 클래식 작곡가들보다도 오랜 시간동안 모래알같이 많은 수의 음악도들 손을 거쳐오며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게 되었으니까. 무엇으로? ‘체르니 연습곡 시리즈’ 로.

체르니의 <연습곡>에 대한 올바른 이해
체르니가 피아노 연습곡을 작곡하게 된 계기는 스승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효과적으로 잘 연주하기 위해서였다. 더 나아가 가르치는 것에 탁월했던 체르니는 자신의 제자들 기량 향상을 위해 연습곡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래서 체르니의 연습곡은 음악적 상상력 동원이 필요한 ‘감정적인 공부’보다는 실질적으로 손가락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교중심의 훈련’으로 채워져 있다. 즉 말 그대로 연<습>곡이다. 연<주>곡이 아니다. ‘기술’을 익혀서 ‘연주’에 도움을 주기 위해 체르니가 의도적으로 만든 기술 연마용 작품집인 것이다. 축구선수가 체력단련을 위해 타이어 끄는 운동을 하며 즐거워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손가락 테크닉 연마를 위해 설계된 체르니의 연습곡들이 엄청나게 재미있지 않은 건 정말 정말 당연하다.

체르니 연습곡의 종류는 엄청 많다. 예를 들면, <초보자를 위한 연습곡>, <스타카토와 레가토 주법을 위한 연습곡>, <왼손을 위한 연습곡>, <옥타브를 위한 연습곡>, <연탄 연주를 위한 연습곡>, <작은 손을 위한 연습곡>, <어린이를 위한 연습곡>, <살롱풍의 연습곡>, <젊은 주자를 위한 연습곡>, <빠른 속도를 위한 연습곡> 등등 이름도 목적도 실로 다양하다.

그 중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 전파된 체르니 시리즈 30•40•50번은 거의 한 세기동안 우리나라 국민의 대표 피아노 지침서처럼 사용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체르니가 연습곡을 작곡한 계기에 대해 조금 부연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19세기 유럽 피아노 음악의 중흥기에 선생으로서 명성이 대단했던 체르니는 본인의 뛰어난 제자들을 스파르타식으로 훈련시켜 극악의 테크닉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연습곡 시리즈를 작곡하게 되었다. 여기서 뛰어난 제자란, 1시간 짜리 피아노 독주회를 후딱 헤치우는 실력파 전문 연주자들을 말한다. 체르니 제자들의 기량은 당시 타의 추종을 불허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제자가 바로 헝가리 출신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이다. 악마적인 피아노 테크닉의 제왕 리스트를 훈련시키기 위해 작곡한 연습곡이라니… 그 연습곡을 우리가 ‘연습’한 거라니…
그렇다. 체르니 연습곡 악보에 명시된 템포 및 음악적 내용들을 엄격히 지키며 모든 음들을 제대로 연주하려면 엄청난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정확한 방법으로 오랫동안 연습해야 그 진가를 발휘할 그 어려운 연습곡을 우리들은 놀멘 놀멘 후르륵 친 다음 재미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친절한 유튜브에는 악보에 기재된 템포대로 연주되는 체르니 30, 40, 50번 음원이 있다. 관심있는 분들께 꼭 들어 보시기를 추천해 드리고 싶다. 듣다 보면,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 어떤 피아노 교육자의 교육서보다도 끈질기게 사랑받아 온 체르니의 ‘Secret’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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