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7,Saturday

문득 일상이

문득,
‘소소한 일상의 행복’ – 안나 마르르레테 키에르고르의 작품

문득 평온한 일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던가’하고 회상형으로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일상(日常)’이란 아침에 해가 뜨는 것처럼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입니다. 그것에는 다분히 따분하고 지루한, 익숙하여 전혀 새롭지 않은 그런 의미들이 담겨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곁에서 항상 함께 하던 일상을 그저 습관적으로 대하기만 했을 뿐 그다지 친근한 눈길 한번 준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일상이 사라졌습니다. 예고도 없이 쏟아지는 코로나-19 뉴스에 파묻혀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디론 가 떠나 버린 후였습니다.
얼마나 급했던지 짐은 여전히 그 자리에 둔 채였습니다. 일상이 머물던 자리에는 언제부터 인지 그를 대신해 우려와 걱정, 두려움들이 또아리를 틀고 머리를 곧추 세운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약속 장소로 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의 풍경을 보았습니다. 가게 문을 닫기엔 이른 시각인데도 셔터를 내린 상점들이 중간중간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진출했던 한 프랜차이즈 음식점도 문을 닫았습니다. 아마도 약속 장소까지는 금방 도착할 겁니다. 예전같이 길이 막히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만큼 차도 사람도 줄었습니다. 약속 시간에 이르게 도착한 터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옆에 있는 높은 타워 지하 쇼핑몰에 들렸습니다. 터~엉 비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한가했습니다. 작년 연말, 북적대던 이 곳의 활기가 거짓말처럼 느껴졌습니다. 평온했을 때에 일상이 지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복되는 하루가 갑갑하기도 했고요. 더구나 여기는 일년 내내 비슷한 기온, 비슷한 날씨, 비슷하게 생긴 오토바이들만 오락가락 하는 곳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일탈을 꿈꾸고 사건을 바라고 또는 혼자가 되는 자유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날이 소리없이 닥쳤을 때, 소문만으로 지날 것 같던 그 때가 현실이 되었을 때, 마음이 놀란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사건은 우리가 바라던 사건이 아니었고, 꿈 꾸던 자유는 격리라는 괴이한 형태로 강제적으로 주어졌습니다. 이미 끈을 놓친 삶은 바람에 방향을 잃은 풍선처럼 일탈의 세계를 헤매 다니게 되었습니다. 중국발 코로나-19가 끼친 영향은 경제에도, 산업에도, 그리고 그 외의 여러가지 측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겠지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앗아간 것이 가장 크게 끼친 영향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문득,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 곤고한 때로 인하여 지금껏 누린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지금이 없었다면 내게 주어진 일상의 단조로움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헛된 것을 꿈 꾸었을 테니까요.
또 이 모든 어려움이 지나고 났을 때 다시 돌아갈 일상이 있음에 다행입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이야기이지만 한 번 꺼내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째가 아버지에게 요구했지요. “아버지, 아버지 재산 중에서 내게 주실 몫을 먼저 주십시오.”
아버지가 재산을 나눠 주었습니다. 아들은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 많던 재산이 금방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궁핍한 날이 시작되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크게 흉년이 들었습니다. 귀한 몸 대접을 받던 그였지만 마침내 어느 사람에게 붙어 품을 팔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의 처지는 점점 더 궁핍 해져서 그 집안의 돼지를 쳐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매일을 주린 배를 가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지만 그마저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습니다.
‘내가 여기서 비참하게 굶어 죽는구나. 그런데 내가 떠났던 아버지 집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얼마나 양식이 풍족했던지. 차라리 아버지께 돌아가 용서를 비는 게 여기서 굶어 죽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는 고향으로 돌아 갑니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용서를 구하며 종 중의 하나로 살기를 청하는 둘째 아들의 모습, 그를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첫째의 이야기 등이 이어집니다. 어디선가 ‘돌아온 탕자’라는 제목으로 들어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둘째가 자기 몫의 유산을 미리 청하면서까지 탈출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그것이 일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가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곳, 아버지의 집이 바로 떠나고 싶어 하던 일상 자체였습니다. 그러므로 둘째가 타향에서의 삶을 통해 알게 된 것이 바로 우리가 누려온 일상의 가치가 아니었을까요? 성경에서 이 비유를 다룬 이유는 다른 곳에 있겠지만 지금은 일상으로의 귀환으로 읽히게 되네요.
돌아 갈 결심을 한 후에 둘째는 아마도 돌아갈 곳이 있음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 감사의 마음이 자신이 저지른 지난 날의 잘못을 빌고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 용기의 근원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돌아간다면 이제껏 그가 누렸던 지난 날의 일상을 감사함으로 다시 볼 수 있겠지요. 우리가 코로나-19로 인해 사라진 일상을 생각하며 그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됨에 감사하는 것과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일상이 있음으로 해서 감사할 수 있음과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꿈꿉니다. 그것을 감사하지 못했던 지난 날을 돌이키며 꿈을 꿉니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했던 과거였는지. 그 지루함이 얼마나 행복했던 것이었는지 하늘을 보며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며 언덕에 올라 고향 쪽 하늘을 바라보는 탕자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이 속히 다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회사원은 아침에 출근을 하고,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 말입니다.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손을 잡을 수 있는 일상, 입을 가린 아무 것도 없이 파안대소할 수 있는 일상, 출장을 위해 두려움 없이 비행기를 타고, 건너 자리에 앉은 사람의 기침을 걱정하지 않고 식사할 수 있는 일상, 저녁이면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는 사소한 즐거움이 있고, 주말이면 가족이 외식이라도 하는 그런 일상 말입니다. 그러한 별다를 것 없는 일들을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그 단순한 일상이 정말, 문득 그립습니다. 어서 그날이 오기를 감사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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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성균관대학교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축가이자 ‘몽선생의 서공잡기’, ‘크룩스크리스티’의 저자이며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했다.
현재 설계, CM전문회사인 정림건축의 베트남 법인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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