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6,Friday

중종의 말로와, 문정왕후

지난 이야기
500년 전 조선은 아주 뛰어난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뛰어난 정치가 혹은 학자들이 우수한 제도를 만들었으나 소인배 성리학자들은 현실보다 이념에 초점을 두었고 민생보다 기득권에 집착한 나머지 세계 흐름에서 낙후되어 갑니다. 조선이 망할 때까지 성리학을 고집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중종의 간접정치와 김안로
앞서 설명드린 것 처럼 중종은 신하를 통한 간접 정치를 많이 합니다. 즉위 초 반정 3대장 중 박원종을 선택하였고 조광조를 거쳐 기묘사화 3인방 중 권곤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중종 치세의 마지막 권력가 김안로가 나타납니다. 이렇듯 중종은 4명의 신하를 통하여 40년 치세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권력을 위임한 후 의심이 들면 제거합니다. 박원종과 권곤은 노환으로 죽지만 조광조와 김안로는 중종의 의심과 분노 때문에 죽습니다. 그렇지만 김안로는 조광조와 많이 다릅니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김안로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고 이야기를 진행 하겠습니다.
김안로는 25세 때 별시 문과에 장원 급제한 뛰어난 수재 입니다. 38세 기묘사화 때 조광조가 몰락하자 이조판서가 되어 조정의 요직에 등용 됩니다. 이조판서 시절 중종의 딸 효혜공주를 며느리로 맞아 중종과는 사돈이 됩니다. 당시 권력자 권곤은 “김안로는 뛰어난 머리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고 게다가 잔인한 성품을 함께 가지고 있어 김안로가 조정에 있으면 나라에 화가 미칠 것이다” 라고 예언 했는데 그말이 딱 맞아 떨어집니다. 김안로는 임금의 사돈이 되자 권력을 남용하다가 영의정 남곤 일파에게 탄핵을 당해 유배 생활을 합니다. 1530년 남곤이 죽자 김안로는 유배지에서 정치를 조종하여 1531년 50세 때 다시 등용 됩니다. 재 등용 후 중종의 신임을 받고 예조판서, 5위 도총관, 대제학 등 문 무 요직을 겸임하며 권력을 독점합니다.
김안로는 권력을 독점하자 동궁 (후에 인종) 보호를 구실로 자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제거하는데 회재 이언적 영의정 정광필 등 많은 사람들이 유배 또는 사사됩니다. 또한 대표적인 사건인 “작서의 변”을 일으켜 경빈 박씨와 그녀의 아들 복성군을 죽입니다. 이렇듯 김안로는 당시에는 없던 공작정치를 통해 정적들을 제거합니다. 가히 조선의 공작정치 창시자 입니다. 이렇게 못된 짓을 하던 김안로는 당시 중전이던 문정왕후와 대립하다 중전 폐비 기도 사건이 발각되어 1537년 유배 가서 곧 사약을 받습니다. 그의 나이 56세, 권력을 잡은 6년간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자기도 죽습니다.

중종의 치세를 살펴보면 반정으로 엉겁결에 즉위한 탓에 반정 3대장의 위세에 눌려 옥좌 보전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합니다. 반정 3대장이 죽은 후 자신의 의지로 조광조를 발탁하여 모든 권력을 몰아 줍니다. 지나치게 몰아준 권력 때문에 조광조를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자 중종은 위협을 느껴 조광조를 제거 합니다. 조광조는 조선을 개혁하고자 했으나 중종은 개혁보다 자신의 옥좌를 지키고 왕권 강화에 관심이 많아서 조광조와 갈등이 생긴 측면도 있습니다.
조광조 제거 후 남곤에게 의지한 중종은 비교적 순탄하게 옥좌를 지킵니다. 그러나 남곤이 죽고 새로 권력을 맡긴 김안로는 앞선 조광조 남곤과는 아주 다른 인물입니다. 결국 조광조를 제거할 때 처럼 기습적으로 김안로를 제거합니다. 아마도 김안로는 죽을 때 진정한 정치 고수는 중종이라 생각 했을 것 같습니다.

*참고사항 작서의 변 : 꼬리와 사지를 자르고 불에 타 죽은 쥐를 세자의 처소 앞 나무에 걸어 놓은 사건. 이 사건을 세자 저주 사건으로 확대합니다. 경빈 박씨와 그 아들 복성군은 범인으로 지목되어 유배가고 그 후 사약을 받고 모자가 함께 죽습니다. 후에 김안로가 아들 김희를 시켜 조작한 사건으로 밝혀 졌습니다. 김안로 공작정치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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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의 승하와 대윤과 소윤의 대두
중종은 죽을때까지 왕조유지, 자신의 임금 자리 유지, 아들에게 왕위 계승이라는 3대 목표를 달성하고 재위 39년 58세의 나이로 승하합니다. 그러나 주변의 위험 요소들을 방치하여 중종 사후 조선은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듭니다. 혼란의 원인이 되는 중종의 가계도를 살펴 봅시다. 중종의 첫번째 부인은 단경왕후 신씨 입니다. 그녀의 아버지 신수근은 연산군의 처남인데 중종 반정 때 처형되고 역적의 딸 신씨 역시 폐비되어 쫓겨납니다. 그 후 장경왕후 윤씨가 후궁에서 왕비로 승격 되는데 당시 권력자인 외삼촌 박원종의 지원이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장경왕후 윤씨는 중전이 된 9년 후 원자를 낳고 산후병으로 사망합니다. 나중에 장경왕후가 낳은 아들이 조선 12대 왕 인종 입니다.
인종이 태어나기 6년 전에 경빈 박씨가 중종의 첫번째 아들 복성군을 출산합니다. 단경왕후 신씨가 폐출되고 후궁들 중 중전을 선택할 때 박원종의 수양 딸 경빈 박씨도 유력한 후보 였지만 탈락합니다. 하지만 중종의 첫번째 아들을 낳고 자신이 낳은 복성군을 원자로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6년 후 장경왕후가 낳은 아들이 원자로 책봉되면서 꿈이 좌절됩니다. 1533년 김안로의 공작정치에 걸려들어 그녀와 아들 복성군 모두 사약을 받고 죽습니다. 중종은 아내와 아들을 모두 죽인 비정한 군주로 기록됩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신하들 앞에서는 항상 공손하던 중종이 권신 (강한 권력을 가진 신하를 뜻함) 김안로의 압박에 아내와 자식을 죽이는 이중적인 모습입니다. 중종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여준 사례 입니다. 당시 세자였던 인종은 이복 형 복성군을 살려달라고 아버지 중종에게 울면서 애원했으나 거절 당합니다.
장경왕후 윤씨가 죽고 문정왕후 윤씨가 중종의 세번째 왕비로 책봉됩니다. 문정왕후는 중전이 되고 17년 후 경빈 박씨와 복성군이 죽은 이듬해에 아들 경원대군을 낳았는데 그가 나중에 조선 13대 왕이 되는 명종 입니다. 문정왕후는 아들 경원대군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 권력자 김안로는 세자의 외삼촌 윤임을 정치 파트너로 정하고 중종 다음의 설계를 하던 중 입니다. 당연히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 일파와 대립 했는데 역사는 이들을 대윤파 소윤파라고 구분합니다. 단경왕후의 오빠 윤임을 대윤,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을 소윤이라 부릅니다.

여인천하, 윤원형의 수완과, 문정왕후의 잔인함의 결함
소윤파 윤원형은 정치적 감각과 수완이 뛰어난 사람이며 게다가 문정왕후는 잔인하고 냉정하면서 뛰어난 정치 감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대윤 윤임은 세자의 외숙이란 장점을 가지고 있을뿐 외골수 무장이며 정치적 야망도 크게 없었습니다. 이에 김안로는 세자 보호라는 명분과 자신이 다루기 쉬운 대윤파 윤임과 손잡고 정치공작을 펼칩니다. 그러나 경빈 박씨와 복성군을 제거할 때는 동의하던 중종이 문정왕후에게 칼날을 겨누자 김안로에게 철퇴를 내립니다.

문정왕후를 여자라고 얕본 탓에 역습을 당한 김안로, 천하의 권력자 김안로는 이렇게 최후를 맞이 합니다.

김안로를 제거한 후 문정왕후는 권력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고 중종 다음의 임금 자리를 계획 합니다. 첫째는 양녕대군의 사례처럼 세자를 폐위하고 자신의 아들 경원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방법. 그러나 중종은 전혀 동의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둘째는 세자가 빨리 죽거나 임금이 되더라도 후사 없이 죽는 경우입니다. 문정왕후는 세자의 인품과 성격을 파악한 후 상황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기로 합니다. 윤임과 윤원형 둘은 항상 대립하고 신하들도 세자파와 경원대군파 둘로 갈라집니다. 다툼이 계속되자 중종은 윤임을 귀양보내고 윤원형을 파직합니다.
이사건 후 중종의 잘못된 판결에 대하여 대간들의 탄핵이 줄을 잇자 중종은 윤임과 윤원형 둘 다 유배를 보내면서 공평하게 판결 했으니 더 이상은 간쟁하지 말라고 합니다. 과연 분쟁의 당사자 두 명 모두 귀양을 보내면 공평한 판결일까요? 당시 사관들의 기록을 살펴봅시다.
“세자에게 잘 보여서 미래의 출세를 꿈꾸는 자들은 기회주의자 이므로 파직이나 유배를 보내는 벌이 합당하다. 그러나 경원대군을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 하는가? 세자를 폐하고 다음 왕위를 경원대군에게 잇게 하고자 함이 아닌가 이것은 역모로 다스려 삼족을 멸할 중죄다” 사관들의 평가는 이렇듯 날카롭고 정확합니다.

인종의 짧고 굵은 8개월 그리고 을사사화
1544년 중종이 죽고 세자가 조선 제 12대 국왕 인종으로 등극합니다. 그러나 문정왕후는 인종의 착한 성격을 악용하여 인종을 괴롭힙니다. 인종은 즉위 후 현명한 판결로 성군의 자질을 보이더니 계모 문정왕후에게도 지극한 효성으로 대했습니다. 조광조를 신원하고 현량과를 복원 시키는 등 짧은 시간이지만 강한 느낌을 준 인종은 등극 8개월 만에 승하하고 이복동생 경원대군에게 보위를 계승케 하라는 유지를 남기고 승하합니다. 이제 권력을 쥔 문정왕후와 윤원형은 대윤파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는데 조선의 마지막 사화 “을사사화”가 발생 합니다.

다음 이야기
인종이 승하하고 권력을 잡은 소윤파는 “양재역 벽서 사건”을 빌미로 대윤파를 숙청하는 을사사화가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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