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6,Friday

김수영시 詩 – 김수영

시인 김수영은 1968년 6월 16일 죽었다. 전날 밤 문학계 후배 시인들과 술을 마셨고 귀가하던 중 버스에 치였다. 지나던 행인들에 의해 서울 적십자병원에 실려 갔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보다 술을 사랑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시대의 시인을 잃은 슬픔의 와중에도 수영다운 행복한 결말이라며 죽음마저 시였던 그를 그리워했다. 엄격한 자기검열,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권위와 제약에 대한 무차별적인 거부, 세계에 대항하는 개인, 가난으로부터의 승리 등은 시인 김수영의 고단한 삶의 내적 갈등이 우리의 상상을 일찌감치 초월했음을 알게 한다.

누군가 그대에게 가장 사랑하는 시 한 편을 외워보라 할 수 있다. 툭 건드리면 술술 나오는 시 한 편은 외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월급쟁이 정체성이 나를 지배할 수 없다고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을 가졌던 때 나는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 외고 다녔었다. 오, 이내 사람들이 나를 보던 시선이 달라졌었다. 그러나 나는 정작 시인에 관해 많이 알지 못했으므로 후달림을 느끼고 그날 이후 외웠던 시에 관해 다시 물어올까 하여 김수영 전집(산문, 시)은 늘 내 침대 머리맡에 있게 됐다. 두꺼운 책이었지만 읽을수록 궁금해지는 시인이었다.
김수영의 시는 교과서에도 나오지만, 교과서라는 딱딱한 텍스트 집단에 그의 시를 담는 것으로 그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기엔 역부족이다.
김수영의 시는 시인이 이렇게 라디칼 Radical 해도 될까 할 정도로 우리의 생각보다 급진적이다. 그의 작품 중에 ‘김일성 만세’라는 시가 있다. 1960년대 김일성이라는 말만 꺼내도 곤죽이 되던 시대에 이 시를 발표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예술의 자세를 보여주며 살아있는 권력과 맞짱을 뜨던 그였다. ‘거대한 뿌리’는 백미다. 이 시를 읽고 난 뒤 다시 교과서적인 ‘풀’과 ‘폭포’를 읽으면 이전에 내가 읽었던 시들이 아닌 다른 의미가 매직아이로 떠오른다.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적어도 그에게 시는 일상에 없는 아름다운 말들과 희망, 꿈, 아름다움 같은 미사여구로 치장된 언어로 눈앞에 현실을 가리는 비겁한 짓을 해선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실제 그의 산문에서 ‘진정한 시인이란 선천적인 혁명가’라며 어려운 언어로 멋을 한껏 부린 현대 시를 쓰는 시인에게 욕을 퍼붓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의 시 중 하나는 ‘푸른 하늘을’이다. 가끔 힘들 때, 뭔가 시작하기가 겁이 날 때,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이 시를 찬찬히 읊으면 수영이 옆에 서서 내 어깨를 지그시 말하는 것 같다.
“이 친구야, 살아내는 건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거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거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진정한 삶을 위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거야”
그래서인가, 김수영의 존재는 우리가 지고 있는 미실현 자유에 대한 사회적 부채의 총량으로 보인다. 그의 생은 비자유, 미자유, 몰자유, 부자유, 자유 앞에 붙은 모든 부정적 접두사를 깨부수려던 노력이었다.
술자리에서 오가는 시시한 쌈박질 얘기처럼, 아무하고 시비를 붙고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박치기하듯 그렇게 싸워선 안 되고 ‘이 땅에 발붙이기 위해서’는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하고 머리통이 깨지는 걸 불사하며 눈을 똑바로 떠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싸워 가져와야 하는 게 바로 진정한 네 자신의 삶이다. 그것은 스스로 싸우지 않으면 얻어낼 수 없는 것임을 당당히 그대에게 공지한다.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리지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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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고독하지 않은 인간, 어떤 말에도 경박하게 곧바로 묻고 답하는 인간, 삶에 침묵과 여백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천박한 인간은 결국 자유롭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자유로운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그 모르는 상태가 지속되면 온갖 것들에게 걸려 넘어지는 사태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 상황을 시인은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고 답한다.
걸리고 울리고 걸려지고 울려지고 닿고 닿아지는 모든 것에 주눅 들어 옴짝달싹 움직이지 못하는 ‘소리만 남’고 ‘모서리만 남’아 좁아진 인간이 되고야 만다고 경고한다. 나는, 우리는 지금 무엇에 걸려 넘어지고 있는가?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 (김수영)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 테이블도 많으면
걸린다 테이블 밑에 가로질러놓은
엮음대가 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은
미제 자기 스탠드가 울린다

마루에 가도 마찬가지다 피아노 옆에 놓은
찬장이 울린다 유리문이 울리고 그 속에
넣어둔 노리다께 반상세트와 글라스가
울린다 이따금씩 강 건너의 대포소리가

날 때도 울리지만 싱겁게 걸어갈 때
울리고 돌아서 걸어갈 때 울리고
의자와 의자 사이로 비집고 갈 때
울리고 코 풀 수건을 찾으러 갈 때

삼팔선을 돌아오듯 테이블을 돌아갈 때
걸리고 울리고 일어나도 걸리고
앉아도 걸리고 항상 일어서야 하고 항상
앉아야 한다 피로하지 않으면

울린다 시를 쓰다 말고 코를 풀다 말고
테이블 밑에 신경이 가고 탱크가 지나가는
연도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 피로하지
않으면 울린다 가만히 있어도 울린다
미제 도자기 스탠드가 울린다
방정맞게 울리고 돌아오라 울리고
돌아가라 울리고 닿는다고 울리고
안 닿는다고 울리고

먼지를 꺼내는데도 책을 꺼내는 게 아니라
먼지를 꺼내는데도 유리문을 열고
육중한 유리문이 열릴 때마다 울리고
울려지고 돌고 돌려지고

닿고 닿아지고 걸리고 걸려지고
모서리뿐인 형식뿐인 격식뿐인
관청을 우리 집은 닮아가고 있다
철조망을 우리 집은 닮아가고 있다

바닥이 없는 집이 되고 있다 소리만
남은 집이 되고 있다 모서리만 남은
돌음길만 남은 난삽한 집으로
기꺼이 기꺼이 변해가고 있다.


장재용 E-mail: dauac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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