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7,Saturday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 베트남 타임, 코리안 타임

 

 

 

다낭에서 우리 현지법인과 협력하는 부동산개발회사의 10주년 창립기념식 행사가 있었습니다. 초대를 받고 회사의 베트남 디렉터와 함께 다낭으로 가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식은 오후 5시에 시작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고민이 되었습니다. 호찌민시에서 수많은 행사에 참여해 본 경험 상 정시에 식이 시작되는 경우란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으니까요. 결혼식 피로연이 특히 그랬습니다.
6시 시작한다고 하면 7시면 다행이고 그 시간도 넘기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니 어디에서고 가장 먼저 참석하는 축에 속하니 텅 빈 식장에서의 뻘쭘한 기다림은 항상 저 같은 외국인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니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라도 시간을 지켜야지, 그래도 직원이 같이 가니까…, 하는 설득력 없는 이유들을 챙겨가며 행사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아, 그런데 무언가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시에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생소함은 또 뭘까요?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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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다낭은 거의 시간을 지키는 편이에요.”
“그럼 호찌민시는 왜 그래?”
“그건 오랫동안에 걸쳐 생긴 습성인 것 같아요. 그게 반복되다 보니 사람들도 조금씩 늦는 것을 당연시하게 된 거죠.”

보다 근사한 이유를 기대했지만 그 정도 답변도 그럴 듯합니다.

한때 우리나라에 ‘코리안타임(Korean time)’이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미군들이 만들어내 것이라 합니다. 한국 사람과 약속을 하면 제 시간에 나오는 적이 없어 꼭 기다려야 했다고 해서 약속시간에 늦게 나타나는 한국인의 시간관념을 빗대어 좋지 않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과사전 같은 데에서는 코리안타임이 약속시간에 일부러 늦게 도착하는 행동이나 버릇을 이르는 말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베트남타임(Vietnamese time)’이란 말은 어떨까요? 행사나 예식이 정한 시간보다 늦게 시작하고 약속 시간에 늦는 경우가 많으니 이를 베트남타임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요? 직원의 말처럼 약속에 늦는 것이 어떤 이유로든 습성이 되었고 이를 사람들이 용인해 주는 사회 분위기라면 그렇게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시간 개념을 일컫는 표현은 뜻밖에도 여러 나라에 있는 모양입니다. 제가 한동안 머물렀던 브라질에서도 사람들이 약속 시간에 늦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정시에 시작해야 할 일에 대하여는 ‘잉글리시타임(English time)’이라고 분명히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꼭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아도 실례가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겼으니까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아예 30분 정도는 늦게 도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오히려 시계를 들여다보는 행위가 무례한 것으로 여겨진다니 참 희한합니다. 아예 ‘아라비안 타임’이란 것도 있습니다.
아랍인들은 이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IBM’이라고 한답니다. 이 단어는 ‘Inshallah'(알라의 뜻대로), ‘Boqra'(내일), ‘Ma’alish'(안됐지만)라는 세 단어의 첫 알파벳의 합성어인데 이 세 표현이 아랍인들이 약속을 미룰 때 쓰는 대표적인 표현들이랍니다. 이 정도면 느긋 안할래야 안할 수 없을 듯합니다. 인샬라~.

그럼 도대체 코리안타임과 같은 시간 개념은 왜 생겼을까요? 이를 살펴보면 유사한 부분이 많은 베트남에 대해서도 추론이 가능할 듯합니다.
가장 근거 있는 이유는 농경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산업사회와 달리 농경사회는 시간의 개념에 보다 여유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조상들의 시간은 하루를 이십사 시간으로 본 것이 아니라 두 시간 단위로 십이 간지(十二干支)를 사용한 십이 시제(時制)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시(子時, 23~01시)로부터 해시(亥時, 21~23시)까지로 시간을 구분하였습니다. 또 15분을 1각(刻), 30분을 2각, 45분을 3각, 60분을 정각으로 세분하기도 했는데 가장 작은 단위가 1각이므로 15분 내외의 지연은 늦는다고 얘기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찍 산업사회가 된 서양에서는 생산성이 초미의 관심사였고 24시간제에 가장 작은 단위로 초(秒) 개념이 있었으므로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마 근대화 이전 우리나라 사람이 미시(未時)에 만나자고 얘기하면 약속한 서양인은 도대체 오후1시부터 3시 사이의 어느 때를 택해 약속 장소에 갈지 당혹스러웠을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은 1시부터 가서 내내 기다리는 것이지요.

물론 지금 한국에서 코리안타임이라는 말은 사어(死語)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시간은 금이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나 조직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갖는 것이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되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역에서는 우리도 모르게 받아들여지는 코리안타임이 존재합니다. 어떤 행사에 가보면 그렇습니다. 다 모여 기다리고 있어야 등장하는 바로 그 ‘VIP’ 말입니다. 이런 것도 빨리 사라져야 진짜 코리안타임이 없어졌다고 할 만합니다. 시간을 지키는 일은 권력이나 서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공평한 개념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아랍인들이 IBM을 꺼내 들며 신의 뜻 뒤에 숨는 것보다 베트남 사람들이 약속 시간에 늦는 데는 보다 현실적인 변명이 있습니다. 이들의 환경 때문입니다. 갑자기 쏟아지는 열대성 호우는 사람들의 발을 묶습니다. 오토바이가 주 교통수단인 점은 기동성 부분에선 탁월할지라도 예기치 못한 고장과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아직 도로와 대중교통체계가 정비되어 있지 못해 길이 막힐 때 다른 옵션이 없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런저런 환경의 이유로 인해 어느 정도 시간에 늦는 것을 용인해 줄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적인 분위기인 듯합니다. 그러니 이를 베트남타임이란 신조어로 부르기엔 적당치 않아 보입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베트남도 변해 갈 것입니다. 이제 수년 뒤에 도로가 정비되고 교통체계가 갖춰지고 나면 현대산업사회에 적응한 세련된 남방의 도시인들은 언제 시간에 늦은 적이 있느냐며 ‘냔렌(Nhanh Lên)’을 외쳐 댈 지도 모릅니다. 느긋한 한국인의 습성이란 상상할 수 없는 오늘날, ‘빨리빨리’가 한국인을 규정짓는 대표적인 표현이 된 것처럼 베트남 사람들도 그렇게 변해 갈지도요.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콤사오(Không Sao)’로 대변되는 그들의 관용적인 사회적 태도가 보다 경직된 관계들로 변해 갈 것만은 확실합니다.

 

박지훈

건축가(Ph.D),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동남아사업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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