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y 4,Saturday

숫자 사회 (임의진) –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한국인

시험+아파트+돈 = 성공 순위. 저자는 현재 한국 사회 절대다수가 선망하는 키워드를 ‘경제적 자유’로 꼽으며, 한국인들은 경제적 자유에 이르기 위해 시험, 아파트, 돈을 지표로 삼아 경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한 수단인 시험, 아파트, 돈이 반대로 목표가 되어 사람들은 정작 경제적 자유를 얻은 후의 삶에 대해선 많이 생각하지 않고, 단지 ‘시험+아파트+돈’의 결과에 비례하여 행복을 느끼는 사회가 되었다고 저자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런 한국 사회를 ‘숫자 사회’라고 정의합니다.
한국에 휴가를 다녀온 덕분에 읽게 된 신간 서적(2023년 6월 출판)입니다. 많이 가야 1년에 한 번 가는 한국인지라 한국에 가면 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외국에 산다는 이유로 집안의 대소사를 못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호강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던 부모님에게는 생일도 못 챙겨 드리며 살고 있습니다. 열흘 남짓한 짧은 기간에 못 다한 효도를 하고, 나 대신 집안일 챙겨주는 형님께 감사의 마음 전하고, 조카들 용돈 주고, 처가 어른들 인사하고, 친구 한두 명 만나고, 건강검진 하루 받고 나면 금세 인천공항으로 되돌아갈 시간이 다가옵니다. 한국 휴가는 언제나 짦습니다! 베트남에 오래 살며, 한국에 1년에 한 번씩 다녀오는 삶을 살다 보니 빠르게 변하는 한국의 모습을 이방인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지인들 만나 자리에 한 번씩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계산서를 보며 입이 떡 벌어집니다. 한국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호텔 종업원, 식당 종업원 중에 서툴게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식당에서도, 커피숍에서도 무인 주문 화면인 키오스크가 많아졌고, 이마트에서는 계산도 무인 계산대에서 합니다. 뷔페나 식당에서 로봇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다주고 다 먹은 그릇을 가져갑니다. 카카오 택시 앱으로 택시를 불러야 하고, 도로에는 택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브랜드의 전기차들을 볼 수 있습니다. 강남의 한 동네에서는 여기가 베를린인지 서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독일차들이 많아서(엄밀하게 말하면 독일차가 많은게 아니라 국산차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막연한 궁금증을 갖게 했습니다. 열흘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인들을 만나느라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변화된 한국의 모습에 많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변화된 한국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며 들어간 인천공항 출국 터미널의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책이 이 책입니다. 한국의 대형 서점과 인터넷을 통해 산 책은 이미 배로 보내거나, 위탁수하물로 보낸 상태라 더 이상의 책 욕심을 부릴 상황이 아니었는데 이 책을 보고 너무나 사고 싶은 생각이 들어 다른 몇 권의 책과 함께 샀습니다. 인천 공항 서점의 장점은 중량 걱정 없이 책을 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읽히는 책입니다. 마치 한국에 사는 똑똑한 친구와 만나 커피를 마시면서 ‘ 너 요즘 어떻게 지내니?’ 하며 사는 얘기 듣는 경험을 하게 하는 책입니다. 책값이 18,000 원인데 서울 시내 브랜드 커피숍에서 커피 2잔에 케익 1조각 시켜서 먹는 값과 비슷하니 그 가치 이상은 충분히 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경제적 자유와 돈을 숭상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1장, 뒤처지기 싫고, 명품 구입 등 소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만 왠지 모를 만성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모습을 보여주는 2장, 조선 시대 성공방정식인 ‘과거급제 + 토지 + 수확량’을 현재 우리의 성공 방정식인 ‘시험 + 아파트 + 돈’ 에 비교하며 우리의 현재 모습에 대한 역사적 근거와 원인을 제시하는 3장, 건강한 개인주의를 살릴 수 있는 지역 공동체, 취미 모임, 다양함을 받아들이는 관용을 통해 숫자 사회를 넘어서는 더 나은 사회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자가 제시한 현대 한국인의 성공 방정식 ‘ 시험 + 아파트 + 돈 ‘은 직관적인 설득력이 있고, 또래와의 비교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세우는 현상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이유를 쉽고 간단하게 설명해 줍니다. 저자가 대안 중 하나로 제시한 ‘건강한 개인주의’ 라는 개념도 다소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변화하고 있는 사회적 인식을 바르게 반영한 듯하여 와닿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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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2007년, 우석훈), 90년대생이 온다(2018년, 임홍택) 등의 책을 떠올리게 하는 책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한국 사회를 CT (컴퓨터 단층 촬영)촬영하여 그 단면을 보여주며 우리 사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류의 책에서 높이 평가해야 하는 부분은 문제 제기하는 안목, 그리고 얼마나 정확히 현실을 파악했느냐 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때 이 책은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교적 잘 그려내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유의 책들이 가진 한계점을 갖고 있는데, 이 책이 제시하는 대안은 쉽게 모든 사람들이 행할 수 없는 대안이란 것입니다. 그건 비단 이 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 사회과학 서적의 한계라고 봅니다. 현상 파악과 원인 파악은 비교적 정확히 낼 수 있지만 그 다양한 원인과 현상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복잡성으로 인해 명쾌한 답을 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명쾌하고 맹목적인 해답을 강요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여하튼 약간 맥이 빠지는 결론 때문에 항상 이런 유의 책은 화려한 ‘기-승-전’이 초라한 ‘결’로 이어지는 미국 드라마나 영화 같은 특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에 대한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입담 좋은 친구와 함께 커피 한잔 마시며 반나절 정도의 시간동안 ‘요즘 한국 사람들(나를 포함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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