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5,Thursday

상의원

왕실의 옷을 만드는 사람들

천재에게 질투와 시기심을 느끼는 노력형 인간의 이야기를 흔히 살리에리 증후군이라고 일컫는다.
영화 ‘상의원’은 이 고전적인 이야기를 조선 시대의 구중궁궐 그것도 의상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로 단장한다. ‘옷은 날개’다. 천재 디자이너 이공진의 손만 닿으면 심지어 궁녀들도 왕의 승은을 입을 만큼, 그는 타고난 열정과 재주를 가진 ‘조선의 피에르 가르뎅’으로 이름을 떨친다. 저잣거리 사람들은 그가 만들어 낸 왕비의 옷을 만들어 팔고, 그의 가위 끝에서 조선의 새로운 스타일과 유행이 시작된다. 30년 동안 온 정성과 혼을 다해 왕과 왕비의 의대를 만들어 바쳤던 어침장 조돌석에게 이공진의 파격과 창의성은 눈엣가시이자 한 번은 따라 하고 싶어지는 이중적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옷에 관한 한 ‘전통과 예의, 법도와 계급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조돌석은 이공진의 파격적인 한복 패션에서 ‘천박’하고 ‘위험’한 일탈의 향기를 맡는다. 그러나 조돌석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누구나 입으면 편안하면서도 아름다운 옷들을 거침없이 능수능란하게 만들어 낸다.

영화 ‘상의원’은 눈이 호강하는 영화다. 모던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영화 속 1000여벌의 한복들은 자그마치 10억원의 의상비를 들인 결과물이다. 여성 관객이라면 누구나 ‘저 한복 한번 입어 봤으면’이란 은밀한 마음이 들 정도다. 그러나 이 모든 한복은 조선의 전통적인 한복이라기보다, 현대적인 느낌을 아낌없이 가미한 다양한 개량 한복이다.

‘상의원’은 고증과 사실성에 충실하기보다 만화같이 재기 발랄한 상상력을 가미해, 현대적 말투와 화려한 패션이 난무하는 가상의 조선 팔도를 감칠맛 나게 휘젓고 다닌다. 그래서 영화가 아예 대놓고 퓨전 사극 혹은 팩션의 형태를 띠고 있을 때, 대사도 배우도 고증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재기 발랄하게 놀고 경쾌하게 튄다. 하늘에 뜬 달을 보며 커다란 옥토끼와 조우하는 상상력이 펼쳐지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이원석 감독은 전작 ‘남자사용설명서’에서 보여줬던 발칙한 유머 감각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갖고 논다. 그러나 이런 장점은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가 정극으로 선회하면서 그 무게중심을 잃는다. 이복형이었던 상왕에게 지독한 열등감을 느끼고 살았던 왕은 “이 궁궐에는 나의 것이 하나도 없다”는 외침으로 포효하며 온갖 문제를 일으킨다. 여기에 구중궁궐의 암투와 후궁의 모략이 더해지면서, 왕비와 공진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이야기의 갈래가 산만해질수록, 각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할수록, 캐릭터와 스토리 모두 관객들을 설득하고 감정의 깊이를 더하는 데 실패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황당한 설정의 연속이다. 마치 상의는 파티복, 하의는 제례복을 입은 듯 전반적인 톤은 뒤틀리고 장면 구성은 숨 가빠진다. 많은 예산과 대작에 대한 욕망이 오히려 이원석 감독에게 독이 된 듯하다. 솔직히 보면 볼수록 감독이 영화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통 감을 못 잡겠다. ‘쥐도 수프를 끓일 수 있다’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라따뚜이’가 그러하듯 기발한 창의성이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라면 영화는 후반부를 도려내야 했다.

반대로 화려한 옷 속에 감춰진 인간의 깊은 내면을 파고들고 싶었다면 전반부를 들어냈어야 했다. 지나친 것은 오히려 모자란 것과 같다. 127분의 ‘상의원’은 과유불급의 영화다. 공진이 그러했듯 더 많은 가위질이 필요했다.

감독 : 이원석
출연 :한석규, 고수, 박신혜, 유연석, 마동
글 : 심영섭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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