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4,Wednesday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결핍의 유익

 

“1418년부터 1450년까지 흑점 기록이 하나도 없다.  또한 그때를 전후로 150년간 흑점 기록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양홍진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이 시기가 소 빙하기와 일치하는 때로, ‘태양 활동이 매우 적었고 일조량이 적어 농사 짓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 견해를 밝혔다. 실제로 세종 시대는 가뭄의 연속이었다.”

위 내용은 KBS 한국사傳 제작팀이 쓴 『한국사傳3』(한겨레 출판 245~247쪽)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태평성대를 누렸을 것 같은 세종대왕의 재위 시대에는 사실 기후가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종이 임금으로 즉위한 이후로 약 10여년간 단 한 해도 가뭄이 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전합니다. 『세종실록』에는 이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지는데 흙을 파먹고 연명하는 백성들이 있었을 정도라 하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기록으로 보면 세종 6년에는 가뭄 때문에 강원도 전체 가구의 3분 1이 사라지고 농토의 절반이 폐허가 되었다 합니다. 농업 국가였던 조선에 가뭄으로 흉년이 장기화되었다는 것은 국가적 위기를 맞았음을 뜻합니다. 지금 같으면 경제가 어려워 민생이 파탄 났다고 광화문에서 촛불 들고 대통령 탄핵을 외칠 만한 사안이었습니다.

그러니 임금이 된 세종이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요? 세종 임금은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 거처하던 강녕전을 버리고 경회루 한쪽에 초가집을 짓고 2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에 관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기우제를 드리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 것이 이런 이유입니다. 그가 앓았던 온갖 병의 원인 중에는 이 일의 스트레스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기록에도 열하루를 꼬박 앉은 채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고 하니 국가의 지도자로서 그의 고민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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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종임금시대를 조선왕조 최고의 시대로 평가하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던 농업 분야에서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모를 옮겨 심는 이앙법은 이 때 실시되었습니다. 이양법에 대하여는 『농사직설(農事直設) 』에 기록되었는데 농업 발전의 획기적인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측우기(測雨器), 자격루, 간의(簡儀), 혼천의(渾天儀) 등 많은 과학기구들의 발명도 영농의 과학화와 관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농업기술의 발전에 기여했고 세종 후대에 이르러서는 토지 1결당 생산량이 1200두까지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세종임금을 대왕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한글의 창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백성을 사랑했고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는지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브라질에서 CM을 할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브라질은 풍요의 땅입니다. 부러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진 풍요에 비해 사람들에게서 축복의 윤택함이 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브라질 친구 한 사람이 출처가 불분명한 우스개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나라마다 주어지는 것이 다름을 보고 내심 천사들이 불만을 가졌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왜 저러실까 했습니다. 브라질 땅을 지으실 때에는 쌓인 불만을 터뜨리기에 이르렀습니다.

“주님,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는 것은 이해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웬 특혜랍니까? 해도해도 너무 몰아주시는 게 아닌가요?”

하나님께선 빙그레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천사들의 튀어나온 입을 쑥 들어가게 했답니다.

“좀 기다리거라. 사람만 만들어서 풀어 놓으면 다 똑∼같아 지니까.”

‘사파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제목의 기고를 읽었습니다. 오랫동안 외부와 단절되었던 고원도시가 이제는 유명한 관광도시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관광객을 위한 유럽풍의 호텔들이 지어지고 있으며 곧 공항이 생길 거란 기사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고에 의하면 사파의 거리 간판에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니 아이들이 쉽게 관광객에게 손을 내밀고, 돈의 맛을 본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구걸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풍요 아닌 풍요가 아이들에게서 미래를 빼앗아 가는 아이러니가 생기고 있습니다. ‘미래가 없다면 그 세계는 무너지는 것이다’ 라고 기고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하고 상상해 봅니다. 우리 민족이 지구촌의 변방을 벗어나 천혜의 땅을 받았다면 어땠을까요? 애석하게도 저는 지금보다 못할지 언정 나아질 것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먹을 것 풍부하고 기후 좋고 노는 땅 많은데 왜 굳이 아등바등거리며 살겠습니까? 그런 환경을 지닌 이들은 삶의 질이 달라야 합니다. 그럼에도 브라질에서 그에 따른 윤택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누리되 방만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제 아무리 축복받은 땅에 살아도 그 복과 풍요는 거치는 돌이요 찌르는 칼이 됩니다. 사파의 어린이들처럼 당장 쉽게 버는 돈벌이로 책상에 앉아 지겨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갑갑하게 느끼고 거리로 뛰어나간다면 그 일의 결과는 분명합니다. 그들의 성장이 자신이 아닌 외지인의 주머니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복권으로 당첨된 이들의 성공신화를 별로 들을 수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땀 흘려 노력하지 않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쉽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

세종임금의 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세종임금의 치세에 혁혁한 과학과 문화의 발전, 그리고 백성들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가 처한 어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 어려움을 어려움으로 보지 않고 부단히 노력한 겸손한 지도자, 그를 따랐던 이들의 헌신이 우리의 역사에 자랑스럽고 빛나는 시대를 열게 했습니다.

우리를 열심이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진 게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녹록치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강할 수 있었던 까닭이 그 땅에 토네이도가 일었고 지진이 있었으며 사막이 자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요?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약속되었던 땅도 그리 비옥하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신이 말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그러한 척박한 환경과 위기가 숨겨둔 ‘기회’라는 복, 신을 바라보며 간구해야만 했던 ‘절실함’의 복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찌르는 것이 있어 겸손히 낮출 수 있고, 부족함이 있기에 목표를 세울 수 있게 하며, 벽이 있어 뛰어넘을 노력을 하도록 만든다면 그 찌르는 가시와 결핍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요?

그것의 이름은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결핍과 위기를 아는 것은 복입니다. 도전의 이유입니다. 그리고 부족함으로 자신을 깨우치게 하는 기회입니다.

夢先生

 

박지훈
건축가(Ph.D),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동남아사업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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