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June 1,Saturday

떡은 무엇인가?

떡의 역사 (한국을 중심으로)
언제부터 떡을 만들어 먹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청동기·철기 시대 유적에서 시루가 발견된 점, 황해도 안악 3호분 벽화의 부엌에 시루가 그려진 점을 미루어 고대에도 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추정된다.

『삼국사기』 에서 떡을 뜻하는 글자인 ‘병(餠)’이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 고려사』 를 비롯하여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 이색의 『목은집』 등 각종 문헌에서 떡을 만들어 먹은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조선 시대에는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조리가공법이 발전하면서 떡 재료와 빚는 방법이 다양화되어 각종 의례에 떡의 사용이 보편화되었다. 특히, 궁중과 반가(班家)를 중심으로 떡의 종류와 맛이 한층 다양해지고 화려해졌다. 『산가요록』 , 『증보산림경제』 , 『규합총서』 , 『 음식디미방』 등에서 다양한 떡의 이름과 만드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고, 각종 고문헌에 기록된 떡이 200종이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근대의 떡은 한 해 마을의 안녕을 비는 마을신앙 의례, 상달고사 등 가정신앙 의례, 별신굿 및 지노귀굿 등 각종 굿 의례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제물(祭物)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서양식 식문화 도입으로 인해 한국인의 식생활에 변화가 생겼고, 떡 만들기 문화도 일부 축소되었다. 또한 떡 방앗간의 증가로 떡 만들기가 분업화되고, 떡의 생산과 소비 주체가 분리되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다양한 떡이 지역별로 전승되고 있으며, 의례, 세시음식으로 만들고 이웃과 나누는 문화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왜 떡은 귀한 음식으로 취급됐는가?
떡은 전통적으로 귀한 음식으로 취급됐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쌀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근대 이전 아니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서 쌀이 남아도는 시대는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늘 쌀이 부족했었다. 이러한 문제는 전근대 어느 나라도 피해갈 수 없었고, 프리츠 하버가 질소 비료를 개발한 이후에나 식량 문제에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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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지을 쌀도 부족하던 시절에 밥보다 쌀이 훨씬 많이 들어가는 떡을 해먹는다는 것은 술을 빚는 것과 함께 사치스러운 행위였다. 그러다 보니 떡은 관용적으로 ‘좋은 것’이란 뜻을 내포하게 되었는데, ‘이게 웬 떡이냐?’ 뿐만 아니라 ‘내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무엇무엇을 할 바에 떡이나 사먹고 말지’, ‘그 많은 돈을 우리 군인들이 다 떡 사먹었느냐?!’ ‘그 돈이면 떡을 치고도 남는다. ‘등의 관용어구로 쓰인다. 소고기 사묵겠지의 소고기와 비슷한 사용례이다. 또한 명절을 즈음하여 회사 등지에서 직원들에게 주는 보너스를 ‘떡값’이라고 지칭하고, ‘콩고물을 받아먹는다’라는 표현에서도 떡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도 경사가 있으면 주변 이웃들에게 ‘그 귀한’떡을 돌리곤 했었는데, 이게 오늘날까지 내려와서 경사가 나거나 이사를 왔으면 이웃에게 떡을 돌리는 습관이 남아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공무원들의 인사 발령 시즌. 평소엔 먹을 일이 드물던 떡을 식후에도 한가득 남을 정도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시즌엔 식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좋아하는 사회복무요원들도 있다. 물론 공단공사 같은 공공기관은 부서 스타일에 따라 떡이 아닌 치킨, 피자 등으로 축하 파티를 하는 곳도 있다. 인터넷상에서도 디시인사이드 내 연예인 갤러리나 팬카페 같은 곳도 생일이나 경사라고 생일떡을 돌리는 경우가 있다.

확실히 떡의 가치가 예전에 비해 하락하긴 했지만, 스팸과 마찬가지로 고급 선물로서 주고받던 관례가 남아 있다. 스팸은 원산지 미국에서는 흔하게 취급하던 것이고 전쟁 후 ‘가난했던’한국에서만 유달리 고급으로 받아들였던 인식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었으나 떡은 옛날부터 한국에서 고급 취급이었다.

그러면 왜 새해에는 떡국을 먹나?
떡국은 새해 첫날인 설에 먹는 전통음식으로 흰 가래떡을 썰어서 쇠고기나 꿩고기, 닭고기로 맛을 낸 맑은 장국에 넣고 끓여 만든다. 새해 첫날의 밝음의 의미로 흰 떡을 사용하고 떡을 길게 늘여 가래로 뽑는 것은 재산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의미다.

설날에 떡국을 먹기 시작한 날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시인 최남선의 『조선상식』에 따르면 상고시대 신년 제사 때 먹던 음복 음식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는 떡국을 ‘백탕’ 혹은 ‘병탕’ 이라 적고 있는데, 겉모양이 희다고 하여 ‘백탕’,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 하여 ‘병탕’이라 했다고 한다.

또한, 떡국은 정초차례(새해에 행해지는 차례)와 세찬(새해에 세배하러 온 분들을 대접하는 음식)에 없으면 안 될 음식으로 설날 아침에 반드시 먹었고, 손님이 오면 꼭 대접했다고 한다.

몽골의 영향
한국 떡국의 국물은 소나 꿩같은 동물성 고기를 넣고 국물을 내는데, 이러한 점은 한국 사골 국물의 특징이며, 이러한 국물내는 방식의 영향은 몽골요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얼핏 보면 떡국이나 수제비 같이 보이는 몽골의 슐은 소를 베이스로 한국 국물요리의 대표적인 원조 음식으로 간주되고 있다. 특히 『거가필용居家必用』이라는 원대에 서술된 책에는 당시 민간의 요리문화가 소개되어 있다. 본 서적에 편찬된 조리 법들은 17세기 조선에서 편찬된 실학서인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상당수 수록되어 있으며 17세기 조선시대의의 ‘치선’편에 60% 이상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으며, 이를 통해 고려 후기 원으로부터 육류 요리법들이 전해진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영향으로 인하여 한국 특유의 소를 활용한 국물요리가 등장했고, 전통적으로 귀한 음식이었던 떡을 넣어서 먹는 방식으로 진화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특히 몽골의 고기국인 ‘슐’과 우리의 탕문화, 육수에 밥이나 면을 넣어 만드는 방식, 유표와 같은 건조육을 만드는 방식, 몽골의 게대스와 한국 의 순대를 비교하여 양국간의 육식문화의 유사성에 주목한 연구가 있을 정도로, 한국의 고기요리에서 몽골의 영향을 배제하면 고기요리의 성립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다른나라의 떡국은?
떡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연계하는 음식이라고 언급한바 있다. 떡을 귀한 음식으로 보던 관점은 쌀 문화권에서는 비슷한 특성이 있지만. 떡국이 있는 일본과 중국에서는 한국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일본식 떡국 – 조우니(雑煮/떡국)
조우니(雑煮)는 떡을 넣은 국물로, 전통적인 일본 요리다. 도시락 형식의 세트메뉴인 오세치 요리와 함께 새로운 1년의 행복을 빌며 정월에 먹는 음식중 하나다. 조우니(雑煮)란 떡이 주체인 국물 음식으로, 정월에 신년의 오곡풍양, 가내안전을 빌며 칠기(漆器) 밥그릇으로 먹는 음식이다. 산가니치(三が日/1월 1일~3일)의 조식으로 먹습니다. 국물은 미소(味噌)나 맑은장국(すまし汁/간장·소금·다시出汁 국물)이기도 하며 재료도 야채, 어패류, 닭고기 등 많은 조합으로 만든다. 대부분은 각 지방의 지역 특산물을 사용하므로, 일본인에게는 ‘고향의 맛’이기도 하다.

중국식 떡국 – 넨가오(年糕)
중국에서는 우리가 떡국이나 떡볶이를 만들 때 쓰는 가래떡을 ‘넨가오(年糕)’라고 부른다. 음력 1월1일의 ‘춘제(春節)’때 먹는 음식이다.

중국에서 넨가오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차(食次)’라는 중국 남북조시대 요리책에 나오는 ‘백견당(白茧糖)’이 ‘넨가오’를 사용한 요리이기 때문이다. 백견당의 견(茧)은 누에고치를 뜻한다. 흰 누에고치 모양으로 달게 만들었다고 해서, 백견당이라고 불렀던 듯하다.

중국의 넨가오는 지역마다 요리법이 다르다. 절강성 영파의 넨가오는 쌀을 물에 불려서 가루로 빻은 후 쪄서 가래떡으로 만드는 방식이고, 강소성 소주는 돼지기름에 튀기며, 복건성 복주는 쌀과 찹쌀을 반반씩 사용하되 설탕도 넣어서 만든다.

한편 북방 넨가오의 대표인 북경 넨가오는 소수민족인 회족(回族)음식으로 알려져 있으며, 청나라의 만주족은 이를 제사에 사용해왔다. 앞에서 소개한 연이라는 맹수 이야기도 ‘추운 겨울’ ‘깊은 산’ 과 같은 소재를 봐서는 북방을 배경으로 한 얘기가 아닌가 싶다.

베트남의 떡-반쯩(Banh Chung),반뗏(Banh tet)
베트남은 구정(뗏)때 떡 종류의 음식을 많이 먹는다. 베트남의 구정은 음력 새해를 축하하는 전통 명절로, 보통 1월 말에서 2월 초 사이에 열린다. 이 기간 동안 베트남인들은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함께 떡을 먹으며 새해를 맞이한다.

베트남 구정에서 가장 대표적인 떡은 ‘반쯩'(Banh chung)과 ‘반뗏'(Banh tét)이다. 반쯩은 찹쌀, 녹두, 돼지고기를 넣고 쪄낸 네모난 떡으로, 북부 베트남에서 주로 먹는다. 반쯩은 땅을 상징하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반땟은 반쯩과 비슷한 재료로 만들지만, 모양이 길고 동그란 것이 특징이다. 주로 중부와 남부지방에서 먹는다. 반땟은 하늘을 상징하며, 부귀와 영원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이외에도 베트남 구정에는 다양한 종류의 떡을 소비한다. 대표적인 떡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반자이(Banh day): 찹쌀을 쪄서 만든 둥근 떡으로, 하늘을 상징.
●반바오(Banh bao): 찹쌀을 찐 후에 돼지고기, 버섯, 당근 등의 속을 넣고 찐 떡.
●반꾸오이(Banh cuon): 얇은 찹쌀 피에 새우, 오징어, 버섯 등의 속을 넣고 말아서 만든 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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