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November 30,Monday

송년 소회

또, 또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다가온다.
매년 이렇게 반복되는 행사지만 해가 갈수록 점점 이런 날이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지겹기도 하다. 환갑 진갑을 다 보낸 인생의 퇴물이 되고 보면 새해라는 울림이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어차피 정해진 시간의 틀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재확인하는 냉정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시간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는 연륜이 쌓인다.
새해 희망차게 떠오르는 붉은 태양의 축복 속에 죽음의 메시지가 함께 담겨 다가온다는 것이 대다수의 젊은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숨은 그림이지만, 이런 숨은 그림을 명확히 볼 수 있는 것이 연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든다는 것을 연륜이 쌓이는 것으로 인식하면 좋은 것도 많다.

일단 젊은 시절 치열했던 삶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생긴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젊은 날,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얼마나 혼란스런 나날들을 보내었던가? 이제 가족을 이루었고 회사도 만들어 호구책을 마련했고 그로 인해 경제적으로 빈곤함은 면한 것 같고 비 바람 피할 수 있는 약간의 재산도 마련했다.

아들애도 학업을 마치고 군복무도 끝내고 지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아 갈 나이가 되었으니 자녀교육 문제가 해결된 셈이다. 오히려 아들애가 갱년기 장애로 고생하는 지 엄마를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 또한 크나큰 기쁨 중에 하나다. 아무튼 사회에서 주어진 숙제는 대강 마친 셈이다. 이렇게 생의 숙제를 대충 마쳤다는 안도감은 마음에 평화를 찾아준다. 이제는 내 자신을 위해 내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누가 제 할 일은 안하고 뭐 하는 짓이냐고 탓할 사람도 없다. 더욱 감사한 것은 아직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을 닦고 출근할 일거리가 있고, 매주마다 몇 줄의 글을 쓰기 위해 젊은 시절 치열한 삶의 굴레에 밀려 미루어 놓았던 책들을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겼다는 것도 늙음으로 생긴 여유의 하나이리라.

그것뿐인가?
생에 대한 애착도 많이 사라졌다. 바둥거리며 오래 살겠다는 생각은 지운 지 모래다.
젊은 시절에는 내 몸이 그저 내 한 몸으로 끝나지 않았다. 내 몸에 무슨 이상이라도 생기면 당장 곤란을 받아야 할 가족이나 직원들이 있으니 내 몸을 간수하는 것도 반드시 지켜야 할 숙제의 하나였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주고 재산도 조금 남겨놨으니 어느 날 훌쩍 생을 접어도 남아있는 가족이나 직원에게 심각한 곤란을 남기지 않으니 언제 죽어도 호상이라며 스스로 안도감을 즐기며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일탈의 자유를 누린다. 평행 우주론에 따르면 이 생에서의 마감은 다른 우주에서 생존하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는 일이라 했다. 그런 이론에 따르면 실질적인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감으로 가장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일은 세상사를 웬만큼 꿰고 있는 지혜가 생긴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 몇 십분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성향의 부류인지 대충 파악이 된다. 누가 옆에서 아무리 바람을 넣어도 부화뇌동하지 않는 사리분별이 가능해 진다. 어쩌다 감투하나 얻어 쓴 인간이 아무리 그럴듯한 소리로 떠들어봐야 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것도 안다. 세상사를 어느 정도 이해하니, 해야 할 일, 해서는 안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어떤 일을 어떻게 진행될 지 대강 짐작이 되니 헛된 일에 정력을 소모하는 일이 사라진다. 남들의 부당한 처사에 발끈하며 흥분하던 혈기도 사라지고 대신 고단수의 대응으로 상대를 무색하게 만드는 법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택시 운전사가 잔돈이 없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 놓으면 오히려 만 동 하나를 더 넣어주며 어깨를 두드리고 내릴 줄 아는 여유도 생긴다.

이렇게 여유가 생기고 나면 남들의 눈치를 안 봐도 사는데 별 지장이 없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나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을 외면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 또,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는 욕심이 사라지니 남들이 뭐라 해도 별로 개의치 않는 영혼의 자유를 즐긴다. 그래서 남의 눈치 안보며 하고픈 말을 몇 줄 써대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런 탓에 가끔 필화(筆禍)를 겪지만 아무리 막말로 협박을 해도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는다. 예전에 보았던 재미없는 영화를 다시 반복해서 보는 기분이다. 그러니 내 스스로 상식에 입각한 글이라는 확신을 바꿀 생각이 안 든다. 하긴 그렇게 스스로를 믿는 완고한 가치관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배움을 놓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종종 나대는 글로 인해 필화를 겪는 필자에게 최근 친구가 전한 말이 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자신을 들어내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공자가 한 말이다.
아직도 상식이 통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저 어리석은 지혜를 드러내기만 하는 아둔함을 탓하는 것이다. 지혜롭기보다 어리석기가 더욱 힘들다는 말을 덧붙인다.
지혜를 어리석음으로 감출 줄 아는 유연함도 배우라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배움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필요한 일이다.

한 해를 보내며 다시 한번 마음의 비움을 확인해본다.
가정이 있고,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가족이 있고, 가족 못지 않게 긴 시간을 함께 일한 직원들도 있고, 환갑 진갑 다 지난 퇴물이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계획이 떠오르니 이만하면 차고도 넘치는 생이다. 또 다른 욕심대신 영혼의 자유나 즐기며 살 일이다.

그래 한 해가 저물고 또 한 해가 다가온다.
새해에도 별다른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미래가 펼쳐짐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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