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5,Thursday

독서 모임 ‘공간 자작’- 잘 모르겠어요, 뭘 좋아하는지

취업준비생인 27살의 청년에게 중년의 아저씨가 인생상담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래 너는 하고 싶은 일이 뭐야 ?”
“… 잘 모르겠어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다고 하면, 그 일에 대해 실상을 알려주거나, 마침 그 일을 하고 있는 지인이 있으면 소개라도 해줄 참이었는데, 이 친구가 이렇게 솔직하게 나오니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야, 이 나이가 되도록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면 어떡하냐? ‘라는 말로 꼰대질을 시작할려는 찰나, 본인도 문득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좋아서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튀어 나오는 말을 바꾸었습니다.
“술이나 한잔 하자, 건배”

27살 청년은 물론, 46살 중년의 아저씨도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고,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돌아보니 거기에 답이 있는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해야하는 일을 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죠. 해야할 일 투성입니다.

초등학생도 학원가느라 ‘시간이 없어’서 자기들끼리 약속잡기도 어렵습니다. 미술, 피아노, 태권도, 수학, 영어…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내 아이도 당연히 해야 합니다. 남보다 뒤쳐지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하는 악덕입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엄마는 매일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고생해서 버는 돈으로 너가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으니, 너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할것 같습니다. 매일 가는 학원이 재밌거나, 내가 특별히 잘하는 것 같지 않는데, 포기하는 아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포기해서 엄마 아빠로부터 싸늘한 눈길을 받는 것이 너무 두렵습니다. 그래서 그냥 학원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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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아이들은 유행하는 브랜드 패딩을 입어야 합니다. 100만원이 넘어도 입어야 합니다. 부모님이 사줄 수 있는 형편이면 부모님을 설득합니다. 자기 자식이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거나 기가 죽어 지내는 것을 원하는 부모는 없으니까, 좀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많은 부모님들은 아이가 원하는 고가의 패딩을 사줄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부모님이 없거나 생활력이 강한 아이는 몇달을 고깃집에서, 김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기어이 원하는 패딩을 삽니다. ‘있어 보이고’ 싶은 이유입니다. 희한하죠? 있는 것을 알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탄생한 제품들이 ‘있어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몇달을 고생하며 돈을 모아 사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있지’ 않은데 ‘있어 보여야’ 안심이 됩니다. 과시는 못해도 최소한 어울리는 친구들이 인정해주는 브랜드 옷과, 신발을 신고 있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대학생이 되면 항상 어울려 다닙니다. 혼자 있고 싶어도, 혼자 지내는 나를 이상하게 볼까봐 혼자 있지 못합니다. 당구를 치고, 컴퓨터 게임을 하고, 여름되면 수영장에 가고, 겨울되면 보드 타러 갑니다. 베스트셀러 책을 읽고, 1000만 관객이 든 영화를 봐야 친구들 사이에서 얘기가 통합니다.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모임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취업을 앞두게 되면 토익 공부, 스터디 모임, 어학연수, 자격증 시험을 함께 준비합니다.

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전년도 보다 취업시장이 좋았던 적은 한해도 없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어렵게 취업을 합니다. 평균 100개의 이력서를 쓴다고 하는데, 나에게 딱 맞는 어떤 일을 하게 될 확률보다는, 나를 뽑아준 회사에 나를 맞추고 살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속에서 인정 받기 위해 해야할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아주 바쁘게.

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무언가를 잃거나 잊고 지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것입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나만의 취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렸을때는 누구나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알수 있습니다. 자기가 남들보다 그림을 못 그린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사람들은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춥니다. 그림을 그려서 표현하고 싶은 순간이 있는데, 사람들이 비웃을까봐 망설이고 그림을 못 그리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만화책을 보면서 밤을 세우며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만화책을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꺼려져서 만화책과 멀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남자 어린이들은 대부분 프라모델 조립에 한번씩 빠지는 시기가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거의 99%의 남자들은 프라모델 조립을 잊게 됩니다.
답답한 마음을 일기장에 글을 쓰며 해소하던 때도 있었는데, 글을 쓰는 일도 너무 어려워졌습니다. 나만의 취향이란 것은 ‘내가 그냥 너무 좋아하는 것. 남에게 설명할 필요없이 마냥 좋아하는 것. 또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너무 재밌어서 하는일. 그것을 하는 동안에는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때로는 자기도 모르게 밤을 세는 일’ 이라고 정의 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런것이나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들과 비교하고, 남의 눈을 의식하고, 남들과 어울려 다니는 사이에 어느덧 나의 취향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남이 정해놓은 취향을 욕망하고 원하고, 그것 때문에 노력하고 괴로워합니다.

로빈슨 크루소 처럼 혼자 살수 없는 세상이고,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눈을 감고 내멋대로 살라고 권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행복하지 않거나 마음이 허하다면, 혹시 내가 너무 타인의 취향에 맞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그리고, 밤을 새는 것도 모른체 나를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줬던 나만의 취향을 재발견함으로써, 행복에 한발짝 더 다가갈수 있길 바랍니다. 내 일상 속에서 좋아하는 일의 비율이 해야하는 일의 비율을 넘는 순간이 바로 행복에 다다른 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저자 – 독서 모임 ‘공간 자작’
이번에 본 칼럼을 시작한 독서 모임 공간 자작은 회원수 xx명 규모의 2018년 말 시작하여, 한달에 한번씩 평균 2권의 책을 읽으면서 토론하고, 주제를 논하는 독서 모임이다 . 이들의 칼럼은 ‘공간 자작’ 대표측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발표할 예정이며, 2주에 한번씩 연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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