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April 6,Monday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어긋난 조선의 개혁

지난 이야기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를 꿈꾸며 성리학 이념에 충실한 유교국가를 건설 하고자 했던 조광조는 자신의 이상향을 실현 시키고자 무리한 개혁을 시도하다 제거됩니다. 기묘사화로 조광조 일파 수십명이 희생 되었으나 그 후로도 조광조 인맥들을 제거합니다. 이렇듯 기묘사화 후 오랫동안 많은 선비들이 화를 입었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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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의 초고속 질주와 몰락

지난 이야기 중종반정 5년 후 박원종을 필두로 반정 3대장이 연달아 사망합니다. 중종은 왕권을 회복하고 반정 3대장의 빈자리를 조광조가 채웁니다. 뛰어난 성리학자인 조광조는 성리학이 지배하는 조선을 계획 합니다. 그러나 부국강병 민생안정 등 정치의 본분을 망각한채 유교 법도만 강조 합니다. 또한 조광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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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반정이후 사대부의 보신주의와 조광조의 등장

  지난 이야기 폭군 연산을 몰아내고 등극한 중종은 117명 반정공신을 책봉 합니다. 공신 80%가 가짜 말이 나올 정도로 엉터리 공신책봉은 대간들의 공격대상이 됩니다. 박원종 등 반정 3대장은 대간을 무마하려고 유자광 혼자 유배 보내는 선에서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러나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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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반정과 박원종 그리고 공신

지난 이야기 연산군은 어머니 복수를 위해 갑자사화를 일으킨 정황은 어느정도 사실이지만 군주의 권력을 반석위에 올려 놓기위해 사건을 확대 했습니다. 갑자사화 후 강화된 군주의 권력은 자신의 사치와 쾌락을 위해 사용했으며 이로 인해 백성들은 조선건국 후 가장 고통받는 시절을 보냅니다. 이런 분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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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피바람, 갑자사화

지난 이야기 평범한 군주의 길을 가던 연산군은 대간 권력과 충돌을 합니다. 처음에는 연산군이 대간들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훈구파 공신들을 이용합니다. 무오사화 이후 지나친 왕권강화 정책을 펴는 연산군에게 불안감을 느낀 신하들은 공신과 대간들이 연합하게 됩니다. 이에 연산군은 훈구파 공신들과 대간 모두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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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본질

유자광을 몰락시킨 임사홍 한풀이를 통하여 조선에 타격을 주다 지난 이야기 연산군은 의도적으로 무오사화를 만들었고 대간 권력을 약화 시켰습니다. 지나친 대간권력을 억제하고 균형 잡힌 권력을 활용하여 정치를 했으면 진일보한 조선 사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론에 재갈을 물린 연산군은 독재권력을 추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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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광과 신분제 그리고 무오사화

지난 이야기 연산군은 대간들의 비판을 싫어하여 언론자유를 억압하고 대간들 길들이기 하느라 유자광을 이용하여 무오사화를 일으켰습니다. 정치 감각이 뛰어난 연산군은 대간권력을 축소하는 도구로 무오사화를 일으킨 듯 합니다. 유자광은 누구인가? 즉위 후 4년동안 대간들과 대립한 연산군은 김일손의 사초 사건이 일어나자 왕권을 강화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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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사회의 명암 – 4대 사화

지난 이야기 500년 전 중세사회에 다른 국가들이 가질 수 없었던 언론자유를 가졌던 조선은 분명 선진화된 국가 였습니다. 또한 뛰어난 기록문화의 영향으로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 기록하여 자세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의 이웃나라 지식인들은 조선의 언론자유를 부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부작용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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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제도와 쇠퇴의 시작

지난 이야기 조선건국 후 100년 동안 조선은 언론자유, 권력견제 등 중세시대 제도 치고는 비교적 선진화된 제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생활도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선후기로 갈수록 백성들은 고달픈 삶을 삽니다. 권력자의 탐욕이 백성들의 몫을 빼앗고 벼슬아치와 양반들을 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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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3국 전통 정치제도를 비교하다

지난 이야기 성종은 사림파를 등용하여 훈구파 대신들의 전횡을 견제하는데 신하가 신하를 견제하는 “이신제신”입니다. 성종은 이신제신을 위해 언론의 자유를 입법화 하는데 500년 전 중세사회에서는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새로운 제도에 의해 사림파들은 100년 동안의 은둔생활을 접고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훈구파와 100년 동안 치열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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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과 백성의 삶

지난 이야기 조선건국 당시 시행된 과전법은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소하는 백성을 위한 법입니다. 조선건국 후 80년간 백성들의 삶이 고려 왕조 보다는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조선건국은 권력을 위한 쿠데타, 또한 백성을 위한 쿠데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계유정난으로 집권한 공신들은 오로지 권력을 위한 쿠데타를 일으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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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세족의 몰락

공신들은 수백만평의 토지와 수백 명의 노비를 소유하고 세금면제 병역면제, 게다가 왕권을 능가하는 권력까지 가졌으니 가히 조선은 공신들의 나라입니다. 지난 이야기 조선건국 초 혼란기에 있었던 네 번의 공신책봉은 훈구파 탄생의 씨앗이 됩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삶이 무너질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었고 태종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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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세족의 몰락

신하들의 권력을 극도로 제한하고 당파싸움의 근원을 제거한 태종은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했겠지만, 조선건국 과정에서 4번의 공신 책봉이 새로운 특권층을 만들었다. — 지난 이야기 고려말 30년 동안 여당인 권문세족과 야당인 신진사대부가 치열한 권력투쟁을 한 결과 신진사대부가 승리합니다. 그러나 토지개혁(과전법) 문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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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 파벌싸움

지난 이야기 우리나라 최초의 당파싸움에서 패배한 권문세족은 일부만 살아남고 대부분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두번째 당파싸움에서 패배한 신진사대부 온건파는 낙향하여 100년 동안 성리학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여 다시 권력에 도전합니다. 이른바 사림파의 등장입니다. — 1,392년 신진사대부 강경파는 대비 안씨를 (공민왕의 후비 안씨) 겁박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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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세족의 몰락

지난 이야기 정도전은 23세에 관직에 진출하여 9년간 개혁정책을 경험합니다. 다음 9년간은 유배생활을 하며 백성들의 참상을 경험합니다. 이성계를 만나고 9년간은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치고 조선을 건국합니다. 조선 건국 후 500년 사직의 기틀을 세우고 개국 6년 후 이방원에게 살해 당합니다. — 최초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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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개혁가 ‘정도전’

    지난 이야기 고려말 상황은 무신정권과 원간섭기 180년 세월이 빚어낸 기득권 층의 횡포가 극심하던 시절이었고 게다가 자주독립이 요구되는 시절이었죠. 의지가 강한 공민왕은 고려를 개혁하고자 했으나 내우외환이 겹쳐서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소장파 성리학자들에게 고려개혁의 과제가 넘어갑니다.   소장파 수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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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의 개혁

지난 이야기 고려말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된 이유는 피폐해진 국가 재정과 굶주린 백성들 때문입니다. 왕실과 귀족들의 사치로 국고는 텅텅 비어 있고 백성들은 하루 종일 일해도 배고픔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새로운 학문 성리학이 배출한 신진사대부는 기득권 세력인 권문세족들과 정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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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당쟁

700년전부터 시작된 최초의 당파 싸움 고려의 신진사대부 VS 권문세족 지난 이야기 우리나라 최초의 개혁 군주 후보였던 소현세자. 400년 전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 사회에서 너무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을 하였고 또한 조선의 병폐를 치유하고자 했던 소현세자 부부는 가족 전체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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